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단어에 집착하는 모든 이들에게 -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글 입력 2018.05.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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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단어에 집착하는 모든 이들에게
-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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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얼마나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얼마 전 곡 소개글을 쓸 때의 일이다. 나는 보컬의 목소리가 꿈처럼 몽환적이어서 현실같지 않은 목소리라는 뜻에서 'dreamy'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는 해리 포터에서 작가가 루나 캐릭터를 표현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영어 강사인 엄마에게 여쭤보니 dreamy는 '너무 좋아서 꿈에나 나올 것 같은' 이라는 뜻이라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매번 연애 상황의 대화를 예문으로 가져오는데, 이 때는 "He is a dreamy guy!"라는 예문을 사용했다. 즉, "그는 정말 완벽해서 꿈에나 나올 것 같은 남자야!")

검색 결과 사전 상에는 '몽환적인'이 좀 더 알맞은 해석이었지만 엄마의 예문도 분명 들어본 문장이었다. 그러니 애매했다. 게다가, 엄격히 말하자면 영어 원어민 화자도 아닌 주제에 영어단어로 어떤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이 젠체하는 샌님같아 보여서 그 표현은 새벽 한 시에 급히 수정했다.

어제도 친구가 보낸 접시 사진에 '와, 그거 정말 fancy하다'고 답했다. (맞다. 아직 암스테르담 교환학생을 하며 늘어난 영어에 대한 자부심 '뽕'이 빠지지 않았다.) 화려하다 혹은 유려하다, 장식이 많다 등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말. 뭔가 화려하지만 귀엽기도 하고 좀 비싸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단어로는 런던의 Victoria & Albert 박물관에서 느낀 'Posh'를 들 수 있겠다. 영국 귀족 특유의 비싸보이는 장식, 홍차 찻잔을 떠올리면 얼추 그런 분위기가 된다. 이런 단어들은 번역이 참 힘들다. 영어 실력이 모자란 탓도 있겠지만 그 언어만이 가진 고유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 예시는 그만하고, 한국어 단어의 예시를 들어보자. 음악 리뷰 중에 종종 보는 단어가 '부유하다'이다. 의미가 앨범 전반을 부유하고, 보컬의 음색이 몽환 속을 부유하고. 말하자면 둥둥 떠다닌다는 뜻인데 웬지 '둥둥 떠다닌다'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부유한다'고 말하는 것은 글의 퀄리티를 한층 높이는 느낌이다.

*

무언가를 글로 다시 표현하려는 사람에게 단어의 선택은 이렇게 중요하다. 전업 작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SNS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상사에게 제출할 기획안에 자신의 프로젝트 핵심 아이디어를 담지 않는가.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문맥에 맞게 배치하는 것은 좋은 글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이런 사실을 몰라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능력 혹은 노력이 부족하여 매번 자신의 기대에 못미치는 글을 만드는 것이다.

<알.쓸.신.잡> 시즌 1에서 소설가 김영하는 '작가란 단어를 모으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셔츠 포켓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유시민이 말한 단어를 적었다. 그 장면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단어들까지 모아 적어야 좋은 작가가 될 수 있구나. 그리고 이 단어들의 정확성을 담보하는 것이 사전이다. 그러니 사전 편집자는 이 모든 '단어중독자' 혹은 '일상의 작가'들에게 최후의 경계선을 지어주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들은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고, 8시간 내내 조용히 '종이 판자 맛이 나는 커피를 들이키며' 각각 단어의 뜻, 용법, 예문에 집중한다. 그 노고를 통해 우리는 단어의 뜻을 파악하고 글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

그런데 책을 읽기도 전에 아쉬운 점이 생겼다. 이 책이 영어 원어민이자 영어 사전 집필자의 경험으로 쓰인 글이기에 영어로 읽어야 작가가 원하는 의미를 정확히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 단어의 고유성과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글을, 전혀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작가가 어떻게 동의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번역자 또한 단어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소개글에서 가능성과 희망을 읽고, 부디 내가 작가의 집필 의도를 잘 전달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니면 영어 공부를 하는 셈 영어 원서를 읽어 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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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선 이따금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고, 건물 뒤편 유리에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매사추세츠 주의 변화 중인 동네. 벽돌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면, 사람들은 있지만 소리가 없는 기묘한 사무실이 나온다.
그 안에는 하루에 8시간 이상 칸막이 책상에 앉아 종이 판지 맛이 나는 커피를 들이부으며 오직 단어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전의 작가이자 편집자인 그들은 침묵 속에서 세상의 모든 언어를 신중히 채집해 체에 거르고, 분류하며, 정의 내린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출판사 메리엄 웹스터에서 20년째 사전을 써온 사람, 코리 스탬퍼도 그중 한 명이다.

‘읽기’가 생활이고 ‘쓰기’가 직업인 그녀의 삶은 가장 느릴 듯 보이나 스펙터클하고 역동적이다. 종잡을 수 없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제멋대로인 언어를 한 권의 책으로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은 사전에 오른 단어 수만큼이나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다.

이 책은 “근사하고 음탕한 언어를 다루는 회사에서 일하는 건 끝내주는 경험”이라고 말하는 사전 편집자의 모험기로, 시종일관 유쾌하고 지적이며 경이롭기까지 하다. 선천적 유머 본능의 소유자인 그녀가 안내하는 현장으로 가보자. 작가, 기자, 편집자, 카피라이터를 포함해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씨름하며 매일을 보내는 세상의 모든 언어 노동자들이라면 그녀의 통찰과 필력에 곧바로 반해버릴 것이다.


[저역자 소개]

지은이 코리 스탬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 메리엄 웹스터에서 20여 년 넘게 일해온 사전의 작가이자 편집자다. 문자 중독 사춘기를 보내고 스미스 칼리지 의대에 입학했으나 자신의 길은 인문학에 있음을 깨닫고 중세 아이슬란드 계도 소설 강의를 들으며 라틴어, 그리스어, 고대 노르웨이어, 중세 영어 등을 공부했다. 메리엄 웹스터 유튜브 채널 [Ask the Editor]에서 논쟁적 단어들과 그 용법을 정확히 풀어내며 인기를 모았고, 「워싱턴 포스트」, 「가디언」, 「뉴욕 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등에 언어와 사전의 역할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한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전적으로 언어에 헌신하면서 서서히 눈이 멀어가는 단어광이자 언어 애호가이며 어휘 수집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정의 내려야 한다는 직업적 강박에 사로잡힌 채, 오늘도 좀 더 적확한 표현을 찾아 머릿속을 헤집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운영하는 블로그 주소는 korystamper.wordpress.com/, 번역하면 ‘무해한 노역’. 


옮긴이 박다솜 

사전 속 발음기호에 매료되어 수집하듯 여러 외국어를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진학해서 문장을 도해하고 단어의 품사를 정확히 판정하는 기술을 배웠다. 번역을 시작한 이래 매일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스릴을 즐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관찰의 인문학』, 『죽은 숙녀들의 사회』, 『여자다운 게 어딨어』, 『원더우먼 허스토리』, 『독립 수업』,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암호클럽』 시리즈 등이 있다.


[추천사] 


* 굉장한 재미가 가득. 열정과 스타일이 깃든 작품 -더 타임스
* 별난 매력을 지닌 사전 편집자들을 만나 마음껏 즐기시라 -월 스트리트 저널
* 단 한 페이지도 버릴 것 없는 위대한 읽을거리! 사랑스럽다 -워싱턴 타임스
* 누군가의 입에서 태어나 사전에 등재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단어의 모든 생애가 여기에 있다 -뉴요커
* 언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성실한 노동자만이 이 책을 쓸 수 있다 -뉴욕 포스트
* 사람의 손으로 빚어내지만,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언어에 관한 생생한 기록 -북리스트
* 세상에서 가장 느리다고 생각한 일이 이토록 긴박하게 이루어지다니, 손에 땀을 쥐게 된다 -달라스 모닝 뉴스
* 언어에 대한 우아한 평가들, 말의 잔치가 열렸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차례]

서문
1장. Hranfkell – 언어와 사랑에 빠지는 것에 관하여
2장. But – 문법에 관하여 
3장. It's – ‘문법’에 관하여 
4장. Irregardless – 틀린 단어에 관하여 
5장. Corpus – 뼈대를 수집하는 일에 관하여
6장. Surfboard – 정의에 관하여
7장. Pragmatic – 예문에 관하여
8장. Take – 작은 단어에 관하여 
9장. Bitch – 나쁜 단어에 관하여
10장. Posh – 어원과 언어적 기원주의에 관하여
11장. American Dream – 연도에 관하여
12장. Nuclear – 발음에 관하여
13장. Nude – 독자 편지에 관하여
14장. Marriage – 권위와 사전에 관하여
Epilogue – 끝내주는 일 
감사의 말


[책 속으로]

우리는 사전에 적힌 정의를 읽되 그 정의가 어떻게 사전에 오르게 되었는지는 거의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사전적 정의는 단 한부분도 빼놓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사람의 손으로 빚어졌다. 그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날씨를 뜻하는 ‘고양이’의 의미를 간결하고도 정확하게 기술할 방법을 고민한다. -10쪽

문법적으로 분류하기 가장 어려운 단어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단어―영어에 편재하는 작은 단어들이다. 이들은 교활하게 변신하며 품사와 품사 사이에서 살아간다. -50쪽

우리는 영어를 방어해야 할 요새로 생각하지만 더 나은 유추는 영어를 아이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양육하지만, 종합적 운동 기능이 발달하자마자 우리가 제발 가지 않았으면 했던 바로 그곳으로 향하는 아이. 영어는 성장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산다. 바르고, 건강한 일이다. -81쪽

지금까지 내 일을 가장 잘 요약한 사람은 내 딸의 친구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자, 그 애는 입을 떡 벌리고 말했다. “세상에 맙소사. 제가 살면서 들은 제일 재미없는 일이네요.” 그러나 그 일이 천국의 직업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108쪽

세상에 맙소사, 언어는 정말 빠르게 성장한다. 1950년에 한 단어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사용되는 데 20년쯤 걸렸다면, 지금은 1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는 사전 편찬자들이 살펴보고 있는 자료를 매우 신중하게 평가해야 하고, 때로는 단어에 얼마나 지속력이 있는지 판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151쪽

사전 편찬에는 괴벽이 많다. 첫째로, 가장 기이하면서도 모든 전통 사전 출판사들이 일관적으로 따르는 관습은 사전을 결코 A에서부터 집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대로. -165쪽

미국에서 사전 편찬업은 출판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가차없이 상업적인 사업이다. 학자의 마음가짐으로 정성을 쏟아봤자 아무도 사전을 사거나 읽지 않는다면 말짱 꽝이다. 이는 제작 스케줄이 우리를 강철 주먹으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좋은 예로『메리엄 웹스터 대학 사전』은 신판 수정에 2~3년이 걸리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프로젝트 기간은 터무니없이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새 단어를 몇 개 추가하는 것이 신판 작업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사전 편찬자의 업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기존 항목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것이다. -175쪽

내가 『메리엄 웹스터 대학 사전』 11판을 위해 ‘take’를 손보는 데 한 달 가량이 걸렸다고 말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학자 한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피터 길리버가 입을 열었다. “저는 ‘run’을 수정했지요.” 그는 조용히 말하고, 미소 지었다. “아홉 달이 걸렸습니다.” 테이블 곳곳에서 “세상에!”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220쪽

우리는 손으로 단어를 쓰고, 입으로 단어를 말하고, 단어들이 우리의 몸에 남긴 상처를 지니고 산다: 우리 어머니가 제조업에서 여성 관리자로 사는 것이 어땠는지 얘기하며 ‘bitch’라는 단어를 혓바늘 빨듯이 내뱉을 때, 입가에 패인 깊은 주름. 석양을 배경으로 옆모습을 보이고 선 아버지의 친구가 전 아내를 ‘bitch’라고 불렀을 때, 그의 입에서 파찰음과 함께 튀어나온 침 세 방울. -250쪽

사람들은 이제 지갑이 아닌 눈으로 돈을 낸다. 이는 광고를 싣는 온라인 사전이 사람들의 눈을 웹페이지에 더 오래 묶어둬야 한다는 뜻이다. 클릭 경제에서 좋은 정의를 쓰는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인터넷 검색 결과 최상단에 올라가는 데 필요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민첩성이다. 바닥에 웅크리고 있길 좋아하는 고리타분한 사전 편찬자들에게 이건 무척 급격한 변화다. -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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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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