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판문점 선언과 세대 간 화해, 그리고 도요새에 관한 명상 [도서]

글 입력 2018.05.1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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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7일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남북관계를 둘러싼 세계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내달 있을 북미 정상회담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북한은 핵을 폐기하고 미국은 북한의 정치, 경제 체제를 보장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에는 전에 없던 평화체제가 찾아올지 모른다.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북한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크게 상승했으며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줄을 잇는다. (국민 94% "남북정상회담에 성과 있었다", 국민 70% 이상 "국민이 판문점 선언의 내용대로 핵 미사일을 폐기할 것이다", KBS 여론조사)

 하지만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지지하는 층 가운데서도, 젊은 세대와 5060 세대의 지지 근거는 상이하다. 5060 세대의 주 근거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남과 북은 한 민족 한 겨레"라는 의식이다. 젊은 세대에게 민족주의는 시대를 역행하는 낡은 사상이며, 사실상 민족이라는 개념도 그 실체가 모호한 상상적 집단이다. 더구나 지금의 20대는 하나였던 한반도를 경험한 적이 없다. 20대의 부모도 그러하다. 노인 세대가 말하는 민족의식은 젊은 세대에게 공감은커녕 오히려 반감만을 이끌어낸다. 얼마 전 한 수업에서 읽은 글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통일을 논할 때 쓰는 여러 근거들은 이제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있다. 혈통과 언어의 공통성을 주장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에게는 막연하고 생소한 개념이며, 평화주의적 관점은 비현실적이며, 경제적 시너지 효과론은 입증된 바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가 오래된 시대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에 대한 문제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김원일의 소설 하나가 생각난다. 분단의 상처를 다룬 «노을», «불의 제전», ‹미망›등을 통해 대표적인 분단 문학 작가로 떠오른 작가다. 그중에서도 1979년 출판한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분단 문제를 후경으로 민 대신 생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중편소설이다. 북쪽 고향을 그리워하며 북으로 날아가는 철새를 동경하는 아버지, 동네 수제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으나 학생운동에 참여한 죄로 퇴학당한 후 고향에서 동진강 오염 문제를 파헤치려 애쓰는 큰아들 병국, 친구와 함께 철새를 밀렵해 박제상에 팔아 용돈벌이를 하는 작은 아들 병식이 주인공이다. 소설에서는 각 장마다 시점을 바꿔 가며  이 세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조리한 사회, 만연한 물질주의, 분단 그리고 생태문제에 대해 세 인물은 대립하기도 서로 공감하기도 한다.

 아버지와 병국에게 도요새는 공통의 주요 관심사다. 둘 모두 예전에는 동진강 하구에 찾아오던 도요새의 발길이 끊긴 것을 안타까워하며 문제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둘에게 도요새는 다르게 이해된다. 아버지가 도요새를 동경하는 이유는 분단선을 넘어 하늘길을 통해 북으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살아온 세월 내내 전쟁과 비극과 좌절만을 겪은 그는, 새가 찾아올 수 없을 만큼 오염된 땅을 보며 남쪽에 발이 묶인 자신의 처지를 떠올린다. 이미 늙고 지친 그는 현실에 눈물지을 뿐, 가치를 위해 행동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

 병국에게 도요새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압축적 근대화와 그 폐해를 상징하는 희생물이다. 일차적으로는 공장의 횡포와 비양심적인 폐수 배출로 어린 시절부터 애정을 갖고 있던 생명체들이 죽어나가는 것에 대한 분노다. 하지만 배운 지식인으로서 대학에서도 부조리한 정권과 시대에 맞서 항거했던 이력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을 병국의 올곧은 면을 생각하면, 도요새 문제에 대한 관심은 훨씬 복합적인 반응이다. 도요새는 자본주의 속에서 효율성과 경제성장을 위해 파괴되고 무시되는 가치다. 반물질주의적인 가치이며 무엇보다 생명 그 자체이다. 대학에선 그 가치를 지키는 데 실패했지만 그는 (어머니나 병식이 한심히 여기는 것과 달리) 그 정도 실패에 수몰되는 나약한 캐릭터가 아니다.

 무엇보다 도요새는 아버지다. 병국은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자본과 성장, 독재의 남한에서 내몰리는 존재. 병국은 통일에 대한, 도요새에 대한 아버지의 갈망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바다를 바라보며 아버지를 배웠다. 아버지에게 바다는 북으로 통하는 물길이었지만, 병국에게는 아버지와의 추억인 동시에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대상, 아버지의 향수를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였다. 대학에서 고향으로 내려온 후 아버지와 술잔을 나누며 도요새가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게 된다. 날개 꺾인 도요새는 둘 모두에게 본인을 상징하는 존재다. 아버지에게는 고향으로 갈 길 없는 실향민이며 병국에게는 이상이 꺾여버린 운동가다.

 2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병국은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추구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물질주의적이고 탐욕스러운 어머니보다 올곧고 정직한 아버지의 성품을 닮고 배웠다. 날개 꺾인 새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배운 이 새로운 세대는, 이제 아버지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념적 관점이 아닌 생태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낡은 상처의 상징물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새로운 문제의식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젊은이는 아버지보다 낫다. 아버지를 무시하고 걸어가는 '다른' 세대가 아닌, 아버지의 낡은 아픔을 안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다음' 세대다. 아버지와 병국은 그렇기 때문에, 도요새 문제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서로 이해하며 공감한다.

*

 지금의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기준을 가지고 평화체제를,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적 가치, 인권의 가치가 그 기준이다. 병국이 아버지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했을지 모르지만 그 슬픔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전쟁 당사자가 느끼는 통일은 개인적인 귀향의 완성이며 도요새는 귀향의 측면에서 감정 이입의 대상이 된다. 작은 아들인 병식은 이런 아버지를 "사색이 너무 깊으셔서 결단력이라고는 없는 껍데기"라고 평가하며 "전쟁을 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영구적인 분단이 더 좋아요. 우선 내가 살고 사회가 안정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라고 말한다. 병국은 '아버지가 바다를 볼 때 느끼는 의미며, 도요새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근원을 처음으로 가슴 깊게 새겨'듣는다. 그리고 도요새 문제를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판단하고 옳다고 믿는 일을 한다. 평화체제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에 도달했음에도 그 기저에 놓은 사고방식은 세대별로 상이하다. 공감하고 이해하되 머무르지 않고 발전해야 한다.


[이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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