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가의 고유함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시각예술]

글 입력 2018.05.12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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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가 갖춘 자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고유함일 것이다. 고유함을 갖는다는 건 자기만의 색,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개성을 갖는 것이다. 이 세상의 무한히 많은 것들과 자기 자신 단 하나를 구분짓는 그런 고유함을 가진 예술가는 위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고유함은 시간의 흐름에 깊은 흔적을 새겨, 기억해주는 이들 모두 사라지고 인간과 지구마저 모두 없어진다 해도 이 우주의 시간 속 한 조각으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예술의 위대함은 바로 이런 영원한 고유함에서 온다.

우주까지 들며 다소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자신의 고유함을 만들고 지키려는 노력은 아주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예를 들자면,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글을 쓸 때 스스로 지키고자 한 몇 가지 원칙들을 정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의 색이 담긴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작가 이름이 바뀌어도 아무 상관없는 글, 내가 아닌 어느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 원칙이 결과적으로 잘 지켜지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원칙을 정할 때의 마음만큼은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화가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그 첫 만남 때부터 지금까지 동경의 대상, 닮고 싶은 대상으로 마음 깊숙한 곳에 있었던 것 같다. 샤갈 전시를 가 봤다면 느낄 수 있겠지만, 샤갈의 그림은 모르고 봐도 그의 그림인지를 알 정도로 개성이 강하다. 몽환적인 색채, 맥락 없이 자유로운 구성,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사물들, 종잡을 수 없는 추상성과 이유 없이 느껴지는 아름다움.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는 혼동하기 힘든 개성이 있다. 2년 전 한가람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강한 인상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게 마르크 샤갈 특별전은 내 아름다운 동경의 대상을 눈앞에서 생생히 재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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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얘기해두자면, 샤갈의 ‘색채의 마술사’적 면모를 기대하고 찾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는 전시이다. 전시의 중반까지는 색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흑백의 동판화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실은 나를 샤갈에 매료시켰던 것도 그가 사용하는 환상적인 색채였기에, 처음에는 이게 샤갈 전시가 맞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좋았던 전시이다. 그의 생소하고 색다른 모습들을 접하면서 색채의 마술사 샤갈이 아닌 예술가 샤갈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그만의 고유함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고유함은 단지 그림의 환상적인 색채나 구도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영역과 무한한 다양성을 향한 그의 모험 자체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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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사진
 
 



가장 먼저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그가 단지 회화에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시 1부와 2부에는 그의 삽화들이 소개되는데, “라퐁텐 우화”, “일곱 가지 죄악”, “대지에서” 등 그가 참여했던 상당히 많은 삽화 프로젝트들을 볼 수 있다. 샤갈하면 회화만 떠오르고, 회화 하면 개인전을 열거나 외부 전시에 출품하는 것만 떠올리던 내게 그의 삽화 작업은 다소 의외였다. 게다가 삽화들은 대체로 무채색의 동판화였는데, 이 역시 내게는 생소한 그의 면모였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에도 드러나듯이 그는 판화라는 기법에 대한 애착이 컸고, 그만큼 방대한 양의 판화를 남겼다. 또한 그는 판화뿐만 아니라 도예나 스테인드글라스로도 작업하는 등 굉장히 다양한 재료와 장르에 도전한 예술가였다. 더불어 전시 후반부에는 시인 샤갈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숨을 내뱉듯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 그의 예술은 그림을 넘어서 시와 문학으로도 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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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퐁텐 우화"에 삽입된 샤갈의 동판화
 

작은 충격이었다. 내가 알던 샤갈은 그의 한 단면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대표하는 화려한 유화 뒤에 이렇게 폭넓고 다양한 세계가 있었는지 몰랐다. 특히 그가 남긴 다수의 동판화는 그 의외성만큼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했다. 유화의 부드러운 곡선이 아닌 스크래치의 거친 직선들, 꿈 속 같은 자유로운 구성이 아닌 보다 사실적인 구도의 우화집, 어린 시절부터 그가 익히 봐온 동물들에 대한 탁월한 묘사. 한 작가가 이렇게 다면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아니, 어쩌면 그토록 넓고 다양한 경험과 시도들이 있었기에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길만한 그의 고유함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창조는 진부함과 아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남들도 다 하는 그저 그런 평범함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모방은 분명 예술가에게 최대의 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개성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외부세계를 차단하고 자기 안으로만 들어가는 닫힌 태도 또한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 창조에 대한 가장 진부한 말 중 하나겠지만, 진정한 창조를 위해서는 자신을 잃지 않되 자기 안에 갇혀서도 안 될 것이다. 말은 쉽지만 지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이전에는 겉으로 드러난 샤갈의 고유한 개성을 좋아했다면, 이제는 그 고유함을 만들어낸 그의 밑바탕까지 동경하게 된 것 같다.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면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은 예술가 샤갈이었다. 유화와는 거의 대척점에 있다 할 수 있는 동판화임에도, 그렇게 거친 스크래치들을 엮어 결국에는 자신만의 화풍을 담아내는 그가 멋있었다. 샤갈을 비롯한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지금 있는 것들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임으로써 지금 없는 것들을 새로이 창조하는 일은 놀라우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어렵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손으로 만들어낸 세상, 곧 나 자신과도 같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야심은 오늘도 많은 예술가들이 자기 파괴와 자기 보존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기꺼이 감내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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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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