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자, 그리고 개인주의에 대하여 [사람]

개인주의자 선언, 그리고 나의 이야기
글 입력 2018.05.1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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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친구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에게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그 습관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밥 먹을 때, 자습을 할 때. 소위 말하는 ‘무리’라는 집단에 드는 것이 당연해야 했고 그 무리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빠지지’않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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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학교 2017 메인컷
 

 20살이 되고 대학에 입학한 후, 역시나 사람들은 서로를 ‘스캔’했다. 술을 먹다가 친구가 되기도 했고, 통학을 해서 친해지기도 했으며,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모인 무리들은 시간이 지나며 구성원이 변하기도 했고, 너희는 ‘나대는 무리’, 너희는 ‘과 생활 안 하는 무리’로 분류되어갔다.

 시간이 흐르고, 휴학과 같은 여러 사정으로 필자는 혼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혼자여서 할 수 없는 일이 되었고, 혼자 버스를 탈 때면 깔깔대는 사람들의 소리들이 왠지 더 나를 외롭게 만들어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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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혼술남녀 스틸컷


 하지만 혼자임이 당당해지고 싶었다. 결국 '나'의 삶이지, '같이' 이루어 나가는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의 기류도 변화되어갔다. 대학 내의 ‘아싸=아웃사이더’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갔다. 학과생활을 하지 않고, 술자리를 가지 않고, 누군가 함께 하지 않는 것이 더이상 ‘소외’되는 행동이 아니게 되었다.
 
 혼자 무언가 하는 것이 당당한 행동으로 인식되어갔다. 혼영, 혼술 이란 말이 유행이 되고 사람들은 조금씩 누군가와 어울려서 겪는 ‘일’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했다. 좋은 점은 있다. 여러 인간관계에 치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가 주체가 되어 나에게 집중한다는 것. 뭐 반대로 인간관계로 가질 수 있는 친화력을 잃고 외로움을 갖게 된다거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져야하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무리생활을 강요한다면, 아마 난 질색을 하며 거부할 것이다. 필자가 이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 제목에 끌린 것도 바로 이 이유이다. ‘개인주의’가 나에게 있어서는 그리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필자가 이 책을 선택하여 읽고 있다고 했을 때 “너는 좀 개인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라며 핀잔했다. 내가 어떻다고. 개인주의가 비난받을 일인가? 가끔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밥 먹고 술 먹고 카페가고 그렇게 지내면 최소한의 관계는 유지할 수 있잖아. 원치 않는 관계를 만들기도 싫을 뿐더러 지워질 관계는 미련은 갖지 않는다. 뭐, 필자의 지금 생각은 그렇다. 이 책의 <개인주의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부제와 글을 읽으며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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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정답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어사 박문수나 판관 포청천처럼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엄벌하는 것을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 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주의를 조금 더 확대해서 생각해보자. '나'가 아닌 '사회로'. 우리나라는 집단 중심의 사회이다. 그래서 '개인주의'라는 말은 이기적이고, 집단의 화합을 방해하는 주홍글씨가 되어버렸다. 집단에서 우리는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하고, 남을 존중할줄 알아야하며, 타협하고 연대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나아지지 않을까? 그 집단은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쨌든 간에 집단에서 벗어나 '개인'이 주체가 되어 타협하고 그들과의 경계를 인식해야하며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생각해야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곳에서 그저 타인들이 하는 판단과 당신의 판단을 동일시하며, 그들이 하는 것은 곧 자신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사실은,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그렇게 당신의 잣대를 잃어간다.

 점차 뒤로 물러난다. '나'라는 '개인'을 알지 못한 채. 반대로 누군가 대신하겠지, 내가 아니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더 용기있는 사람이 있을거야. 그런 개인은 결국 집단을 삼키며, 집단이 옳은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한다. 촛불집회가 있던 제작년의 어느 날, 누군가는 참여하겠지. 누군가는 그들을 벌하겠지. 당신은 그렇게 그 '누군가'를 그저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는가. 집단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하며, 당신을 숨겨줄 구멍이 되어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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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대도 기차는 간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거절'이다. 남에게 나는 착한 아이, 부탁을 잘 들어주는 아이. 그런 아이로 남기 위해 수많은 내 자유를 삼켰을까? 이 구절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아버지는 늘 술약속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럴 떄마다, "아빠! 그냥 싫으면 싫다고 말해. 계속 그렇게 거절 못하면 아저씨들 계속 그런다고" 그렇게 말해놓고, 정작 나는 "내 성격은 물렁해서"라며 변명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다. 내 자신이 아무리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도 그게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기 떄문에. 좋은 사람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내가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은 어쩌면 그들에겐 그저, 그런 일이 었을지도 모르니까.

 지금도 이렇다. 인간관계에서 누군가에게 나라는 존재는 늘 환영받을 수 없다. 경우에 따라 나는 어떤 사람에게 눈엣가시가 될 수 있고, 거슬리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매번 혼자 걱정하고 손톱 뜯고 있는 일은 바보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는 그랬지만, 지금은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내 '자유'와 '행복'을 지켜야겠다. 집단에게 희생하지 말자. 그게 첫 번째다.

 개인주의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개체로서의 개인이
사실상 사회보다 선행하여
실재(實在)한다는 주장을 취하기도 하고,
가치면에서 또는 권리상 개인을 우선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취하기도 하는 의미.

 그리고 개인주의의 옆에는 '이기주의'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 당신에게 개인주의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 사회문화가 잘못되었으니 당장 바꾸자는 말도 아니다. 그저 '개인', '나,자신'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으로 귀결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개인의 행동이 개성적인 행동이되고, 개성적인 행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김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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