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자 살며 느끼는 것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5.16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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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


 지난해 MBC 연예대상에서 <나혼자 산다>는 MC 전현무의 대상 수상을 비롯해 올해의 프로그램상, 베스트 커플상 등 무려 8개의 상을 독식했다. 이 프로그램이 이토록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멤버들의 호흡, 재치있는 편집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최근 증가한 1인 가구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필자는 20년을 대구에서 살다가 서울로 대학을 온 후 직장을 서울에서 다니는 아버지와 형식적으론 동거 중이지만, 아버지께서 대구에 내려가시는 금, 토, 일 기본 3일과 각종 출장, 비즈니스 미팅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 독거를 했으며, 얼마 전 아버지의 직장이 대구로 완전히 옮기게 되어 이젠 100% 혼자 사는 삶을 앞두고 있다.

 그간 혼자 집에 있으며, 또 이젠 완전한 물리적 독립을 앞두고 혼자 살며 느낀 점들을 풀어놓고 싶었다. 혼자 사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며,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1. 생각보다 덜 외롭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해 가장 걱정했던 것은 외로움이었다. 내내 가족과 함께 하다가 연고도 없는 지역의 낯설고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생각보다’ 혼자 사는 것은 외롭지 않았다.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짐으로 인해 가끔은 상념에도 잠겨보고, 더운 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예능프로를 보며 낄낄거리기도 하고, 새벽까지 축구를 보고 늦잠을 잘 수도 있었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은 분명한 자취의 장점이었다. 또, 가족과 함께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의견 충돌들이 있고, 그 속에서 느끼는 고독함과 서운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있는데 혼자 살면서는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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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은 외로움에 몇 안되는 치료제이다(tvN 드라마 혼술남녀 캡쳐)


 하지만, 가끔 외로울 땐 그 감정의 크기가 상당하다. 과제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는 고된 서울살이는 이따금 사람을 극도의 외로움 속으로 밀어 넣는다. 가족들에게 말하면 괜히 걱정만 끼치는 것 같고, 마땅히 연락할 친구도 없을 때 혼자 사는 이 공간은 참 답답하고 싸늘하게 느껴진다. 거기다가 혹여나 독한 감기라도 겹친 날엔 정말 최악이다.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것은 잠들기 전 맥주 한 캔, 그리고 눈을 뜨면 또 다시 반복되는 바쁜 일상뿐이다.



2. 사람은 참 게으르다.

 필자는 원래부터 꽤나 게으른 편이다. 눈앞에 닥치기 전까진 일이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타입이다. 지금 쓰는 이 글조차 마감일에 임박해서야 본격적으로 진도가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자취를 하며 극대화되는 것 같다. 빨래와 쓰레기는 쌓여가며 탑을 이루고 옷은 침대와 의자 위에 벗어던져놓은 바람에 앉고 누울 곳이 없다. 밥도 짓기 귀찮아 햇반을 사먹는 경우가 많았으며, 월말에 돈이 떨어지면 햇반 대신 라면을 먹는다. 설거지는 라면을 끓일 냄비가 없을 때 까지 미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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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자취생의 주방. 필자의 주방도, 자취하는 누군가의 주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필자만 이런 줄 알았건만, 자취를 하는 대부분의 친구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 청소, 빨래, 설거지 등 기초적인 가사노동은 다들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나혼자 산다>에서 집이 한없이 깔끔한 일부 출연자들 보다 씨잼, 기안84, 이시언 등의 인물들에게 더 공감이 가는 이유도 이들의 사는 모습이 나와 비슷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참 게으르다.



3. 새로 배우는 것들

 자취를 하며 새로이 배우는 것들이 참 많다. 월세 계약 과정에서 알게 되는 중요한 부동산 지식들, 분리수거나 음식물 쓰레기 배출에 대한 규칙, 색깔별로 옷을 나눠 세탁하는 방법, 밥을 짓고 간단한 반찬을 만드는 방법,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는 방법, 옆집과 윗집의 소음을 참고 사는 법 등 너무 많은 것들을 짧은 시간 내에 터득해 나간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책 속의 지식에 열중했다면 자취는 너무 갑작스럽게 야생 한복판에 던져져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지식들을 익히며 아노미 상태에 빠지다가도, 여태껏 일절 한 마디도 안 하시고 이를 행해주신 부모님에 대한 존중과 경외감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다. 끼니 거를 일 없고, 학교 외에 신경 쓸 일이 많지 않았던 그 때는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클리셰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필자가 자취를 하며 가장 그 의미를 새롭게 새기고 배우게 된 것은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애정이다.

*

 혼자 살고 있는 이 시간은 미래의 필자에게 아주 소중하고 중요했던 때로 기억될 것 같다. 다만, 하루하루에 얽매이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필자만의 시간이 퇴적되어 어느 날 돌아보면 높은 언덕이 되어있으리라 믿는다. 필자와 함께, 오늘도 혼자 살아가는 여러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류형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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