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이 이끄는 삶의 박동,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도서]

글 입력 2018.05.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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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마침내 얻게 되었을때,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매일이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다.

-p.69


 중고등학생 때 읽었던 책이었다. 그 땐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들고 덮었던걸까. 예전에 읽었던 책이 요즘 다가오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전에는 내가 절대 느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을 대리체험하는 상상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이미 느끼고 있는 현실에 가깝다. 주인공 베로니카와 나의 처지가 비슷해서일지도 모른다.  나이도, 직장도, 무기력한 느낌에 발버둥치는 것조차, 참 똑같게도. 그녀는 자살하는 방식을 상당히 골똘히 고민하는데 그녀 말대로 목을 매거나 투신자살하는 건 다른 사람에게 좀 더 시각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점에서 껄끄럽다는 점은 동의한다. 만약 나에게 나를 파괴하고 죽일 권리가 있다면 그로 인해 다른 이들이 최대한 피해받지 않을 수 있도록 그들의 권리 또한 존중할 필요가 있으니까. 어쨌든 그들은 살아가야 하니까.

 그녀와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가장 크게는 그녀는 죽음을 결심했고 나는 아직 결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표현되었고(책을 쓴 작가가 아니니 그가 되었을 때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슬로베니아에 대한 애정을 유서처럼 남겼으며, 책이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아 강한 수면제를 입에 털어넣었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당장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살아있는 게 무척 힘든 순간은 있었다. 한 발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수면제를 구해줄 사람도 없다.

 그동안 나는 왜 죽고 싶지 않았을까? 책을 덮은 후 떠오른 질문이다. 살아있는 관성때문인가? 아니다.오로지 나 때문이었다. 아직 궁금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좀 더 이해하고 싶었고, 내가 뭔가를 이렇게 느끼는 원인 역시 파헤치고 싶었다. 아무리 사소하고 구차하고 치사하더라도. 게다가 현실적으로 수면제는 좀 한물간 방식이다. 죽고는 싶지만 정말 죽고 싶지 않을 때 택하는 방식에 가깝다. 범죄, 추리물, 수많은 드라마에서조차 수면제로는 험난한 위세척을 거칠 뿐 사람이 쉽게 죽을 수 없다는 걸 알려준다. 구할 수 있다면 청산가리나, (아, 이마저도 좀 올드하다) 티 나지 않는 다른 독약이 필요하다. 원장의 이론에 따르면 무기력과 우울감, 온갖 부정적인 효과의 집합체인 비트리올이란 걸 들이부으면 우린 쉽게 죽음에 이를 것이다. 어차피 이런 죽음에서 평온한 얼굴은 기대할 수 없다. 한참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때가 되지 않은 생명을 꺼뜨리는 게 쉽지는 않을테니까.


사춘기 시절, 그녀는 뭔가를 선택하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었을 때는,
뭔가를 바꾸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고 체념했다.
지금까지 무엇 하느라 내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거지?
그것도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하느라고.

-p.67


'나는 좀 더 미친짓을 했어야만 했어'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녀에게도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p.136


 소설의 메세지는 명확하다. 빌레트 정신병원 원장의 삶과 죽음에 관한 성공적인 집단 실험.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사람들은 난데없이 미친 짓을 한다. 하지만 그건 미친 짓이 아니기도 하다. 그건 마음 깊이, 수많은 이유로 하지 못했던 가장 자연스러운 자기 모습이었다.  또한 지금 자기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그건 우리 결국 우리 자신이 만든 선택의 결과라는 것. 실험은 간단하다. 수면제를 먹고 깨어난 그녀에게 '자살시도 하느라 심장이 안 좋아져서 일주일 안에 죽을거야'라고 말하고서 실제로 심장에 무리가 오는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주사를 놓아준다. 그녀가 의심하지 못하게, 모두가 그녀가 죽음이 가까운 사람으로 기억하도록. 병원 밖에선 사서직을 하던 그녀는 달밤에 소나타를 치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찾아냈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솔직해져서 병원을 떠났다. 곧 죽음이 찾아오리란 걸 믿고 있으면서도. 원장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까지 실험의 영향력은 컸다. 시한부라고 알려진 그녀를 보고 이미 아프지 않은데도 잔류하고 있던 전직 변호사 마리아, 부모님의 왜곡된 사랑으로 외교관을 강요받고 화가를 버려야만 했던 에드워드 역시 병원을 떠날 수 있었다.


"미쳤다는 게 뭔지 알고 있냐고 했어요"
"미쳤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마치 네가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너는 모든 것을 보고,
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식하지만
너 자신을 설명할 수도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그 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건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느껴본 거예요"

"우린 모두 미친 사람들이야.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p.92

 
 그 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고, 정신병원이라 하면 여전히 색안경을 쓰고 있다.진료 기록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모양이다. 평상시에 입으로 죽고 싶다, 우울하다는 말은 해도 괜찮은데 진료를 받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는 게 이상하다. 설명할 수 없고 쉽게 낫지 않는 온갖 질병의 원인이 스트레스인 건 익숙한데, 스트레스가 과중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거나 쉬어가겠다 하면 사람들은 우릴 붙잡을 것이다. 에이,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뭘. 여기 같이 있자. 악의는 없지만 생각해보면 꽤 악의적이지 않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나약한 것이며, 휴식은 도망친다는 핀잔 같다. 감정에 솔직하고 고민이 많으면 복잡하고 부담스럽다 밀쳐내고, 꿈을 쉽게 포기하고 빠르게 안정되는 것이 어른스러운 일이라고.

 미친 사람들에겐 많은 것들이 용인된다. '미쳤으니까요!' 라며 답하면 되니까. 물론 남들이 우러러보는 미침과 꺼리는 미침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게 과연 다를까? 한 때 모두가 꺼렸던 미친 사람이 지금 우러러 보는 사람이 되었을 수 있다. 난 그 말을 너무나 써먹고 싶었다. '제가 왜 이모양이냐고요? 미쳤으니까요!' 통쾌하다. 미친 듯 미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미 진단 상 아무 문제 없는 사람들이 빌레트에 남아 '형제클럽'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약간의 우월감과 평온감이 넘치는 사람들. 저 사람들은 미쳤지만 우리는 미치지 않았다는 우월감. 언제든 말이 안되는 미친 짓을 할 수 있다는 평온감. 미친 사람과 미치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 언제든지 선을 넘나들 수 있다. 나쁘게 말하면 비겁하고 좋게 말하면 상황 파악이 잘 된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선 마리아나 에드워드, 베로니카가 찾았던 삶의 의지 같은 건 볼 수 없다. 그들이 '회복'된 수준은 삶에 대한 적당한 무관심에 불과하다. 살아있는 순간을 사랑하게 되는 수준은 다다르기 쉽지 않다. 그냥 살아있기는 쉽지만, 온전히 살아있기는 어렵다. 깨닫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주 나는 미천한 상태라고. 한참 멀었다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진 않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은 그리 멀지 않다. 죽음을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행운이다. 갑자기 사고나 범죄, 원인불명의 이유로 죽을 수도 있다. 아주 비관적이게도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오늘 죽어도 전혀 이상하진 않겠어.' 말이 그렇잖나, 누구 하나 죽어야 할 법한 날이라는 건 없다. 그럴 때 가끔 좀 더 날 소중히 해야지, 좀 더 하루를 아낌없이 즐겨야지 싶은 기분이 올라온다. 마음대로 말하고 행하고, 살고 싶어진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꺾곤 했던 것들을 버리면 아주 큰일이 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다들 적응의 동물이라 별말 없다. '저 친구는 원래 저래'할 뿐이다. 이럴 때 무척 새로 살고 있는 느낌일 때가 있다. 마치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은 나만 몰랐던 것 같다.

 시간은 또 우리의 의지를 쉽게 놓아버리게 할 것이다. 베로니카 역시 죽음 앞에서 길어올린 삶의 박동이 오래가진 않을 수 있다. 빌레트에서의 삶이 좋았다거나, 시한부인 듯 살 때 가장 심장이 뛰었다거나, 삶이 지루해져서 다시 죽고 싶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일상이 죽음을 우리에게서 멀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앞에 있다가 내쉰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이 그녀에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건 어릴 적 선생님께서 읽어주셨던 옛날이야기 속의 어느 꽃같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놓인 서천꽃밭에는 독특한 꽃이 있다. 죽은 자의 뼈와 살을 살리는 뼈살이꽃, 영혼을 살리는 도환생꽃. 아마 그녀는 사라지지 않는 그 꽃의 향기를 맡아봤으리라. 상상만 해봐도 무척 기쁘다. 늘 혼자였던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서, 늘 감정을 속였던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서, 어느 곳에서 신나게 피아노를 연주해서, 자신의 삶이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일매일이 너무 뻔하지 않아서, 그녀가 죽기로 결심하지 않아서, 살아있듯 살아있어서.

* 책에서 이견이 있는 문구가 있었다. 젊음이의 몸이 언제까지나 버텨내진 않는다. 한순간 파르르 무너진다.


젊음이란 그런 거야.
젊음은 몸이 얼마나 버텨낼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하지만 몸은 언제나 버텨내.

-p.131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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