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angle] Prologue

풀어야 할 것들이 많아 그 언어를 선택하고 그렇게 되기를 선택한 사람의 그림과 이야기
글 입력 2018.05.1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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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기엔 무엇인가 많이 없는 그림이지만
사실
안 보이는 것들이 더 많은 그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사실
쏟아내는 건 잉크보다 생각이 더 많은 사람


풀어야 할 것들이 많아 그 언어를 선택하고
그렇게 되기를 선택한 사람의 그림과 그 이야기


Main Title.jpg
 


{ Untangle }
Prologue


"세상에서 제일 
속으로 말 많은 사람을
소개합니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펜을 든 지 거의 반년이 지났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짧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린다는 가정 하에서 긴 시간을 바라볼 때, 지금의 나는 아직도 처음일 것이다. 처음은 서툴러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늘 나를 다독이며 마음이 갈 때 펜을 들고 있다.

그 짧은 반년 동안의 어디쯤을 지날 무렵 그림을 완성하는 순간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완성하고 나서도 무엇인가 두고 온 것이 있는 듯 아쉬움이 가득한 여운이 그것이었다. 그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느껴질 때마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뭘 두고 왔나 싶었다.


생각 혹은 혼잣말 혹은 대화


그리고 질문이 필요했을 뿐, 답은 이미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펜을 잡은 손이 처음에는 그저 망치는 게 두려워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이 느림은 펜을 쥔 손과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는 생각이 발맞추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려는 나의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렇게 "어쩌면 쓰는 잉크보다 쏟아지는 생각이 더 많은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결론까지 닿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생각하는 건지, 생각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건지 그 선후관계의 경계를 애매하게 문대고 있는 것이 나의 그림 그리는 시간이었다. 왜? 나는 왜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그냥 그리고 싶어서 그리기 시작했다고 믿어왔었는데, 아마 그게 아니었나 보다.


*


모호한 사람.


나를 가장 방황하게 만들면서도 지금의 나를 만든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수식어. 모호하다. 흐리다. 뿌옇다. 나는 혼자서 질문 던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답을 내린 것은 거의 없다. 질문을 가득 쌓아 놓고 다시 떠오를 때마다 꺼내보고 세상에서 제일 느리게 스스로에게 답을 내려 본다. 긴 시간동안 답을 모르는 게 답답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아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답을 정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기도 한 사람이 나다. 답도 매번 어느 순간이 되면 바뀌기 때문에.
 
어쩌면 그래서 당연하게도 질문만큼이나 떠다니는 구름처럼 생각들도 많이 띄우는 사람이다. 참 회색 같은 사람이 나다. 문장들로 이루어진 구름 속을 배회하는 사람이고, 딱히 밖으로 말 할 곳이 없어 쌓이고 쌓여 꽤나 뿌연 안개에 뒹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안개를 계속 바라만 보기에는 답답했는지 펜을 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내게 그림은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그리는 실력은 부족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아니 부족하다. 핑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긴 시간 그린 것도 아니고 배운 적도 없기 때문에. 그래도 엉켜있는 무엇인가를 조금씩 풀어보려는 시간이다. 그렇게 안개를 하나의 뚜렷한 형상으로 만드는 시간. 쌓이고 굳어있던 감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위로하는 시간이었고,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멀어져 뭉쳐버린 나의 일상의 타래를 쓰다듬어 보는 시간이었고, 그냥 내게 떠오른 느낌을 천천히 살펴보는 시간이었고, 내가 꿈꾸고 바라던 어떤 상상을 꿈꿔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내게 굴러온 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려 하는 시간. 그렇게 나의 마음을 움직인 엉킨 타래를 한마디 한마디 풀어내고 어루만지며 풀어내는 시간.


그 시간은
Untangle
이었다


*


저는 아슬아슬한 스무 살 초반에 있는 대학생이면서, 아트인사이트에서 에디터를 하면서, 혼자 좋아서 시작한 글씨와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집중이 많이 부족한 편이며 펜과 스케치북, 책을 들고 가서 좋아하는 카페에서 시간이 허락되면 8시간씩 머무는 것을 좋아합니다.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는 내성적인 사람이며, 혼자라는 시간을 사랑하면서도 외로움을 종종 품곤 하는 사람입니다. 요즘에는 자존감이 많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찾고 보듬어 보려고 아무도 모르게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내일 할 일이 걱정되며, 그래도 조금 더 쉬고 싶고, 그 사이에서 여전히 방황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별 다를 것 없는 세상 어딘가의 한 사람.
결국 그림에 마음을 토해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당신이 다른 방법으로 마음을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 저는 그림으로 그것을 쏟아내고 있을 뿐입니다.

이 글과 그림이 당신의 생각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무심코 당신에게 질문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의 생각과 충돌 할지도 모릅니다. 가끔 일어나는 따끔거림 때문에 잊지 못하는 작은 상처 같이, 한 꺼풀 벗겨져 드러난 속살 같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고 사소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상처가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르는 것처럼, 저도 앞으로의 저를 잘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내게 굴러와 풀어달라고 속삭일지,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그림이라는 언어로 표현될지 알 수 없습니다.

기쁘기도, 슬프기도, 즐겁기도, 애매하기도, 궁금하기도, 알 수 없기도, 의식의 흐름이 쏟아지기도,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이 애매하기도 한,  수많은 수식어를 가질 수 있는 일기라는 형식을 빌린 글들과 그림이 이 연재로 쌓여갈 것입니다. 저의 시선으로 바라 봤을 때, Untangle, 지금의 내가 풀어낼 수 있는 것이라는 단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요.

언제나 엉킨 것을 다 풀어버릴 수는 없을 거예요.
저도 풀어낸다고 하지만 거기까지만일 수도 있을 거예요.

저도 아직 어려서 지금 아무리 풀어내고 풀어내도, 시간이 더 지난 뒤에는 여전히 엉켜있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럴 거라고 저는 이미 이 안개 속에 팻말을 하나 세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뭔가를 풀어가며 엉킨 조각들 뒤에 숨어있는 무엇인가를 겨우 찾아가며 '나'라는 사람을 이어가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뒤돌아보기도 하고 너무 크게 엉킨 순간은 좀 머물기도 하고 고민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지나오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나를 어루만지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느리더라도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저의 작은 믿음을 혹은 이 글과 그림을 통해 이루고 싶은 소원을 프롤로그 끝에 남겨봅니다. 그리고 혹시 이 연재를 통해 제 이야기가 담긴 이 일기와 그림을 만날 누군가에게도, 가장 가까운 존재인 '나' 라는 존재를 어루만지는 순간을 선물 할 수 있기를 조금 더 감히 욕심을 내어 바라봅니다.

소개가 길었습니다. 이제 정말 시작이네요. 걱정 반 기대 반을 두려움으로 감싼 마음으로, 솔직한 고백과 함께 이 글과 그림의 시간을 담은 연재의 첫걸음을 천천히 내딛어 봅니다.


"Untangle"

Untangle의 시간을 하나의 모습으로
서툴게 그려가는 한 사람과
 그 시간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시작합니다.


*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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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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