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말할 수 없고 당신은 들을 수 없다. [문학]

뿌넝숴_김연수, 인간에 대한 예의_공지영
글 입력 2018.06.0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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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할 수 없고 당신은 들을 수 없다.
「뿌넝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읽고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여성잡지의 기자인 ‘나’는 6월호에 싣기 위해 베스트셀러 작가 이민자를 취재하게 된다.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녀는 명상을 하고 차를 마시며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갖는 방법을 설파한다. ‘나’ 또한 그녀가 풍기는 신비함에 마음이 끌린다. 성공적으로 취재를 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권오규를 떠올린다. 그는 원래 6월호 인터뷰의 내정자였다.

'나'는 이미 권오규를 취재했었다. 권오규는 정치 운동을 하다 잡혀 2년 전 출옥했다. 감옥에서 썼던 편지를 묶어 낸, 변변한 살림도 없는 그를 취재하고 나오는 길에 '나'는 막막함을 느낀다. 도무지 이를 기사화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그것은 ‘권오규’가 70년대에 겪은 일이 ‘나’가 80년대에 겪은 일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투쟁하다가 동료들이 옥사하는 것을 감옥에 앉아 지켜보는 권오규, 그리고 학생운동을 하는 이들을 돕다가 두려움에 도망친 ‘나’.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은 풀려난 사람들이고... 잡지를 읽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건 이젠 철지난 유행가니까. 그래서?

‘나’는 이민자와의 인터뷰와는 달리, 권오규와의 인터뷰에서 첫머리조차 떠올리지 못했다.아직도 감옥에서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권오규, 그리고 옥사한 이들의 사진을 보고 ‘그들의 지나온 삶’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체제가 낳은 아픔을 어느 정도 공유하기 때문에 ‘나’는 권오규의 아픔을 말로 옮기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감히 그의 기사를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잡지를 읽는 이들은 그런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권오규의 책으로도, ‘나’의 기사로도 세상은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웃음을 터트릴 것이다. 말할 수 없다- 어차피 당신은 알지 못할 것이기에.



뿌넝숴

뿌넝숴. 뿌넝숴, 역사라는 건 책이나 기념비에 기록되는 게 아니야.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몸에 기록되는 거야. 그것만이 진짜야. 떨리는 몸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말해주는 게 바로 역사야.

‘나’는 중국 인민지원군 중 하나로 6·25전쟁을 겪은 인물이다. 그는 작가인 당신에게 계속해서 ‘뿌넝숴’라는 말을 한다. 지평리에 매화 꽃잎이 떨어진 것처럼 전사한 전우들을 설명하면서도, 자신의 피를 다 뽑아 그를 살려낸 여성 구호원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뿌넝숴 (불능설 不能說)-말할 수 없다 한다. 말하면서도 말할 수 없다니, 모순된 표현일 수 있지만 이는 단순히 ‘말하다(發話)’의 뜻이 아니라 자신이 느낀 고통을 온전히 말로 다 할 수 없고, 당신은 나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의 아픔이 역사책에 다만 잔뜩 부풀린 숫자로만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라도, 아무리 자세하고 실감나게 설명할지라도 타인은 나만큼 나를 이해할 줄 수가 없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렇다. 참 이상하다. 우리가 언어라는 것을 통해 매일 세상과 소통함에도 종래에는 서로를 이해 불가능한 종족이라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에게 내가 모르는 어떤 고통이 있음을 인정하는 전제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의 뒤에 항상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새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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