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허망한 삶 속에서 무엇이라도 붙잡기 위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글 입력 2018.05.2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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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_포스터.jpg
 

처음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해서 프리뷰를 쓸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시놉시스를 읽었음에도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제대로 알 수 없어서였다.

“시골길. 앙상한 나무가 한 그루 서있을 뿐 아무 것도 없다. 그 나무 아래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실없는 수작과 부질없는 행위를 반복하며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이어서 포조와 그의 짐꾼 럭키가 등장하여 많은 시간을 메운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 지쳐갈 때 쯤 한 소년이 등장하여 말한다. ‘고도씨는 오늘 밤에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시겠다고 전하랬어요.’ 이렇게 어제인지, 오늘인지, 혹은 내일일지 모르는 하루가 저물어 가는데…“

시놉시스를 통해서 알 수 있던 것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누군지, 언제올지 알 수도 없는 고도를 기다린다는 사실 뿐이었다. 프리뷰를 쓸 당시 나는 3시간에 육박하는 연극이 저렇게 간단한 내용은 아닐거라 믿으며 시놉시스를 너무 간단하게 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극을 보고 난 지금. 다시 저 시놉시스를 다시 읽어보니 놀랍게도 저 안엔 3시간의 연극이 전부 들어있었다.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그 심심함을 메워주는 포조와 럭키,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년. 이 구성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1막이자 2막이었으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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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재밌어서 한없이 지루한

연극은 재밌었다. 쉴 새 없이 장난치고 맥락이 없는 대화를 주고받음에도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와 그걸 뒷받침해주는 연출은 연극에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시간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 안에는 ‘스토리의 진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3시간짜리 무대라고 하면 엄청난 대서사시를 그려낸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나폴레옹>은 3시간의 육박하는 시간동안 거의 한 인간의 생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3시간이라는 시간이 ‘허용’된다. 한 무대를 보면서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의 집중력은 한계가 있기에 보통 3시간짜리 무대를 꾸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이야기가 준비돼 있어야한다. 하지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저 짧은 시놉시스로 설명이 가능할 정도의 이야기를 3시간동안 보여준다.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사실 그 일들은 허망할 뿐이다. 존재했다고도 확언할 수 없는 일들. 무언가 무대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정작 궁금한 건 해소되지 않고, 많은 일들이 벌어진 것 같지만 결국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무언가 변화를 꾀하려는 시도도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랬지’하는 대화로 수포로 돌아간다. 결국 연극의 시작부터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었고, 연극의 마지막에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노련한 연기와 연출 덕에 그 순간 순간은 재밌으니까 지나갈 수 있지만 연극 전체를 봤을 땐 답답했다. 코믹한 분위기가 아니었으면 3시간을 버틸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끊임없이 재밌었는데, 그 실없는 말장난이 계속해서 반복되니 한없이 지루했다. 뭔가 해결이 됐으면 좋겠는데, 아무것도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포조와 럭키를 만나서 하는 일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시간 보내기’에 불과하다. 크게 웃고 즐거워하면서도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지루함에 좀이 쑤시는 느낌. 이 느낌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지배하는 전반적인 감상이었다. 그래서 사실 감상하는 게 힘이 든 연극이기도 했다. 하지만 연극을 보고 오니, 저 힘겨움마저도 연극이 의도한 바였던 듯하다.

그 힘겨움 속에서 나는 계속 고민했다. 그래서 고도는 언제 오는데? 누군데? ‘시간 보내기’가 힘들었던 만큼 빨리 고도가 와서 이 상황이 정리되길 바랐다. 그래, 연극을 보는 나조차도 고도를 기다렸다. 진전이 없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삶에 무언가 진전이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결국 고도는 오지 않았고 둘의 삶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고도’가 중요한 것일까. 그가 누구고, 언제 올 것인가보다. 시간을 보내며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저 둘의 그 시간들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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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기에 기억조차 되지않는

하지만 그 시간들을 들여다보려고 해도, 장벽이 존재한다. 1막과 2막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장 어제의 일임에도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에스트라공과 포조, 럭키를 차치하고서라도 2막은 수많은 논리적인 오류를 빚어낸다.

1막 내내 신발이 작다고 툴툴댔던 에스트라공이 2막에선 이제는 신발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분명 멀쩡히 잘 보고 블라디미르와 눈을 맞추며 대화했던 포조는 갑자기 장님이 되어있고, 수많은 말들을 쏟아냈던 럭키는 오래전부터 벙어리였다고 한다.

블라디미르만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니, 차라리 블라디미르와 관객이 집단적으로 꿈을 꾼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그래도 나름 객관적인 입장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도 그럴진대, 그 상황 속에 속해있는 블라디미르는 오죽할까.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제에 블라디미르는 당황스러워하고, 허망감을 느낀다. 에스트라공과 포조에게 반복해서 ‘기억나지 않냐’며 묻던 블라디미르의 감정은 고도의 소식을 전하는 소년에 이르러서 폭발한다.

“틀림없이 넌 나를 만난 거다. 내일이 되면 또 나를 만난 일이 없다는 소리는 안하겠지?”

약간의 초조감과 슬픔이 묻어나는 그 목소리에도 소년은 답을 하지 않는다. 블라디미르는 소년을 잡으려 하지만 잡지 못한다. 아마도 소년은 어제뿐 아니라 그제도 엊그제도 왔을 것이고, 내일도 찾아올 것이고, 내일도 고도씨는 내일 온다고 말할 것이며, 내일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블라디미르의 그 허망한 표정을 보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과 그의 삶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삶 또한 수많은 논리적 오류 속에 있다. 한때는 나의 세상이었던 존재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것, 스쳐지나가도 인사조차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 만큼 아이러니한 일이 있을까. 한때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떨리게 했던 무언가를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큼 아이러니한 일이 있을까. 이는 포조나 럭키가 블라디미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오류다.

블라미디르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그 논리적 오류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이라곤, 과거가 존재했다고 알려주는 것이라곤 ‘기억’밖에 없는 것이다. 기억이 없이는 과거와 단절돼도,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도 그게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 길이 없다. ‘기억’이 없으면 결국 과거는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하고 흘러가 버릴 뿐이다.

그런데 이 기억이라는 것도 문제가 많다. 우리는 생각보다 일상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일상이 우리 삶의 전반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을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너무 반복되기에, 혹은 어떤 특별한 것으로 향하는 과정으로 여겨지기에 ‘의미 없다’고 분류해 우리의 뇌가 좀처럼 세세하게 기억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를 제외한 사람들이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에게 어제는 그저 ‘고도를 기다리는’ 어느 날 중 하루였을 뿐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도를 만나는 것이기에, 그를 기다리는 하루하루는 ‘의미 없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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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가 보다 선명해지기 위해

블라디미르를 보며 내가 무언가의 과정이라며, 의미없게 보내버린 나의 일상은 뭐가 있을지 고민해보게 됐다. 나는 어떤 ‘고도’를 기다리며, 그 과정을 그렇게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하찮게 여기고 있는 걸까. 무언가 의지적인 행동을 하려다가도 ‘고도를 기다려야지!’란 말 하나에 다시금 주저앉는 그들의 모습이 마냥 한심해보이기만 하진 않던 것은 나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모든 것을 박차고 뛰어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언젠가 찾아온다고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행복과 안정을 기다리며 나는 머물러 있지 않나. 현재는 행복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으니 의미가 없다며 시간을 보내고 있진 않나.

사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자체가 메시지를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처럼 두고 가는 극은 아니라, 고민이 시작되기만 했을 뿐 나 또한 무슨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고민만으로도 ‘내일을 기다리는’ 나의 ‘오늘’을, 오늘만으로도 소중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내일을 기다리더라도 보다 의미 있는 오늘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기억해내지 못하면 단절되고야 마는 허망한 것이 과거고, 그게 우리네 삶일지라도. 그 허망한 것조차 붙잡아서 어떻게든 기억하고 의미를 만들어내야만 보다 선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게 우리 삶이니 말이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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