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의! 놀랄 수 있습니다 : 판도라의 상자 [시각예술]

공포와 예술 사이
글 입력 2018.05.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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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ora's box

종로 5가에 위치한 두산아트센터에 강연을 들으러 간 날이었다. 티켓을 받고 한참을 기다리다 강연장소로 내려가려하는데, 어디선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보니 박스 안에서 밖을 향해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네모난 상자는 앞이 불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 손 그림자가 훤히 보였다. ‘쾅-’, ‘탁-’, 어쩌면 ‘챙-’에 가까운 소리로 연신 밖을 향해 상자를 두드리던 주인공의 모습까지 드러났다. 나체의 여성이었다. 절규에 가까운 몸짓을 해가며 발로도, 몸으로도 두드려댔다. 그 소리와 몸짓에 몸이 묶여, 5분이 넘는 시간동안 멈추어 서서 바라만 보았다. 자리를 뜨기 전 확인해보니 이는 Marck라는 해외 아티스트의 예술작품이었다. 제목은 Pandora's Box.
 
그 5분 남짓한 시간동안은 온전히 ‘예술’과 ‘충격’이 동의어로 느껴졌다. 신선하다고 해야 할지, 파격적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유해하다고 해야 할지, 아직도 내 소감조차 평가하기 힘들다. 이렇게 실험적인 작품을 직접, 그것도 우연히 만난 적은 없었다. 강연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는지, 귀가 후에도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의미, 혹은 의도를 찾아보려 검색하니 작품은 물론이고 아티스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놓여있었으니 무료전시였고, 또한 모두를 향한 전시였을 것이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을까. 상자 속의 그녀는 밖에 있는 누군가가 듣길 바랐을까? 혹은 안에 있는 본인이 상자를 부수길 바랐을까? 어쩌면 둘 다였을지 모른다. 확실한 메시지는 ‘갇혀있다’와 ‘탈출하려는 의지’ 두 가지 정도였다.



meaning

판도라의 상자라는 작품 타이틀로 볼 때, 상자 안에 들어있는 여성이 판도라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신화 그대로라면 상자 안에는 해악이 있어야 한다. 질투, 병, 죽음, 증오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작품 속 상자에는 인간이 들어있다. 판도라의 상자 속 인간이라는 시각에서는 ‘인간이 해악’이라는 메시지를, 그리고 인간 중 여성이 들어있다는 사실에 집중했을 때에는 ‘여성이 해악으로 취급되어 갇혀있는 상황’이라는 메시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나라는 한 사람의 해석이지만 두 입장은 상당히 상이한 관점을 보인다. 인간이 해악이라는 메시지에서는 ‘인간 = 악’이라는 관계가 성립한다. 나체에서 인간의 민낯 혹은 본성이라는 상징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해석에서는 해당 관계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 상자 속 인간(여성)이 사실은 악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갇힌 인간을 악이 아닌 피해자로 바라본 것이다. 해석하는 주체인 내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인간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성보다 남성을 더 쉽게 떠올린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아직까지 특정 편견을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는 사실에 섬뜩했다.



position

작품이 전시된 위치는 계단 바로 앞이었기에 사람들은 판도라의 상자 앞을 지나야만 한다. 이는 전시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완벽한 곳이었을지 모른다. 실험적인 작품을 굳이 찾아보지 않는 이들에게 노출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겠지만,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노출될 우려가 있다. 성인인 내게도 ‘괴기하다.’ ‘섬뜩하다.’ 등의 느낌이 따라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공포’로 비추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 되지 않는 블로그 후기에도 충격이라는 몇 줄이 소감의 전부임을 확인했다.

일부는 환영할지 모른다. 나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할 기회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수에게 거부감을 주는 작품이 ‘예술’로 취급될 수는 있어도, 다수에게 강제적으로 노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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