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족보다 더 가족적인, 마카담 스토리 [영화]

인간은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존재이다
글 입력 2018.05.1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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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을 다룬 영화. 소소하지만 일상과 관계에 대한 많은 통찰이 담겨있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의 서사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각각 2층에 살아 엘리베이터를 탈 일이 없어 수리비를 내지 않은 스테른코비츠와, 어머니와 함께 살지만 혼자인 외로움 속에 있는 샬리, 그리고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홀로 사는 아랍계 이방인 하미다. 이들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각자의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다.



스테른코비츠와 야간 근무 간호사


 엘리베이터 비용을 내지 않는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기로 주민들과 합의한 스테른코비츠는 하필이면 그 다음날에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타게 된다. 주민들의 눈을 피해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 신세가 된 스테른코비츠는 먹을 것을 찾아 밤에 나와 근처 병원 자판기에서 감자칩을 빼먹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밖에 잠깐 나와서 쉬던 간호사와 조우하게 되는 스테른코비츠. 내일도 이 시간에 쉬러 나온다는 간호사와 또 만나기 위해 거짓말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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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일화에서 감동적인 부분은 단연 스테른코비츠가 이 소소한 관계를 위해 행하는 헌신이다. 이들은 서로 이름도 알지 못하는 관계에 있지만 스테른코비츠는 간호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리한 일까지 감행한다. 외로운 이에겐 잠깐 동안의 시간조차 소중하다. 그 잠깐의 만남을 위해 매일 온종일 준비하는 그 모습이 애처로워보이면서도 따뜻하다.



샬리와 이웃집 잔 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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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리의 옆 집에 한 물 간 여배우 잔 메이어가 이사 온다. 샬리는 이사 온 사람의 작은 골치들을 도와주면서 잔 메이어와 친해지게 된다. 그녀가 배우라는 것을 알게 된 샬리는 내일도, 모레도 그녀의 옛 영화를 보러 온다. 잔 메이어는 더 이상 잘 나가는 배우도 아니지만 또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게 되는데, 그 과정에는 샬리가 함께 있다. 그는 좌절하는 잔 메이어를 달래주고, 기운을 북돋아준다. 둘은 서로 세대가 다르지만 잔 메이어는 그의 위로를 통해 다시금 용기내어 침체기에서 점차 벗어난다.



아지자 하미다와 우주인


우주를 여행하던 존 매켄지는 지구에, 그러니까 이들이 사는 아파트 옥상에 불시착하게 되고 고층에 사는 아지자 하미다의 집에 들어오게 된다. 나사와의 극적인 전화 연결을 통해 존은 이틀 후에 구조되기로 하고, 그 전까지 하미다의 집에서 머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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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인 존은 하미다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지만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해나간다. 하미다는 존에게서 수감된 아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잘해준다.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자막을 통해 불어와 영어 모두 이해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둘이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대화가 잘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모두 이방인인 존 매켄지와 아지자 하미다가 각자의 언어로 유대를 쌓는 과정이 따스하다. 특히 우주에 대해, 서로 다른 언어로는 다소 어려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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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다의 고장난 싱크대를 몇 번 고쳐보고자 했으나 결국 떠나는 마지막까지 싱크대를 고치지 못한 존 매켄지. 그가 떠나는 날에 고장난 싱크대를 한 번 더 쳐다보는 장면은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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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파트에서 맺어진 이 세 관계는 그간 느껴보기 힘들었던 인간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많은 매체에서 그려내는 것처럼 주인공들의 관계가 이성 간의 애정 관계(내지는 동성 간의 사랑 관계)가 아니라는 점은 이 영화에 참신함을 더한다. 이들은 서로에게서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하며 온기를 느낀다. 그런 일련의 장면들은 나이, 국적, 언어, 사회에서의 역할과는 상관 없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회 제도적으로 엮인 가족관계가 전혀 나오지 않음에도 가족적이다.

영화는 우리가 정서적으로 '가족', '가족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어떤 제도보다도 잘 구현해낸다.


 
괴음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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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각 서사의 주인공들은 동네에서 자주 괴상한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그 소름끼치는 소리의 정체가 아기의 울음소리이거나 호랑이 소리, 악령이라는 등 여러 추측을 하며 두려워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좋은 점 중 하나는 이 괴음의 정체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밝혀준다는 점이다. 이 괴음의 등장은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과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이 괴음이야말로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확실히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얼마나 인간 관계에 있어 서로를 의심하고, 재고, 따지면서 그들을 만나는가. 꼭 인간관계에서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스테른코비츠가 엘리베이터를 한 번 타기 위해 엄청나게 고심하는 걸 보면 인간은 너무나도 사소한 문제들에 힘겨워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괴음은 인간과의 만남을, 혹은 일상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인 듯 하다. 이 글에서는 괴음의 정체를 밝히지 않겠지만, 누군가 영화를 보고 이 괴음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드는 생각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일 것이다. 소소하면서도 따뜻한, 그러면서도 용기를 북돋아주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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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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