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음식과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책, 음식과 전쟁

글 입력 2018.05.2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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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집, 먹방, 식도락여행...음식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일련의 단어들은 나와 거리가 멀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거짓말 하지 말라며 눈을 흘기곤 하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음식을 먹을 때 무척이나 잘 먹는 사람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끼니를 중요시하기 때문이지 정말 음식 그 자체를 사랑해서는 아니다. 아무리 맛집이라 해도 줄을 서야 한다면 미련 없이 다른 음식점으로 향하고, 여행을 다닐 때에도 음식을 먹는 일은 미술관을 관람하거나 산책을 하는 일에게 언제나 우선순위를 빼앗긴다. 그러니 < 음식과 전쟁 >을 선택했던 이유도 ‘음식’때문이 아니라 ‘음식과 전쟁’, 이렇게 한 묶음으로 된 제목 때문이었다.

음식과 전쟁 표지 입체.jpg
 
Contents

1장  잉어와 민중 십자군
잉어 열풍과 십자군 전쟁

2장  레모네이드와 전염병
파리는 왜 전염병을 비켜갔나

3장  추출물
휴대용 수프

4장  누구나 가끔은 누군가를 먹는다
카리브해 식인 문화, 그리고 현대 문명

5장  디너파티 혁명
루이 14세의 저녁만찬

6장  크라우드소싱
우스터셔소스로 시작된 소스 개발 경쟁

7장  카카오와 분쟁
카카오를 둘러싼 유럽 열강들의 분투

8장  삶, 자유 그리고 부드러움의 추구
버커니어(해적)과 바비큐의 어원은 같다

9장  케이크를 맛보다
페이스트리와 멕시코, 그리고 프랑스

10장  걸쭉함
어떻게 해야 '걸쭉'해질 것인가



 
덕후의 눈으로 본 역사_주제와 주체의 변화


 < 음식과 전쟁 >의 저자 톰 닐론은 흔히 말하는 '덕업일치'를 성공적으로 일궈낸 프리랜서 작가다. 음식에 관한 초창기 서적 수집에 관심이 많은 그는 각종 매체에 음식 관련된 글들을 기고하다 아예 < 음식과 전쟁 >을 발간하는 데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덕후의 힘을 잘 알고 있다. 덕후에게는 덕질의 대상에 있어서만큼은 끝까지 알아내고 마는 끈기와 열정이 있다. 역사의 뒷전으로 내몰려 왠만한 역사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헌책방이니 도서관이니 돌아다니며 열심히 뒤지러 다닌 것만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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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몬 폰지누스 칼세도니우스",
조반니 바티스타 페라리의
< 요정들의 정원 가꾸기>
과일에 대한 첫 주요 식물학 저작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고등학교 국사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이 말을 들은 후, 역사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숨기고 있는 '역사라고 불리지 못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종종 생각해보곤 했다. 출발점은 먼저 '승자'와 '패자'를 구분해보는 것이었다. 국가 간 관계에서 승자란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가, 사람 간의 관계에서 승자란 지도자, 지도부, 왕족, 귀족, 상류층 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가 진행되고, 이에 따라 시민의 위치가 상승하면서 사정이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역사는 지배 계급을 주인공으로 한 쿠데타, 혁명, 전쟁 등을 핵심적인 사건으로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 음식과 전쟁 >의 저자 톰 닐론은 이러한 통상적인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음식’을 과감하게 무대 중앙으로 끌어온다. 이는 비단 주제의 변화만이 아니라 주체의 변화다. 역사 속엔 늘 부자와 빈자가 있었고, 혁명가와 반혁명가가 있었으나, 어쨌거나 모두가 밥은 먹고 살았을 게 아닌가. 하여 < 음식과 전쟁 >에 들어있는 역사적 사건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임에도 마치 초면처럼 다가온다. < 음식과 전쟁 >은 이렇듯 독자가 역사를 알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인도한다.



누구나 가끔은 누군가를 먹는다_식인 문화를 이야기하다


 인간은 3대 욕구라 불리는 수면욕, 식욕, 배설욕을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충족시키고 살아간다. 아이러니한 것은, 매번 맞닥뜨리는 것들임에도 이들에 대해 꽤나 냉담한 태도를 고수한다. 배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저급하고 불쾌한 일로 여겨지고,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으려 하면 탐욕스럽고 식욕이 '너무' 심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곤 한다(그런 평가를 하는 사람조차 배가 고플텐데도.) 하물며 '식인'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겠는가.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해왔음에도 인간은 그것을 꽁꽁 숨겨왔고, 덕분에 우리는 식인에 대해 딱히 아는 바가 없다.

 책에서 저자는 유럽인들 사이에서도 식인 문화가 은밀히 통용되고 있었음을 밝히며 동시에 식인 행위를 야만인들의 것으로 덮어씌웠던 이중성을 언급한다. 음식과 역사를 이야기하는 일이 인간의 내밀한 본능에 대한 통찰로 연결되는 것이다.


여러 세기 동안 우리는
인육을 먹는 일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반감을 가졌고,
그 어두운 욕망을 다른 집단에 뒤집어씌움으로써
그들을 매도화하는 동시에
그 행위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이것이 논리적인 유일한 해결방법이었다.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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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브릴 광고(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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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실베스트르, < 왕과 왕비의 만찬 >(1664)
베르사유 궁전으로의 이주를 축하하기 위해 루이 14세는
계절에 기반한 연회를 특색으로 하여 6일 간 축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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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피클, 병에 든 과일, 비턴 부인, < 살림에 관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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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초콜릿을 먹기 위해 북적이는
'커피하우스 군중'(17세기)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눈으로 먹는 거라고 한다. 아무리 맛이 있어도 모양이 일그러져 있거나 색감이 조화롭지 않으면 왠지 끌리지가 않는다. 위의 사진들은 < 음식과 전쟁 > 에 실린 것들로, 고문서에 수록된 삽화, 중세 화가의 판화나 소묘, 그리고 오래된 요리책에 담긴 이미지 등 톰 닐론이 수십한 일러스트의 일부다. 책은 먹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긴 하지만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옛날 조미료 광고나 식탁 문화 등을 엿볼 수 있어 책장을 넘기는 일이 지루하지 않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서구 음식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다보니 못알아 듣는 표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언젠가 톰 닐론이 서양을 넘어 동양의 역사와 음식에 대한 책도 집필해주길 기대해본다.
 




양장
170*246
228쪽
24,000원
2018년 3월 25일 출간 
ISBN 979-11-88296-11-8 03900 
인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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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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