[TAROTEA] THE HIGH PRIESTESS 2 : 우리에겐 지켜야할 것이 있다

글 입력 2018.05.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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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OTEA]
THE HIGH PRIESTESS 2
우리에겐 지켜야할 것이 있다



마리아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38-



 '순명'이라는 단어를 아는가. 가톨릭 사전에 따르면, 순명이란 자유의지를 가지고 명령에 따르는 삶을 일컫는다. 언뜻보기에 모순적인 이 단어는 자유와 개인의 권리가 최고의 가치를 갖는 현대사회에서 더욱 이해되기 어렵다. 필자는 독실한 기독교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고, 첫영성체를 받았지만, 20살 때가 첫영성체가 아니라 천년성체라고 알고 있을정도로 종교에 관심이 없었다. 사실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싫어했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 같다 고등학생때 필자는 리처드 도킨스의 저작과 다큐멘터리를 몇번이고 정독하고, 종교의 순명이 굴복을 가르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대학교에 와서 조금씩 변해갔다. 티슈와 함께 내밀어지는 위선이 아닌, 종교인의 삶을 발견한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태어나고, 교류한 종교인들이 대부분 가톨릭 신자였기에, 필자는 종교적 삶을 순명으로 받아들인다. 순명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발달심리학자가 되기 위해 석사까지 딴 선배는 커리어를 버리고 케냐의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고, 수업 오리엔테이션 때 항상 시작 기도를 하는 교수님은 자신의 모든 연구성과가 그 분의 부름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먼 나라와 먼 이웃에서 운명을 느끼고, 삶을 이끄는 에너지 뒤에 순명이 있었다. 필자가 지금까지 바라본 종교인의 삶은, 정말로 베드로와 닮아 있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삶의 중심을 영성으로 놓으면서 예수의 이름을 부정하고 그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괴로워 했다. 파우스트에서 노력하는 사람만이 방황한다는 구절이 있다. 내가 본 종교인들은 모두 순명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모순과 경계에 서있었다. 그 모순과 경계는 비종교인이 이해하는 '믿냐 안믿냐' 차원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추구하고 이뤄내고 있는 것은 세속 저 너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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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소개할 카드, 여사제는 내가 종교인에게 느낀 것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어리숙한 바보와 조금 거만하지만 현실을 조정하는 마술사를 거쳐 우리가 만난 이는 정숙한 표정의 여사제다. 마술사가 경험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의식의 선생님이었다면, 여사제는 정신적인 것을 가르치는 무의식의 선생님이다. 여사제는 여성차별적인 역사에서 여성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였고, 인간으로서도 그랬다. 연약한 그녀는 때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여사제 카드를 좋아했는데, 그녀는 내가 꿈꾸었던 여성 영웅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울그락 불그락한 근육도 없지만 의식을 아우르는 현명함이 있고, 연약한 천을 두르고 있지만 이상과 도덕의 가치를 끝없이 고민하고 절제하고 있다.

 그녀의 왕관은 초승달, 보름달, 그믐달을 합친 모양이다. 여성의 월경이 달이 차고 기우는 달의 주기로 표현되는 것처럼, 왕관은 여성성과 우리 안에 존재하는 깊숙한 내면의 감정을 상징한다. 달은 모양에 따라 다양한 상징을 가진다. 상현달은 여성성의 순결함, 신성함, 새로운 시작,부활을 의미하고 보름달은, 모성과 풍족함, 번영, 하현달은 지혜와 완성을 의미한다. 그녀가 쓴 왕관은 나일강과 풍요의 신이면서, 처녀의 몸으로 태양신 호루스를 낳은 이시스의 왕관과 비슷한 모양새를 띈다. 그녀는 번영과 신성, 따뜻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인 동시에 강력하고 매몰찬 마법사였다. 그녀가 두른 천은, 과거 성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비싼 가격과 영롱한 색으로 성모 마리아의 옷에 조심스럽게 발랐다는 아쿠아블루다. 찬란한 파란색은 일반인과 다른 느낌을 준다. 파란색은 직관과 지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절제적인 그녀의 모습과 어울리는 색이기도 하다. 가슴에는 4원소를 상징하는 목걸이가 있다.

 이처럼 지혜롭고 성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카드지만, 기본적으로 2번카드에 있는 그녀는 모순과 이중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그녀 뒤에 있는 흰색과 백색의 기둥이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검은기둥은 보아즈(BOAZ)로, 부정적인 면, 거짓 어둠, 악을 의미하고, 흰기둥은 야킨(JACHIN),으로 긍정적인 면, 진실, 빛, 선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위엄있게 앉아있는 그녀는 선과 악의 지혜로운 중재자인 것이다. 선과 악이란 기본적으로 연약한 천막을 두고 경계를 두고 있다. 당장 성경을 봐도 우리는 선악과를 먹었다는 이유로 낙원에서 쫓아났다고 하지 않은가? 선악을 나누는 것은 감히 신의 일이고,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신을 닮고 싶은 욕구 중 하나다. 그것이 인간의 인지로는 어려운 일이기에, 그것을 조절하려는 시도는 늘 재앙으로 돌아왔다. 선과 악을 조절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파멸하고만 지킬박사를 떠올려도 좋다. 그렇기 때문에 여사제는 인간 중 가장 고귀한 존재로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여사제 카드를 볼 때마다 성모마리아의 모습이 생각난다. 마리아의 순명은 종교인의 의무 이상으로 인간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어 보인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일치다.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순명인 것이다. 그들이 믿는 신을 인격적인 존재로서 받아들여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일이고, 자신의 육체 안에서 뜻이 머무르길 바라는 일이다. 그것은 마리아가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리라'라고 이야기 한 것처럼 자기포기가 요구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수동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순명은 자유로운 동의다. 자신을 비우는 일은 능동적인 선택과 결단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고통과 희생은 필연적이며, 예수가 그러했듯이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이 뒤따른다. 신의 뜻을 따라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선택을 하는 그리스도야말로 대표적인 순명의 삶을 사는 이였다.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신도의 삶은 기꺼이 그 길을 뒤따른다. 그들이 꿈꾸는 삶의 끝에는 인류구원과 자기희생이 있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종교가 없지만, 간혹 필자의 안에도 여사제가 살아숨쉼을 느낀다. 필자가 갈구하고 꿈꾸는 세계나, 매 순간 느끼는 존재의 축복과 시간은 여사제가 꿈꾼 신의 얼굴과 매우 닮아 있다. 유한한 몸과 정신을 타고난 인간들은 모두 존재의 의미와 궁극을 꿈꾼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가치를 위해 순명하는 면모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가치와 도덕을 쫓고, 그 삶을 위해 고통과 모순을 견뎌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종교적이다. 우리가 꿈꾸는 신의 얼굴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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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카드를 소개하는데 있어서 하는 수 없이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불편한 점을 지적하려 한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나누는 것은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사회와 우리의 집단적인 상징체계가 요구해왔던 것들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끝없이 뜨거운 토론이 한창인 오늘날 이런 상징체계는 앞으로 다양한 양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분명 특정 성별을 학습해왔다. 성차의 발생은 다양한 맥락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차별'과 '단정'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TAROTEA > 시리즈는 실제적인 사람이 아니라 카드의 상징을 읽는 작업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필자는 실제적인 여성과 남성이나 단순히 이분으로 젠더화된 개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찾아낸 하나의 이미지를 말하고 있다. 필자는 아직까지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을 한번 더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은 필자의 의도가 아니었다. 당신 안에 존재하는 '여사제'가 여성이 아니라 다른 모습인 것은 각자의 경험의 차이지, 절대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일이 아니다.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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