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워지는 이름들에 대하여 [사람]

글 입력 2018.05.1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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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아마도 '투스카니 의인' 이야기일 것이다. 투스카니 의인은 며칠 동안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세간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투스카니 의인? 그 독특한 이름에 이끌려 필자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른 것을 클릭해보았다. 과연 각박한 요즘 세상에서 듣기 힘든 가슴 따뜻한 이야기였다.



투스카니 의인, 벨로스터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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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YTN 뉴스
 

지난 12일 오전 11시 30분경,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던 코란도 차량 한 대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상태로 멈추지 않고 달렸다.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이상함을 감지한 다른 운전자들은 119에 신고를 하고 있던 와중, 뒤에 있던 투스카니 차량이 코란도 차량을 앞질러가 자신의 차를 들이받아 멈추도록 하였다. 코란도 운전자는 본래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전날의 과로로 차량에서 운전 중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고 한다.

자신이 입을 손해는 생각하지 않고 한 사람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차를 희생한 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유명 자동차 커뮤니티를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따뜻한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일화는 일파만파 퍼졌고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투스카니 운전자의 선행과 따뜻한 마음에 감동받은 현대에서는 단종된 투스카니 대신 그와 비슷한 현대의 '벨로스터' 차량을 의인에게 선물한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자본주의로 지워진, 의인의 이름

투스카니 의인.jpg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그에 마땅한 선물도 다 좋다. 그러나 현대가 의인에게 '벨로스터'를 선물하자 누리꾼들 사이의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누군가는 "현대가 선물을 한 의도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이는 분명 기업의 홍보를 위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였다. 누군가는 "왜 더 좋은 차를 선물하지 않고 고작 벨로스터를 선물했는가"라고 말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는 투스카니와 벨로스터가 나란히 상위권에 올랐고 두 차의 가격을 묻고 답하는 글들도 상당하였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의인 한영탁 씨의 이름은 지워지고 '투스카니'와 '벨로스터', 두 자동차 기종의 이름만이 남았다.

인터넷 뉴스 기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 뉴스 기사들은 클릭 수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사용하고 있음은 잘 알고 있었다. 의인 한영탁 씨의 행동에 집중하고 있는 기사들도 있었지만 다수의 헤드라인들은 투스카니, 벨로스터, 두 차종의 가격, 현대 등등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키워드로 점철되어 있었다.

단순히, 자동차라는 가격이 비싼 고관여 제품과 관련된 일화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던 걸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전에도 다른 것들에 집중하느라 중요한 본질을 놓칠 때가 있었다. 이번 투스카니 의인의 의로운 행동은 자동차의 가격에 가려졌다. 꼭 의인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극적이고 관심을 가질만한 가치에 집중하느라 때로는 누군가가 입을 피해를, 누군가의 엄청난 성취를 놓칠 때가 있었다.



OO대 OO녀, XX대 XX남

대학에 의한 이름 가리어지기도 심각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특정 대학의 인물이 이슈가 되었을 때, 항상 사람들은 서울대 OO녀, 연대 OO남 등의 칭호를 하사한다. 그 사람의 본질과 이름보다는 학벌이 중요한 것이다. 필자 또한 대학에 와서 이런 일들을 많이 겪어 밖에 나갈 땐 과잠을 입고 다니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다. "타짜"라는 작품에서 배우 김혜수 씨의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대사가 나온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필자의 학교를 알게 되면 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80% 이상이다. 이대를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 중 몇몇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이대 다니는 애들은 정말 스타벅X 커피밖에 안 마시니?", "이대에 정말 루이비X 가방이 그렇게 널렸어?"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엔 화가 났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에 대한 편견에 눈이 가리어진 채로 필자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그 시선들이 불편했다. 그들은 필자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 이대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이대를 다니기 때문에 필자가 샤랄라 한 치마에 구두만 신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의 머릿속에 필자는 이름 석자가 아닌 "이대에 다니는 OOO"으로 기억되기 때문이었다.

상처도 많이 받았다. 괜히 이 학교에 왔나, 반수를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괜찮아진 것은 아니지만 많이 무뎌졌다. "이대 나온 여자야"를 외치는 사람에게 "상당히 고리타분하시네요"라고 웃으며 한 방 날려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것으로 인해 중요한 본질은 지워지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필자가 성장하는 것도 좋겠지만 언젠가는 다른 것들보다 본질 자체에 집중하는, 중요한 것이 지워지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도래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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