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Show : 오직 보이는 아름다움을 위해

전시 <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 > 리뷰
글 입력 2018.05.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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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의 도심 종로. 언제나 차와 사람으로 북적이는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조금만 위로 가다 보면 의외의 한적함을 가진 장소를 만날 수 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도심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자하문터널을 경계로 도시의 소음과 매연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고요와 여유를 지닌 이곳에서 이달 초부터 전시 <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 >가 진행되고 있다.

웨딩드레스는 결혼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인 동시에, 결혼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의상예술이다. <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 >는 웨딩드레스의 이 두 가지 의미 모두를 다루고 있다. 30여명의 국내외 작가들과 세계적인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작품들, 그리고 ‘12명의 신부 이야기’라는 스토리텔링 장치까지 더해져 결혼 속의 웨딩드레스뿐만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독립적인 예술로 존재하는 웨딩드레스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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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이름만 들었을 때에는 ‘결혼’에 더욱 초점을 맞춘 전시일 것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면 제도로서의 결혼이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건으로서의 결혼, 혹은 현실과 생활로서의 결혼이나 억압으로서의 결혼 등 결혼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 혹은 ‘메시지’가 짙은 전시일 것 같았다. 평소 결혼에 대해 막연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던 터라, 이 전시가 얼마나 결혼을 잘 포장하는지 아니면 결혼의 현실을 얼마나 노골적으로 드러내는지 등을 확인하고 싶다는 다소 뒤틀린 기대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전시장에서 마주한 웨딩드레스와 작품들 앞에서는 결혼이라는 단어조차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예술이었고, 그만큼 순수하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곳에 있던 웨딩드레스는 단순히 결혼식에서 입는 옷이라는 의미를 벗어나 독자적인 예술로서 존재했다. 또한 여러 회화나 사진, 설치미술 작품들 역시 웨딩드레스만큼이나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그 작품들은 관객에게, 아니 나에게, 꼬인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그저 이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냥 보고, 느끼면 됩니다


전반적으로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우선 2부에서 볼 수 있는 앙드레 김의 작품들부터가 그랬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앙드레 김의 작품은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창적인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1부 역시도 각자만의 미감과 강렬한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 수없이 많았다. 전시 초반에 볼 수 있는 어지인 작가의 달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그 몽환적인 색채로 나를 사로잡았고, 성민우 작가의 부케 작품이 가진 기괴한 아름다움은 마치 나를 부케 안으로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또한 윤영혜 작가의 “Eating Flower” 연작에서는 여백이 갖는 단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졌고, 송영욱 작가의 “Stranger”에서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열린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다섯번째 신부.jpg▲ 송영욱, "Stranger"
 

그러나 시각적 아름다움의 대표작은 무엇보다도, 이 전시를 본 사람이면 대부분 동의하겠지만, 전시 포스터에도 나와 있는 크리스티나 마키바의 사진이었다. 왜 이 작품이 아름다운지 묻는다면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발상과 구성이 독창적이고 배경 선택이 탁월하며 색감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환상적이다, 라고 아무리 설명해봤자 작품을 직접 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작품을 내 앞에서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만이 느껴지는 압도적인 아름다움. 전시에 가는 이유를 그의 사진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열번째 신부 (2).jpg▲ 크리스티나 마키바의 작품, 전시 전경 中
 

물론 이 감상은, 시각예술은 시각적 아름다움에 치중해야 한다는 철저히 개인적인 나의 견해에 입각한 감상이다. 전시 내 작품 중에는 단지 가시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작가 내면의 이야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작품의 메시지까지 읽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았다. 이때 아름다움이란, 복잡하게 생각하고 한참 숙고해야만 알 수 있는 ‘깊은’ 아름다움은 아니며, 대단한 통찰력으로 꿰뚫어봐야 하는 ‘내면의’ 아름다움도 아니다. 가장 외면적이고, 표면적이고, 깊이 따위와는 무관한, 그러나 너무나도 화려하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아름다움 앞에서 생각은 필요 없다. 그저 예술을 볼 수 있는 눈과 느낄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쇼의 대가, 앙드레 김


이어지는 2부, “Show Must Go On”은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1935-2010)의 추모전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독특한 외관과 말투로 대중적인 주목을 받은 그의 작품세계는 더욱 독창적이고 예술적이었다. 판매보다는 작품성을 추구하고, 개개의 옷 보다는 패션쇼에 주력했던 그는 말 그대로 ‘쇼의 대가’였다. 단지 옷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쇼의 기획, 음악, 심지어 모델들의 연기까지 직접 지도하는 등 완벽한 패션쇼를 위해 온 열정을 쏟았다고 한다.

특히 그의 패션쇼에는 종종 유명 배우가 모델로 등장했는데, 배우의 눈빛과 연기가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앙드레 김에게 옷은 상품이 아닌 작품이었고, 패션쇼 역시 단순히 옷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닌 하나의 공연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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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색을 좋아해 자신도 순백색의 옷만 입었던 앙드레 김에게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더없이 훌륭한 창작 소재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시에서 만난 앙드레김의 웨딩드레스에는 그만의 예술성이 응축되어 있었다. 조금은 과하다고까지 생각되는 디자인에, 실용성과 기능성은 도무지 염두에 두었을 것 같지 않은 드레스, 그러나 그곳엔 확실히 압도적인 황홀함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점은, 앙드레김의 드레스 중 상당수가 한국적인 소재를 차용했다는 것이다. 용이나 새, 꽃 등 한국 전통의 소재뿐만 아니라 한복만의 무늬와 선들이 금빛 자수로 드레스에 새겨져 있었다. 해외에서 오래 활동하고 어투도 이국적인 앙드레 김이었지만 본인은 늘 한국을 자신의 뿌리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의 내면에 한국의 전통적인 미감이 뿌리내리고 있었기에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그의 독보적인 작품세계가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구의 영향이 패션생활을 잠식한 오늘날, 한국 복식의 미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탄생시킨 앙드레 김의 작품에 작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Show Must Go On by 앙드레 김 (4).jpg▲ 앙드레 김의 웨딩드레스, 전시 전경 中
 


다양성, 아름다움, 그리고 아쉬움


이 전시에 대해 총평이라는 것을 해보자면, 다양성, 아름다움, 그리고 아쉬운 스토리, 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규모 자체가 상당히 큰 만큼 만족스러운 수준의 다양성을 가진 전시였다. 물론 이 다양성은 단지 작품의 수가 많다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과 작가들이 각자 자기만의 세계와 깊이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다양성이었다. 전시장에 놓인 수십 벌의 웨딩드레스 역시 각양각색의 디자인을 갖고 있어, 웨딩드레스들을 비교해보는 재미 또한 있었다. 한편 앙드레 김의 작품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직관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시각예술 전시였다고 평하고 싶다. 덧붙여 전시의 테마 색인 따뜻한 핑크색은 낭만과 꿈이라는 전시 주제와 잘 얽혀들어 전시 전반에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12명의 신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곳곳에 적혀있던 가상의 스토리였다. 작품들과 큰 연관도 없고, 이야기 자체만을 봐도 그렇게 의미 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활자가 거울같은 반사면에 적혀있어 가독성마저 떨어졌다. 전시 관람에 약간의 재미와 메시지를 가미하려는 시도처럼 보였는데, 그런 스토리가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전시였으며 작품만으로도 결혼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어설픈 스토리텔링은 오히려 감상의 흐름을 끊기만 할 뿐이었다.





쇼의 정체성은 보이는 것에 있다. 그래서 쇼(show)이다. 쇼에 따라서 무엇을 보이는지는 달라진다. 화려함을 보이기도 하고, 진기함을 보이기도 하고, 웅장함을 보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보이기도 한다. 앙드레 김의 패션쇼와 같이 이 전시 또한 하나의 쇼였다고 생각한다. 별다른 ‘이해’나 ‘생각’ 없이, 보이는 그대로를 즐기면 된다. 이 색감, 이 형태, 이 아름다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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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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