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듣기 싫은 그 말 "보답하겠습니다" - [문화전반]

변명, 속임 그리고 형식적인.
글 입력 2018.06.0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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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답하겠습니다”. 어느 곳을 가든 이 글귀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화장품 가게, 음식점, 마트 등. 필자는 이 글귀가 참 감흥이 없으면서도 상대를 우쭐대게 만드는 말이라 생각했다. 도대체 뭘 보답하겠다는 거지? 그냥 지나가다 들린 마트일 뿐인데, 고맙다고 나에게 보답하겠다니.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이 상투적인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말은 그렇게 좋은 의미가 아닐 것이라고. 변명이고, 남을 속이는 말일 것이라고.



1. "음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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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으로 구치소에 들어간 래퍼들을 예로 들어보겠다. 필자는 힙합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 래퍼들 역시 몇 년 전부터 응원해왔던 터라 굉장히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래퍼들이 마약을 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이 이번이 처음이었을까? 아니다. 힙합씬에서 신처럼 추앙받는 존재 이센스(E-sens)를 선두로 쿠시, 아이언 등이 있었다. 참 웃긴 게, ‘음악으로 보답하면’ 그들의 죄는 ‘팬들이 이해해줘야 할 잘못’으로 남는다. 그 시작이 이센스였다. 팬들은 실력 있는 그의 작업물을 기다렸고,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의 반응을 즐겼다. 아무리 필자가 힙합을 좋아하고 그를 좋아하지만 잘못엔 유통기한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약으로 꾸짖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꼰대’가 되고 진정한 힙합 팬이라면 ‘마약’쯤은 ‘정규앨범’으로 덮어줘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다. 씨잼이 자신의 sns에 앨범 작업은 마치고 간다라는 글을 적은 걸 보고, “나는 마약으로 구치소에 들어가지만 나는 힙합에 있어 hustle한 사람이야”라고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곳에 달린 댓글들이 가관이다. 래퍼가 마약쯤은, 형 잘 다녀오세요 기다릴게요, 심지어 유명 래퍼들까지도 그를 옹호하고 나섰다. 팬이지만, 그런 댓글은 솔직히 허세 같고 역겨웠다. 대중들의 눈으로 보면 그저 허세에 찌든 힙찔이 일 뿐이다. 그 ‘힙찔이’라는 주홍글씨도 결국 자신들이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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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들은 늘 대중에게 불만이다. 그리고 힙합씬은 겉으로는 대중과 함께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론 가장 대중을 경계하는 것이 그들이다. 아주 오래전 그들이 아이돌 문화를 디스할 때부터. 작업물과는 외적으로, 그전에 자신들이 대중에게 미움 살 행동은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조차 생각에 없다면 너무 모순적이지 않나. 이해를 바라기 전에 이해를 할 행동을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훗날 저스트 뮤직의 그들이 다시 돌아와, 잘못을 뉘우치면서 음악으로 보답하겠다는 그 흔해빠진 말은 제발하지 말았으면.



2. "야구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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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말이다. 야구 선수 강정호가 2016년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 뒤 하는 말이다. 자신이 술을 먹고 한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했으면서 야구로 보답한다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야구밖에 없으니 그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2016년 NC다이노스 투수 이태양이 승부조작에 가담하자, 감독은 "야구장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라고 했다. 자신이 한 잘못은 제대로 뉘우치고 있는 것인가. 누구를 위한 보답인가? 야구장에 잘못을 용서해주는 신이라도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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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이미지가 너무나도 닮아있지 않은가? 넥센 히어로즈 소속 안우진 투수는 휘문고 시절 자신의 후배들을 폭행했다. 그 혐의로 데뷔를 하기도 전에 징계를 먹었다. 그가 혐의를 인정하고 하는 말이 웃기다. “정말 죄송합니다. 야구로 보답하겠습니다”. 겨우 19-20살 남짓한 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팬들은 어린애가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워왔냐며 화를 냈다.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줘 놓고, 야구로 보답하겠단다. 누구에게? 팬들에게? 안우진 본인이 사과해야 할 사람은 팬들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폭행한 후배들이며, 영원히 당신을 마운드에서 보지 않는 것이 9개 구단(넥센 제외) 팬들에게 최선의 보답일 것이다.

하지만 팬들의 의견은 저편으로 무시당하고, 그는 마무리 투수로 몇 번 등판하였으며 선발 투수로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유망주였던 만큼 실력도 좋았다. 아무렴, 그렇게 실력이 좋았으니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말을 쉽게 했겠지. 실력으로 절대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주홍글씨도 있다는걸 알았으면.



3.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연예인의 하루는 매번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고, 기사화된다. 사실 너무하다 싶다가도 일반인은 평생에 쥐어보지도 못할 돈을 벌면서 그런 거쯤은 감수해야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굉장히 이중적이지만. 그래서 특히나 대중들은 연예인, 혹은 연기자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연기자 박시후는 <검사 프린세스>,<청담동 앨리스>등 돈 많은 실장님 역, 소위 말하는 신데렐라에게 구두를 신겨주는 역할을 많이 했다. 인기도 덩달아 많아졌고, 필자는 그 인기가 끝까지 지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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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루아침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성추문 논란이 생기고 만 것이다. 그는 정식으로 약 5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긴 자숙기간을 거친 것이다.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좋은 작품을 통해 잘못에 보답하겠다고 했다. 당시 질타도 굉장히 많이 받았으며, 사람들은 드라마가 시작하기도 전에 외면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드라마는 굉장한 인기를 끌었으며 박시후는 연기대상에서 상까지 받게 되었다. 개인적인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굉장히 거부감이 들었고 그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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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복귀였다, 여러 호평이 넘쳐났다. 소위 그의 팬들에게는 자숙의 기간에 대한 보답을 했고, 대중들에게는 좋은 드라마를 제공함으로써 보답을 했다. 하지만 소수, 아니 어쩌면 다수일지도 모르는 몇몇의 대중에게는 아직도 거부감이 든다. 진정으로 어떤 것에 대해 보답한 것인가. 잘 모르겠다. 일주일을 기다리게 하는 인내심을 주고, 즐거움을 준다는 것에 대한 보답인가. 하지만 그런 보답이 진정한 보답일까?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

세상엔 보답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보답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익명의 누군가에게 외치는 진심 없는 속이 텅 빈 한 마디는 상대에게 아무런 감흥이 오지 않는다. 당신들이 용서를 구할 사람은 대중이 아니고 이미 대중은 의미없는 사과에 질려있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다. '보답하다'가 어떤 뜻인지 알고 있는가? 남에게 호의나 은혜를 값다 라는 뜻이다. 대중은 당신에게 호의와 은혜를 베푼 적이 없으며, 그들은 이 단어를 의미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책임회피용으로 쓸 뿐이다. 그들이 보답해야할 대상은 명확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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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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