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약속을 치밀하게 기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18.05.2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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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의 약속


 초등학교 4학년 즈음, 그 때의 이야기다. 그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단어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의심할 수가 없었다. 단어란 것은, 또 문장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눈으로 볼 수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내 생각을 단번에 깬 동화책이 있었다. <프린들 주세요>다.

 <프린들 주세요>는 베스트 셀러 동화책이다. 주인공이 장난으로 펜을 프린들로 바꾸어 말하며 모두가 펜을 프린들이라 부르게 된다는 내용의 동화로, 단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라 사라질 수도 있고 생길 수도 있는, 일종의 약속이라는 것을 나에게 강렬하게 가르쳐준 책이었다. 읽은지 십년도 더 된 책이지만, 그 책의 제목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펜을 보면 가끔 프린들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만큼 충격을 준 동화였다.

 이 언어를 쓰도록 하자. 이런 약속은 내 깨달음이 무색할만큼 곳곳에서 빠르게 이루어진다. 새로운 단어들이 생기고, 또 헌 언어들이 닳아 사라진다. 새로운 단어들이 생기는 것은 때마다 놀랍지만 알던 단어들이 사라지는 것은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가끔은 단어는 그대로 있는데 약속의 내용이 바뀌기도 한다.

 

약속을 치밀하게 기록하는 사람들


 새로운 단어가 생길 때마다, 그리고 썼던 단어들이 내 입과 혀에게서 잊혀질 때마다, 나는 언어의 속도에 두려움을 느낀다. 물론 나 역시도 그 속도에 동참하는 많고많은 사람들 중 하나겠지만. 고작 언어 사용자인 나도 이만큼 속도에 두려운데, 사전 편찬자는 오죽할까. 하룻밤 사이에 언어와 인식이 뒤집히는 요즘, 그들은 약속들의 속도를 따라잡으려 매일이 고군분투일 것이다.

 그들의 삶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른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사전에 원하던 단어가 없으면 집어 던졌던 것, 종이 사전은 멀리한지 오래된 것, 때로는 정의가 고리타분하다며 화냈던 것. 그들의 노고를 모른 채 나는 수많은 무례를 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그들, 사전 편찬자들의 삶이 참으로 궁금하다. 생각해보면 참 베일에 싸여져 있는 삶이다. 매일 단어를 읽고 또 쓰는 삶이란.

 한 줄의 문장도 가끔 그만큼의 무게가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 문장, 이 단어 하나 하나가 나와 독자 사이의 약속이기에. 사전 편찬자들에게 그 무게란 어떤 것일까.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무게를 속시원히 파헤쳐줄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책의 저자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출판사 ‘메리엄 웹스터'에서 20년동안이나 사전을 써온 ‘코리 스탬퍼'다. 매일 같이 언어에 대해 고민하며 각 언어들을 ‘창작'-사용되는 언어, 의미 있는 언어들을 정리하여 기록한다는 것은 창작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하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았다고 한다.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캐치해내고 뇌를 쥐어짜내며 정의를 완성해내는, 무해한 노역자들. 이 책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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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트>

 주차장에선 이따금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고, 건물 뒤편 유리에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매사추세츠 주의 변화 중인 동네. 벽돌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면, 사람들은 있지만 소리가 없는 기묘한 사무실이 나온다. 그 안에는 하루에 8시간 이상 칸막이 책상에 앉아 종이 판지 맛이 나는 커피를 들이부으며 오직 단어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전의 작가이자 편집자인 그들은 침묵 속에서 세상의 모든 언어를 신중히 채집해 체에 거르고, 분류하며, 정의 내린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출판사 메리엄 웹스터에서 20년째 사전을 써온 사람, 코리 스탬퍼도 그중 한 명이다.

 '읽기'가 생활이고 '쓰기'가 직업인 그녀의 삶은 가장 느릴 듯 보이나 스펙터클하고 역동적이다. 종잡을 수 없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제멋대로인 언어를 한 권의 책으로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은 사전에 오른 단어 수만큼이나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다.
 
 이 책은 "근사하고 음탕한 언어를 다루는 회사에서 일하는 건 끝내주는 경험"이라고 말하는 사전 편집자의 모험기로, 시종일관 유쾌하고 지적이며 경이롭기까지 하다. 선천적 유머 본능의 소유자인 그녀가 안내하는 현장으로 가보자. 작가, 기자, 편집자, 카피라이터를 포함해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씨름하며 매일을 보내는 세상의 모든 언어 노동자들이라면 그녀의 통찰과 필력에 곧바로 반해버릴 것이다.



 

<저역자 소개>


코리 스탬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 메리엄 웹스터에서 20여 년 넘게 일해온 사전의 작가이자 편집자다. 문자 중독 사춘기를 보내고 스미스 칼리지 의대에 입학했으나 자신의 길은 인문학에 있음을 깨닫고 중세 아이슬란드 계도 소설 강의를 들으며 라틴어, 그리스어, 고대 노르웨이어, 중세 영어 등을 공부했다. 메리엄 웹스터 유튜브 채널 [Ask the Editor]에서 논쟁적 단어들과 그 용법을 정확히 풀어내며 인기를 모았고, 「워싱턴 포스트」, 「가디언」, 「뉴욕 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등에 언어와 사전의 역할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한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전적으로 언어에 헌신하면서 서서히 눈이 멀어가는 단어광이자 언어 애호가이며 어휘 수집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정의 내려야 한다는 직업적 강박에 사로잡힌 채, 오늘도 좀 더 적확한 표현을 찾아 머릿속을 헤집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운영하는 블로그 주소는 korystamper.wordpress.com/, 번역하면 '무해한 노역'.



옮긴이 - 박다솜

사전 속 발음기호에 매료되어 수집하듯 여러 외국어를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진학해서 문장을 도해하고 단어의 품사를 정확히 판정하는 기술을 배웠다. 번역을 시작한 이래 매일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스릴을 즐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관찰의 인문학』, 『죽은 숙녀들의 사회』, 『여자다운 게 어딨어』, 『원더우먼 허스토리』, 『독립 수업』,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암호클럽』 시리즈 등이 있다.


 
<목차>

서문
1장. Hranfkell – 언어와 사랑에 빠지는 것에 관하여
2장. But – 문법에 관하여
3장. It's – '문법'에 관하여
4장. Irregardless – 틀린 단어에 관하여
5장. Corpus – 뼈대를 수집하는 일에 관하여
6장. Surfboard – 정의에 관하여
7장. Pragmatic – 예문에 관하여
8장. Take – 작은 단어에 관하여
9장. Bitch – 나쁜 단어에 관하여
10장. Posh – 어원과 언어적 기원주의에 관하여
11장. American Dream – 연도에 관하여
12장. Nuclear – 발음에 관하여
13장. Nude – 독자 편지에 관하여
14장. Marriage – 권위와 사전에 관하여
Epilogue – 끝내주는 일
감사의 말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 WORD BY WORD -

원제 : WORD BY WORD
 
지은이 : 코리 스탬퍼

옮긴이 : 박다솜

펴낸곳 : 도서출판 윌북

분야
에세이, 인문학, 책읽기/글쓰기

규격
142 * 211 * 21 mm

쪽 수 : 388쪽

발행일
2018년 5월 20일

정가 : 16,500원

ISBN
979-11-5581-153-5

문의
도서출판 윌북
031-955-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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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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