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의미 없음 속에서 의미를 찾는 - 고도를 기다리며 @산울림 소극장

의미 없음 속에서 의미를 찾는
글 입력 2018.05.16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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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음 속에서 의미를 찾는"


고도를 기다리며
- En Attendant Godot -


고도를 기다리며_포스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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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내용에 앞서


1969년 초연 이후 48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된다. 2018년도 버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배우 김정호가 새로운 블라디미르 역으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김정호는 연극 <가지>로 2017년 동아연극상을 수상했고, <나는 살인자입니다>, <간혹 기적을 일으킨 사람> 등 다수 작품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다.

공연 기간 중에는 극장 2층 산울림 아트 앤 크래프트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아카이브 전시가 함께 진행된다. 연출 임영웅의 연출노트, 역대 고도를 기다리며 포스터, 배우들이 실제 사용한 소품과 의상 등이 선보인다.

극예술을 처음 접하는 단계에서는 작품을 선택하기가 참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은 너무 많지만 아직 취향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 포스터만 늘어놓고 가늠하기보다는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만나보는 게 어떨까? 원작과는 또 다른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도 극을 즐기는 한 가지 재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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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지만 웃음이 나오는 희극


185분의 공연시간. 3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흘러버렸다. 난해한 서사, 이해되지 않는 말장난. 하하호호 웃고 넘어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찜찜함은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또 다시 공연을 다시 회상하게 만드는 것은 비극적인 상황과 무거운 주제를 희극적 장치로 보여주는 매력적인 아이러니 때문일 것이다.

이 공연은 부조리극이기 이전에 풍자와 블랙 코미디가 있는 '희극'이었다. 그래서 희곡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연출가와 배우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표현으로 무거움이 사라진 가벼운 진지함이 전달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무대 위에는 잎이 모두 떨어진 앙상한 나무 한 그루와 투박하게 바위가 있다. 천장에 설치된 조명들이 배경에 저녁과 구름을 그리고 있다. 이 나무는 목매달아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을 정도로 앙상하고 연약한 나무다. 배우가 이 황량한 무대로 드나드는 출입구는 무대의 양 옆에 뚫려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무대장치였지만 그래서 더 배우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마치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축소하여 실내에 들여온 것 같았다.
   

우리의 결심이 설 때까지는
우선 기다려보는 거야.
그자가 와서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데.
그자가 뭐라고 하든 우리로선 마찬가지지만.
-블라디미르

우린 약속을 받았으니까.
지키기만 하면 된다.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에스트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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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 없는 '기다림'의 정서


앙상한 나무 주변에서 언제고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하루가 지나도 매일 고도를 기다린다. 이야기는 단지 이것으로 시작돼 이것으로 끝이 난다. 그들의 기다림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에스트라공, 고고와 블라디미르, 디디는 누더기가 다 된 양복과 구두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신발은 더 이상 작아져서 발이 아프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지금은 고도가 누구인지, 어디로 온다는 것인지, 왜 기다리는 것인지도 잊었다. 그저 습관처럼 지루한 기다림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그저 오늘의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서로를 향해 의미 없이 맥락이 없는 대화를 주고 받고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그러다가 싸우고 화해를 하기도 하며 반복한다. 언젠가 고도가 오면 이러한 지루함도 끝이 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말이다.



오지 않는 희망, 고도는 누구일까



고도 씨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랬어요.


하염없이 기다리지만 고도는 오지 않는다. 그들의 상황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것은 고도가 아니라 그가 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갖고 오는 소년이다. 소년은 고도가 오늘은 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일은 꼭 올 것이라 말해주며 막이 끝난다. 공연은 두 개의 막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아마 막이 더 길었더라도 우리는 그 뒷 이야기를 조십스레 예층해볼 수 있을것이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또 다시 의미 없는 대화와 장난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며, 그 날에도 여전히 고도는 오지 않을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베케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겪은 피신 생활의 경험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는 남프랑스의 보클뤼즈에서 숨어 살면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자신의 상황을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된 보편적인 기다림으로 승화시켰다. 다만 베케트는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각각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신을 의미하는 'God'과 'Dieu'의 합성어라고 추측할 뿐이다. 베케트가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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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요.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럭키는 왜 벙어리가 되고 포조는 장님이 됐을까


체면과 남들에게 보이는 시선에 과한 집착을 보이고 거들먹거리는 포조는 고압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것과 대비하여 노예와 같이 목에 줄을 메고 있는 럭키는 두 손에 무거운 짐을 내려두지 않고 항상 들고 있다. 왜 짐을 내려두지 않는지를 물어보는 디디의 질문에 포조는 "그건 내게 감동을 주려는거요. 버림받지 않으려고"라는 대답을 남긴다. 우리는 럭키가 정말 버림 받는 것의 두려움에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포조의 대사는 언뜻 무의미한 대사처럼 보이지만 모든 말에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에 무의미해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느껴지게 된다.

폭력적이고 거만한 포조에게 수동적인 럭키는 가끔 가슴 속에 꾹 눌린 생각을 폭발시킨다.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쉼 없이 쏟아내는 그의 '말'은 거침이 없다. 억압받는 현실에 대한 분노였을까. 그러나 단 하루 사이에 럭키는 벙어리가 되고 포조는 장님이 되어 등장한다. 럭키는 왜 벙어리가 되고 포조는 장님이 됐을까. 하루와 하루 사이의 그 간극의 거대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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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과정'에 대한 재발견


기다림에 대해 혹자는 기약 없는 막연함에 '고통'이라 하고, 또 혹자는 그 끝에 찾아올 기쁨에 '행복'이라 한다. 지극히 사적인 기다림일 수도,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거시적인 기다림일 수도 있다. 어쨌든 삶은 늘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번 공연에서 중요한 것은 고도의 의미나 고도를 기다린다는 행위 자체보다 그를 기다리는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행동'를 하면서 기다리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그 '행동' 자체가 바로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베케트가 던지고 간 인생에 대한 질문을 끊임 없이 해보며 우리네의 인생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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