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결혼에게 :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 展

글 입력 2018.06.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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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헛된 환상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언제까지나 행복할 나날을 기약하는 순간일 테지만, 수많은 벽에 부딪히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실 영원이라는 말 자체를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원한 행복을 꿈꾸는 결혼은 닿을 수 없는 환상이자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의 아들(친오빠)의 결혼식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마침 그 현실을 지켜보며 결혼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주제로 결혼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선보이는 전시,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 Dear My Wedding dress>展은 나의 발걸음을 이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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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톤과 꽃으로 꾸며진 전시장 입구가 가장 먼저 나를 맞이했다. 핑크빛과 꽃. 그간 사람들이 가져왔던 결혼에 대한 낭만과 꿈, 따위의 이미지가 느껴졌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져왔던 나는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 환상 속 현실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전시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PART 1 : The Stories of 12 Brides


전시는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첫 번째 파트 [Part 1 :12명의 신부 이야기 The Stories of 12 Brides]에서는 12명의 신부가, 12색의 방에서, 12가지의 결혼 이야기를 들려준다. 12명의 신부는 소설, 영화, 대중가요 등 여러 문화 매체에서 차용된 가상의 인물로, 영화 <라라랜드>의 ‘미아’, 드라마 <연애의 발견>의 ‘여름’ 등 꽤나 친숙한 이름들을 찾아볼 수 있다.



_ 이아림, Happily ever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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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마주한 작품은 이사림 작가의 ‘Happily ever after’이다. 귀여우면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를 그려낸 이 작품은 ‘어쩌면 인생에 단 한번 뿐인 소중한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사실 ‘둘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말은 동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판타지일 테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오래 오래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다. 여러 웨딩사진을 일러스트로 그려낸 이 작품에서는 결혼에 대한 그 꿈과 낭만을 표현해내고 있다.

나도 언젠가는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 아름다운 낭만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 시절에 이 작품을 봤다면 아름답고 사랑스럽게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궂은 현실을 지켜보며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마주하니 씁쓸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이다.) 결혼과 행복, 현실, 세 가지를 떠올리니 더욱 복잡하고 언짢은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어렵다.



_ 송영욱, 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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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는 기억에 남는 작품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송영욱 작가의 [Stranger]는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되었던 작품이다. 어느 날 우연히 작업실 앞에서 마주한 수백 마리의 나비가 날아다니는 풍경은 작가에게 환상적인 기억으로 남았지만, 사실 그 나비들의 정체는 사람의 피부에 붙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황다리 독나방’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본인의 사적인 경험을 토대로, 아름답게 축적된 기억들도 어쩌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왜곡된 것이며 때로는 추악하고 두려운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낯선 세계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언가를 경험해보기 이전에는 그 막연함에 앞서 설레고도 두려운 감정을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경험 이후에는, ‘기억’만이 남는다. 사실 그것이 어떠했든, 그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처럼 남게 된다. 그 추억은 정말 아름다운 것일까, 아름다웠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결혼’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결혼은 행복으로만 가득 차 있을까, 분명 아닐 테다. 나의 이러한 상념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이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_ 조진주, 딸을 위한 책

 
유진 (36)

언제나 나였습니다.

엄마에게 폭언을 퍼붓고 화풀이하는 할머니에게 불같이 화내며 맞섰던 사람은,
그런 이유로 아빠에게 뺨을 맞았던 사람은,
엄마와 함께 차례 상과 제사상을 차리고
무례한 친척들에게 음식과 술을 나르던 사람은,
 손목과 팔의 인대가 찢어진 엄마를 데리고 정형외과를 가고,
밤잠을 잘 못 자는 엄마를 설득시켜 정신과에 함께 갔던 사람은,
엄마의 이유 없는 신경질과,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독한 말들을 받아줬던 사람은.

전부, 나였습니다.

서른 중반을 넘은 지금,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나는
어쩌면 엄마의 길을 걷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일부터 또 다시 반복될 일들이 버거워서
최선을 다해 멀어지고 싶습니다.
혼자가 되고 싶어 발길을 재촉해 나의 집으로 향합니다.


이는 유일하게 결혼을 하지 않은 신부의 이야기이다. ‘딸은 엄마의 삶을 똑같이 살아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변화하지 않고 되풀이되는 버거운 현실을 나타낸다. 조진주 작가의 작품에서는 그 되풀이 되는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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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몸은 보석처럼 소중한 거야.
함부로 누구에게 주면 안 돼.'

‘담배는 절대 배우면 안 돼.
그런 여자들 남자들이 쉽게 본다.’

‘평생 꾸며야 돼.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여자이고 싶은 법이니까.’


조진주 작가의 작품 ‘딸을 위한 책’에 등장하는 텍스트들은 양육자가 딸에게 하는 말들을 대사 형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언젠가 들어본 말들일 것이다. 누군가는 험한 세상을 살아갈 우리를 걱정하는 마음에 이러한 문장을 남겼을 테지만 이는 여성을 물화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할 뿐이다.

이는 다정함으로 포장된 억압, 사랑으로 꾸며진 폭력이다. 걱정이라는 명목 하에서 이어져오던 그 말들이 폭력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작품에서는 그 현실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남긴다. 계속해서 대물림되던 그 억압 속에서 우리는 변화해야할 차례이다.



_ 네자켓 에키시, Inafferrabile/Greifar F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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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자켓 에키시의 'Inafferrabile/Greifar Fern'는 잠기지 않는 웨딩드레스를 입으려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아낸 영상 작품이다. 멍하니 영상을 바라보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기도, ‘날씬한 몸’에 우리를 가두어야 한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결혼을 앞둔 여성들이 웨딩드레스를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상 속에서도 여성들이 날씬한 신체에 속박당하며 다이어트를 이어나가는 기이한 풍경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여성의 몸을 규정하고 그것을 인종적, 정치적 제한에 종속시키는 관례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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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여성들이 그간 견뎌내야 했던 억압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여성상, 자유에 대한 갈망 등을 다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여성이 낭만적인 결혼만을 꿈꾸다 좌절하고, 육아와 가정 노동에 지치는 존재로만 표현된 것 같다는 점이다. 그것이 대다수의 현실이긴 할 테다. 하지만 그 ‘결혼’을 단순한 ‘비혼’이나, 사회적인 ‘여성’이나 ‘엄마’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 더욱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루어내는 모습을 담아낼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래도 다채로운 작품들로 결혼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선보이며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PART 2 : Show Must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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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 Show must go on]에서는 앙드레김의 웨딩드레스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다. 그를 떠올리면 짙은 화장술과 독특한 화법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종종 희화화되던 TV속 그의 이미지가 머릿 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의 명성이나 행보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마주한 그의 장엄하고 기품 있는 작품들에 필자는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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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패션쇼를 종합 예술의 스테이지로 생각하죠. 지구상 모든 사람들의 삶과 생활에 대한 기쁨, 로맨티시즘, 아주 행복한 순간, 다이나믹하고 에너제틱한 생동감이 있는 순간을 표출하기를 원하죠. 특히, 라스트 신에 로맨틱한 웨딩을 표출하는 이유는, 결혼이라는 영원하고 성스러운 맺음의 행복함을 꼭 각오하고 싶어서죠.”

- 앙드레김


*

영원하고 성스러운 맺음, 결혼. 이는 과히 이상적인 말로 들릴지도 모른다. 결혼이란 사랑의 연장선상일 테지만, 여성에게는 이 과정에서 감내해야할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고, ‘비혼’이 추세인 현재가 뼈저리게 이해가 되는 지금이다. 낭만적이고 영원한 사랑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막연한 이상을 벗어나 현실을 떠올리며 변화해나갈 때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를 적절한 시기에 관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결혼을 코앞에서 지켜보고, 느끼고 있을 때였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낭만을 꿈꾸고, 꿈같은 현실을 계속해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그 결혼이 사회 속 ‘여성’이 아닌 ‘나’와, 사랑하는 사람의 것 만이기를 바라며, 그렇게 변화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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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웨딩드레스
- Dear My Wedding Dress -


일자 : 2018.05.01(화) ~ 09.16(일)

관람일 | 화요일~일요일
휴관일 | 월요일

시간
10:00 ~ 18:00
(입장마감 : 전시마감 1시간 이전)

장소
서울미술관 전관

티켓가격
성인 11,000원
대학생 9,000원
학생(초/중/고) 7,000원

주최/주관
서울미술관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문의
서울미술관
02-39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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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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