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영혼의 순례길', 숭고한 여정을 따라 걷다 [영화]

5월 24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영혼의 순례길'을 보고
글 입력 2018.05.2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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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百度图片


중국이라면 여러 지역을 다녀보았지만 티베트는 늘 마음으로만 품은, 최후의 종착지 같은 곳이었다. 상하이에서도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그곳은 ‘하늘 길’이라 불리는 세계 최고(高) 철도인 칭짱철도를 타고 갈 수 있다. 비행기에 비해 수십 시간을 꼼짝 없이 타고 가야 하지만,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자연 풍경을 바라볼 수 있음은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그러나 외국 국적의 개인 여행객의 경우 사전에 정부의 허가를 따로 받아야하기에 그 절차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평균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티베트 땅을 밟고 싶었던 데는 단순히 중국 일주를 완수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였다. 몽골과는 비할 수 없는 초원 고지와 광활한 대평원을 실제 눈에 담고 싶었고, 분리 운동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인만큼 중국 대륙과는 얼마나 다를 지 그 차이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중국에서 티베트인들의 오체투지를 필름에 담은 다큐멘터리, ‘영혼의 순례길'을 보고 그 장엄한 경관에 감탄했고 티베트인들의 정신에 숭고함을 느끼며 평생에 한 번, 티베트만은 꼭 가보고 싶다는 바람이 되살아났다.
 
‘영혼의 순례길’은 중국에서는 작년에 개봉하여 극장가 다큐멘터리 열풍을 일으켰던 영화이다. 원제는 '강런보지(冈仁波齐)'로, 티베트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하며 아시아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신령한 산이라 불리는 카일라스산을 의미한다. 티베트인들에게는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성산(聖山)이다. 우리나라에는 조금 늦게 배급되어 지난 5월 24일부터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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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카일라스 산의 모습 (출처/百度图片)
 

실제 현지 사람들을 밀착 촬영한 다큐이기에 내용상으로 굴곡이 많지는 않다. 배경은 티베트의 어느 작은 마을. 죽기 전에 순례를 떠나고 싶은 노인, 살생을 너무 많이 했다는 소백정, 출산을 앞둔 여인과 어린 소녀. 이들 세 가족이 모여 평생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 바로 포탈라궁이 있는 성지 라싸와 카일라스산으로 향하는 순례길에 오르는 것이다. 영화의 절반 이상은 2,500km에 달하는 거리를 1년에 걸쳐 삼보일배(세 걸음을 걷고, 한 번 절하는 불교의 수행법)를 통해 나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따라간다.
 
양 손에 나무판을 끼우고 야크로 만든 앞치마만을 두른 채, 온 몸을 땅 바닥에 내던지듯 절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아야하는 오체투지만으로 먼 길을 가야하는 이들의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한번은 숙식이 담긴 수레가 도로를 지나던 차에 치여 망가지게 되자 손수 수레를 끌며 삼보일배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행에 더한 사고였지만, 누구 하나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수레를 끌고 제 갈 길을 간다. 불의의 사고로 일어난 불행에 인간이라면 원망하거나 슬퍼하며 그 감정을 해소하기 마련인데, 영화는 감정의 동요없이 참 조용하고 한결같다.

기나긴 여정 중에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함께 한다. 출산으로 새 생명이 태어나고, 노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묵묵히 관조하는 사람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서 삶을 대하는 이들의 정신이야 말로 가장 숭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장엄한 대자연 앞에 인간은 모래 알갱이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이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통해 처절히 느껴진다. 가장 높은 고지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신을 만나려는 이들을 보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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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百度图片


여러 달 동안 삼보일배로 수행하는 이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인간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영혼의 평화와 안녕’을 바라는 신앙만으로 어떻게 고통을 견디어 내는 것일까? 티베트인들에게 종교는 다른 것이 아닌, 삶 그 자체라고 한다. 현세의 삶은 속죄를 위한 고행이며, 내세를 위해 신에게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현세와 내세의 삶 모두 인간 영역 너머의 일들이기에 이들은 살아가는 동안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신을 만나고자 한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육체적 고통을 오롯이 영혼으로써 견뎌낸다. 고행을 통해 고통을 견디는 순간은 현재의 나를 씻어내는 일종의 정화이다. 이를 통해 나와 가족의 평안과 안녕을 끊임없이 청하고 기도하며 지친 영혼을 달랠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이들의 여정은 그렇기에 더욱 숭고하고 존엄한 의식으로 비춰진다.
 
2시간의 숭고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마음까지도 정화됨을 느낄 수 있다. 영혼의 종착지, 라싸 포탈라궁에 혼신의 힘으로 다다르는 이들의 여정에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한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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