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해하려 할수록, 공포 [공연]

글 입력 2018.05.15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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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시기인 AD 313년에 황제 리키니우스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버리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때 세비스테아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 중 40명이 이교의 신에게 제사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노라고 선언하였다. 지역의 관료였던 아그리콜라우스는 혹한인 호수의 얼음을 깨고 40개의 구덩이를 파도록 명령했다. 그곳에 40명을 모두 집어넣고 배교를 강요하였다. 호수 밖에는 이교신을 위한 제단과 따뜻한 물을 가득채운 욕조를 놓아두었다. 병사들은 꽁꽁 언 입술을 움직여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여, 우리는 모두 40명입니다. 우리 40명은 생명의 면류관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이 거룩한 숫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3일 동안이나 그 지독한 추위를 견뎌냈다. 그러나 그들 중 한명이 그만 신앙을 포기하고 뛰쳐나와 이교의 제단에서 희생제물을 바쳤다. 그에게는 배교의 보상으로 따스한 물이 채워진 욕조가 허락되었다. 그러나 그는 상으로 허락받은 그 욕조 안에서 곧바로 죽고 말았다. 오랫동안 추위에 노출되어 얼어버린 몸이 따뜻한 물에 닿자 쇼크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은 기독교인들을 시험한 아그리콜라우스다. 극한의 상황을 설정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목적이 있는 사람이 행하는 악이다. 연극 ‘공포’에서는 드미트리가 등장인물들을 시험한다. 그는 무엇을 위해 사람들을 시험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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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는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쫓겨난 하녀 까짜를 집으로 데려온다. 용서에 대한 판단은 아내인 마리에게 맡긴다. 술을 끊기 위해 노력하는 가브릴라에게는 고급 와인 10병을 상이라고 주면서 까짜의 안위와 술을 저울질하게 만든다. 체홉에게 자신이 마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계속 얘기하고 체홉이 친구인 자신과 마리 사이에서 누구를 택할지 시험한다. 자신의 주변 사람 모두를 시험하면서 드미트리는 자신 역시 시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일련의 과정들을 지나면 자신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인간에 대한 혐오와 그로 인한 구역질 뿐이었다.
 
드미트리는 “모든 것 무섭”다고 이야기한다.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삶 자체가 무섭다고 이야기한다. 미지의 상태인 것은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면서 정체조차 불분명하니, 미지는 그 자체로 두려움의 원인이 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미지의 상태로 머무를 때 두렵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드미트리의 말대로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게 사람이지 않은가? 내가 ‘안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해 ‘몰랐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게 삶의 과정일 것이다.
 
연극 ‘공포’는 체홉이 등장하는 체홉극이라는 점에서도 신선했지만, 단순히 등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체홉 역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 깊었다. 친구인 드미트리와 그의 아내인 마리.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체홉에게 드미트리는 계속 이야기한다. 마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친구인 체홉에 대한 신뢰를 이야기하고, 세상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리를 사랑한다는 말과 다르게 그는 행동으로 마리를 아끼지는 않았다. 까짜를 데려온 행동 역시 감정이 상한 아내에게 자비를 강요하는 불편한 행동이었다.

마리에게는 다정한 말을 해주지도 않으면서 체홉에게만 자신의 사랑을 떠들었다. 까짜의 장례식에서 마리가 되돌아 온 날 밤에도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게 분명한 아내를 집에 내버려두고 일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바깥에서 따로 잠을 청한다. 서로에게 감정이 남은 마리와 체홉을 한 집에 의도적으로 두었다고 느껴졌다. 체홉과 마리는 결국 서로를 택했고, 드미트리는 그 결정을 목격한다. 그렇게 자신 역시 상처 입을 만한 시험을 계속하면서까지 타인을,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럴수록 그에게 남는 것은 몰이해와 불완전성에서 기인한 공포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미트리의 행동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느낀 삶에 대한 공포를 다른 사람들 역시 느끼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삶을 녹록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각자에게는 각자가 져야 할 삶의 무게가 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타인의 삶을 판단할 수는 없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시험대에 올린 드미트리의 행동은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만의 발버둥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을 위해 타인을 이용한 기만이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신을 찾고, 어떤 사람은 신을 조롱하며, 어떤 사람은 술에, 사랑에 의지하기도 한다. 다들 미지의 상태에서 느껴지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알고 싶은 것을 정하고 노력한다. 다만 그 노력의 과정이 성과가 있을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삶은 그저 계속될 뿐이고, 계속 힘들고 무섭고 외로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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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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