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단한 서울의 이야기 [도서]

갑을고시원 체류기_박민규, 성탄특선_김애란
글 입력 2018.05.1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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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서울의 이야기


「갑을고시원 체류기」와 「성탄특선」을 중심으로


‘서울’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고층 빌딩, 바쁘게 움직이는 인간들의 군상, 그리고 그 속의 고독.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음악에서 자주 등장하는 서울의 이미지이다. 아직까지도 이러한 이미지가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그러한 인상을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지치고 고단하지만 견뎌내는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에 공감을 보내며 이 글을 시작한다.

「갑을고시원 체류기」와「성탄특선」은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상경을 한 뒤 혼자서 자취방에 살고 있다. 갑을고시원처럼 다리도 못 뻗을 공간은 아니지만, ‘방음’에 대해 할 말은 많다. 옆집 사람의 알람을 함께 듣고 깨는 일, 새벽에 눈치를 보며 조용히 샤워기를 트는 일, 친구가 놀러 와도 수다는커녕 입단속을 시키는 일. 나에게도 일상이다. 얇은 벽만이 타인과 나를 분리해주며 가장 개인적인 공간에서조차 나는 자유로울 수 없다.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김검사의 눈치를 보며 ‘나’가 정숙을 지켜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갑을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은 방귀를 뀌는 것에도 주의해야할 사항이 있다. <정숙>표딱지가 내걸려있는 이 고시원에서는 생리적 현상마저 틀어막아진다. '나'는 한 마리 온순한 열대어를 ‘엉덩이 한쪽을 최대한 잡아당긴 채-조심조심 방류’하는 것처럼 방귀를 뀐다. 「성탄특선」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내는 자신만의 공간을 얻지 못하여 불안하다. 사내는 자신만의 공간을 얻지 못한다. 여관방에서도 자취방에서도 언제 나가라는 전화가 걸려올지. 동생이 들어올지 몰라 ‘쟤도 하고 쟤도 하는’ 관계를 하는 와중에도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 '나'와 사내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욕구를 억누르며 씁쓸함을 느끼지만, 결국 <정숙>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 셋 중에 어떤 일을 떠올린다 해도 간신히, 간신히 안간힘을 다해 할 수 있었다는 생각뿐이다. 과연 인생은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힘들었고, 그나마 나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뿐이다. 오로지?=오로지.

-갑을고시원 체류기中


나와 ‘갑을고시원에 살았던 나’와 ‘자취방에 살고 있는 사내’의 공통점은 개인적인 자유공간을 소유하지 못한, 가구와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의 <386dx-Ⅱ>를 지키며 살아간다. <386dx-Ⅱ>는 갑을고시원에 사는 '나'가 목숨처럼 아끼던 모디터 화면으로, '나'의 자산 1호였다. 그러나 이렇게 소중히 지켜오던 <386dx-Ⅱ>는 점차 '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시간이 지나자 저절로 버려졌다. 나의 보물이 고물이 된 것처럼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도 언젠가 쓸모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다시 그 쓸모없는 것들을 모으고 지키기 위해 살아낸다.

'인생은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하동문이다. 끝이 정해진 고시와 달리 인생은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목표해야할 것이 확실히 보이는 고시와 달리 인생의 목표는 도무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굳이 자취방에서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정숙>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고시원에서 타인과 1센치 두께의 베니어판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때로는 힘내라는 백 마디 말보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훨씬 커다란 위로를 주곤 한다. 오늘 당신에게 그런 위로가 필요하다면 이 책들을 만나보자.


[김새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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