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짜오, 신짜오! [도서]

글 입력 2018.05.3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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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이 아프던 상처도 시간이 흐르면 그 위에 딱딱한 딱지가 붙고, 새살이 돋는다. 몸에 새겨진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 상처 또한 그렇다. 딱지가 붙고 새살이 돋으면 우리는 가끔 내 몸에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 잊어버린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새살이 돋아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 담긴 단편 '신짜오, 신짜오'는 그러한 상처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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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mblr (@Daniz Vural)



신짜오, 신짜오

독일 플라우엔으로 이사를 온 주인공의 가족이 그곳에 살던 베트남 가족의 초대를 받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로 말도 하지 않는 부모님, 차가운 집안 분위기 속에 자라난 주인공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투이네 식구는 특별하다. 집에서는 차가운 엄마도 투이네 엄마를 만나면 평소에 입지 않던 옷을 입고, 투이 엄마의 다정한 말속에서 따뜻한 기운을 뿜어낸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두 가족의 관계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가족 간의 성격 차이, 돈 문제 같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베트남과 한국이라는 두 나라 사이의 고통스러운 역사가 그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다행히 2차대전 이후로 이처럼 대규모의 살상이 일어난 전쟁은 없었단다." 투이가 손을 들어 선생님의 말을 끊었다. "아닌데요." 그게 투이의 첫마디였다.
"뭐가 아니라는 거지?"
"베트남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 모두 다 죽었대요. 군인들이 와서 그냥 죽였대요. 아이들도 다 죽였다고. 마을이 없어졌다고 했어요. 저희 엄마가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투이가 말했다.

주인공은 학교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투이의 말을 통해 베트남 전쟁에 대해 알게 된다. 이때만 해도 주인공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여기고 투이를 안타깝게만 여긴다. 그저 베트남 전쟁을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 바라보는 독일 아이들을 경멸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미국 정부의 실책이었고, 미국으로서는 아무런 득도 보지 못한 전쟁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투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으리라고, 그 애를 앞에 두고 그런 식의 설명을 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입을 열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투이는 분명 교실에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곳에 없는 사람으로 취급된 것 같았다. 나는 등을 구브리고 앉아있는 그 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너희들은 투이의 마음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겠지, 독일 애들에게 희미한 분노마저 느꼈던 기억도.

투이, 독일 아이들, 그리고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하나의 역사를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보여준다. 투이처럼 직접적으로 전쟁의 피해자가 된 국가의 사람들은 절대 그 일을 단순한 사실 정도로 넘기지 못한다. 역사 책에 적힌 몇 줄안에선 절대 그들의 실제 상처를 어루마질 수 없다. 아무 이유도 없이 죽어나간 사람들,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 투이에게 전쟁은 그저 시간의 흐름 속 어떤 사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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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uple holding hands, Vietnam, 1971.
Photo By Thomas Billhardt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어요." 나는 그 말을 하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 엄마 아빠를 쳐다봤다. 아빠는 아무 얘기도 못 들었따는 듯이 내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고, 엄마는 조용히 하라는 투의 눈빛을 보냈다. "국물이 짜지는 않은지 모르겠네." 호 아저씨가 말을 돌렸다. 모두들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 "정말이에요. 우린 정말 아무도 해치지 않았어요." 내가 말했다. 한국은 선한 나라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었고, 어른들의 대화에 자연스러게 참여해서 칭찬받고 싶었다. 난 맞은편에 앉은 아빠에게 인정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베트남 전쟁에 대해 나 역시 아는 사실이 별로 없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가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한국군이 민간인 살상을 했다.'라는 부정적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꽤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피해준 적이 없다고 나도 굳게 믿고 있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입을 닫았고, 나는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만 진실이라 믿었다.

"넌 신경쓸 것 없어. 너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투이의 엄마, 응웬 아줌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 그래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나와는 관계 없는 일.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나라의 일에 항상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금세 그 일을 잊어버렸다. 아직까지도 역사의 흐름 안에서 받은 상처로 마음 속에 거대한 구멍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외면했다. 여러 진실을 알아 불편해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진실을 알면 사과받아야 할 사람도 많아지고, 내가 사과해야 할 사람도 많아지니까.


아빠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 형도 그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그때 형 나이 스물이었죠. 용병일 뿐이었어요." 아빠는 누구의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바닥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아기와 노인들을 죽였어요." 응웬 아줌마가 말했다.
"누가 베트콩인지 누가 민간인인지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겠죠." 아빠는 여전히 응웬 아줌마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태어난 지 고작 일주일 된 아기도 베트콩으로 보였을까요. 거동도 못하는 노인도 베트콩으로 보였을까요."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요? 그건 구역질 나는 학살일 뿐이었어요." 응웬 아줌마가 말했다.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사무적인 말투였다.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저도 형을 잃었다구요. 이미 끝난 일 아닙니까?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역사 안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깊게 상처가 나고, 그 위로 딱지가 붙고, 다시 새살이 돋아도 그 새살 위로 다시 상처가 난다. 그래서 지난 일이고, 나와는 관련 없다는 이유로 자꾸만 그 상처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여전히 역사 속 상처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자꾸 나만 피해자라 주장하게 되고, 내가 준 피해는 모른 척하게 된다. 하지만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내가 받은 상처도, 내가 준 상처도. 모두 기억하고 이해하려 최소한의 노력은 해봐야 한다. 그게 우리 역사에 새겨진 상처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소실의 제목이기도 한 베트남 인사말 '신짜오'는 신기하게도 중국말로 '마음으로 이해하다. 마음이 통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해하려고 노려간다는 것, 그게 우리가 나의 상처, 타인의 상처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인지도 모른다.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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