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렉스 카츠, 당신이 궁금합니다 - 알렉스 카츠展: 아름다운 그대에게

글 입력 2018.05.3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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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함에서 오는 세밀한 아름다움

알렉스 카츠 전에서 가장 좋았던 시리즈를 꼽으라면 무용수 시리즈와, 캘빈 클라인 시리즈였다.

무용수 시리즈는 ‘무용수가 춤추는 모습’을 그렸으면서도 특이하게도 전체 신체의 움직임이 아닌 특정 부위만을 클로즈업해서 그려놨는데 그래서 처음 딱 봤을 땐 이게 춤추는 모습인지도 모르게 묘사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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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모습인 줄 몰랐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표정과 자태라고만 생각하던 그림이 춤추는 모습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는 어떻게 봐도 춤을 추고 있다고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특히나 티켓에 인쇄된 그림의 경우엔 표정과 목의 라인만으로도 무용수의 춤선이 느껴지는 듯 했다. 사실 무용을 볼때는 그 몸의 움직임에 매료돼 세세한 부분은 놓치게 되는데, 알렉스 카츠의 그림은 그 놓쳤던 아름다움들을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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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클라인 시리즈는 그의 간결한 그림이 캘빈 클라인의 브랜드 이미지와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더 임팩트가 컸다. 속옷만을 입고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아름다운 신체들이 있는데, 그 신체들을 조금도 성적대상화 하지 않고 바라보게 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림이나 사진이나 작가가 피사체를 바라보는 방식이 관람자에게도 그대로 느껴진다고 하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보통 그 말은 엄청나게 성적대상화를 한 작가들을 향한 비난의 말로써 자주 쓰였기에 ‘성적 대상화 되지 않은 신체’에 대해서는 느껴보지 못했는데. 알렉스 카츠의 그림에서 이를 제대로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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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블랙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의 컷아웃은 캘빈 클라인의 그 간결한 디자인에 도시적인 세련미를 제대로 부여하고 있어 더 임팩트가 컸다.



정신을 그려낸 서양의 화가

시리즈가 아니라 개별 작품으로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알렉스 카츠의 초기작 중 하나였던 노인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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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그림들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된 듯하게 느껴지다가도, 더 만화적으로 느껴졌던 그림인데 주름 하나하나, 눈매나 입매, 코의 각도 까지도 그 인물을 너무 잘 담아낸 것 같아서. 아니 인물의 모습을 넘어서 해당 인물이 살아왔던 그 삶과 관록까지 담아내고 있는 듯 해서. 단 한 장의 그림일 뿐인데 그 안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흘러나오는 듯해서 꽤 오랜 시간 눈을 떼지 못했다. 극명한 명암대비와 굵은 선으로 처리된 머리카락은 분명 이게 ‘그림’이라고 외치고 있는 듯 한데, 아무리 봐도 노인이 내 바로 앞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속에서 무언가 울렁댔다.

노인의 그림을 계속 보고있자니 언젠가 들었던 서양 초상화와 동양 초상화의 차이가 떠올랐다. 서양 초상화는 실제의 육체를 똑같이 그림에 표현하고자 했다면, 동양의 초상화는 육체를 통해서 인물의 정신을 담아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알렉스 카츠의 그림을 봤을 때 불현듯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알렉스 카츠의 초상화가 어딘지 동양 초상화의 정신과 닮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저 단편적인 사실로 그렇게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감상은 그랬다. 가장 간결한 선으로 표현된 인물은 분명 현실적이진 않았다. 너무 사진과 똑같아서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간소화된 인물의 표현은 초상화라기보단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초상화 속 인물이 내 앞에 있다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간결한 선 안에 본질이 담겨있는 듯한 느낌. 시리즈 중에서는 특히 로라나 아다 시리즈가 그랬다. 알렉스 카츠가 더 애정을 가지고 살펴본 인물들에 있어서는 그도 모르게 그가 알고있는 그 모습들이 반영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렉스 카츠, 당신은 누구인가요?

언젠가부터 내가 전시를 감상하는 방법이 남들과는 약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나 한 작가의 개인전의 경우 그 차이가 더 심하게 드러난다. 나는 작품들을 작품 그 자체로서만 ‘감상’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이해’하려고 한다. 작품들을 이정표 삼아 작가를 이해하고, 작가의 개인사나 가치관을 기반으로 작품들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내게 대부분의 전시는 일종의 큰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나면 굳이 어렵게 고민하려고 노력하거나, 기억해내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수많은 고민들이 생겨나고 언제든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처럼. 내게 전시들 또한 그랬다. 그런 내게 전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작품을 모두 작가와 연관 지어 생각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작품은 작품 개별로 감상하는 것이 바람직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작가와 개별적으로 떼어내 작품 그 자체가 주는 아우라를 느끼려고도 노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의 작품이 아닌 전시 전체를 떠올렸을 땐,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전시가 내게 ‘좋은 전시’라고 느껴진다. 소설 한권을 읽고 나면 주인공에게 애정을 품게 되고 감정이입을 하게 되듯이, 작가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듯한 전시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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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알렉스 카츠 전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전시였다. 알폰스 무하 전을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개개의 작품은 너무도 좋았고 각각의 작품이 주는 인상에 압도당했지만 전시 전체를 다 돌아봤음에도 알렉스 카츠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Ada존에서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지만. 전시 전반을 놓고 봤을 땐 자신만의 가치관과 생애를 가지고 있는 알렉스 카츠라는 인물이, 내겐 그저 ‘현대초상회화의 거장’이라는 타이틀로서만 다가왔다. 전시장은 알렉스 카츠의 작품들로 가득했지만 정작 그 안에서 알렉스 카츠를 느낄 수 없었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진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전시에서 알렉스 카츠의 생애를 설명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의 작품세계나 가치관에 대한 설명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이유를 꼽자면 전시에는 알렉스 카츠의 작품세계는 설명돼 있었지만 ‘왜’ 그런 세계를 갖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재했기 때문인 듯하다. 왜 인물들을 이렇게 과감하게 배치하게 됐는지, 이런 것을 추구하는지, 어쩌다 컷아웃을 하게 됐는지 등등. ‘이런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효과’에 대한 설명은 있을지 언정 알렉스 카츠가 왜 그런 식으로 작업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재한다. 그러다보니 알렉스 카츠를 한 인간이라기보다 그저 작품을 생산하는 기능을 하는 작가로만 바라보게 되고, 그의 작품들에서도 생명력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게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도 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것도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이야기고, 인간의 사유를 보여주기에 매력적이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인간의 이야기를 보여줬는가,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가를 알아가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이게 내가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의 작품 자체는 무척이나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시 알렉스 카츠전은 그의 예술세계를 통해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얻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웠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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