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샤갈의 영혼의 정원을 거닐다 [전시]

글 입력 2018.06.06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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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jpg
 

샤갈은 지금 시대에서 어떤 사람으로 인식될까? 색채의 마술사,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진 화가? 만약 그를 화가가 아닌 인간으로 본다면 그에게 붙은 수식어로는 그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전시가 그랬다. 샤갈의 유명한 작품은 많이 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특별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그의 동판화 시리즈, 그의 시와 삽화들을 통해 그의 인생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색만 쓰는 줄 알았더니 전쟁의 아픔 앞에서는 흑백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었고 라퐁텐 우화를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고향 비텝스크와 일찍 사별한 아내 벨라를 무척 그리워했던 사람이었다. 오늘 필자는 이런 인간적인 샤갈의 모습이 담긴 ‘영혼의 정원’ 전시의 특별한 점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처음 접했던 샤갈의 라퐁텐 우화와 종교 이야기

샤갈은 라퐁텐 우화를 꽤 좋아한 듯하다. 검색창에 ‘라퐁텐 우화’를 입력하니 바로 ‘샤갈이 그린 라퐁텐 우화’가 연관 검색어로 떴는데 더 자세히 찾아보니 이미 그의 라퐁텐 우화 동판화가 책으로 출판된 것을 알게 되었다. 제 1부 꿈, 우화, 종교에 유난히 작품 수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우화 삽화가 압도적으로 다수 등장했다. 전시회 초입에 봤던 '러시아 마을'과 '붉은 배경의 꽃다발'과 또 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었던 라퐁텐 우화 삽화는 에칭기법*으로 만든 동판화 시리즈였다. 그의 라퐁텐 우화 그림을 보고 있자면 마치 펜으로 그린 듯한 자연스러운 선과 상상 속에서만 볼 수 있을 법한 의인화된 동물들, 사실적인 표정 등등 샤갈의 아이 같으면서도 때론 통찰력 있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다.

* 에칭: 산(酸)의 부식작용을 이용하는 판화의 한 방법. (네이버 백과사전, 예시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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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 마을 Russian Village.jpg
Russian village (192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러시아 마을)


- 흰 눈이 많이 내리는 추운 러시아 마을이지만 샤갈의 눈을 통해서라면 차가운 눈마저 따뜻하게 느껴진다. 하늘 위로 날아가는 썰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붉은색 벽돌 건물 그리고 따뜻한 마을의 정경에 마음이 쏠린다.


6]붉은 배경의 꽃다발 Bouquet of Flowers on Red Background.jpg
Bouquet de fleurs sur fond rouge (1970 ca.)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붉은 배경의 꽃다발)


- 꽃잎을 붙여놓은 듯한 입체감을 선사하고 있는데 유화가 뚝뚝 묻어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붉은색 배경과 큰 꽃 그림으로 인해 정열적이고 활기가 찬 샤갈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


샤갈은 유대인으로도 유명한 화가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성경과 관련된 그림, 7가지의 죄악에 대한 작품,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등등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그가 얼마나 종교에 의지하고 또 그 종교가 얼마나 그의 삶에 들어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회 초입에는 그의 일생 연대기가 펼쳐져 있었다. 2번의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미국으로 망명 그리고 사랑하는 벨라의 죽음 등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지만 상상력이 넘치는 그의 우화와 성경 작품들을 보니 그가 항상 비극에만 빠져있지는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아픔,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았던 샤갈

1부가 끝나니 바로 2부 전쟁과 피난 파트가 등장했다. 샤갈은 생전 전쟁을 2번이나 겪었고 격동적인 러시아 혁명까지 경험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우화 작품과 같은 동판화로 작업했음에도 더욱 어둡고 추상적이며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픈 작품들을 다수 만들어냈다. 2부 소개글에서 샤갈은 고통의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엔 그 말을 믿지 못했었다. 거듭되는 비극의 삶에서 어떻게 희망을 잡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너무 이상적이다 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자 그 생각이 바뀌고 말았다. 작품명은 생각나지 않지만 하늘에는 전투기가 가득하고 그 밑에 있는 마을은 초토화가 되어 있으며 군인들과 폭격으로 인해 다치고 죽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보기만 해도 전쟁의 아픔이 다가오는 작품이었고 그 이후에도 쭉 전쟁과 관련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다 2부의 마지막 작품을 마주보게 되었다. 아까 전 봤던 작품과 같은 구도였는데 무언가 달랐다. 하늘에는 전투기 대신 큰 하얀 새들이, 그 밑에 있는 마을은 조금씩 복구되는 모습이, 군인 없는 마을 거리에는 사람들이 서로 돕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긴 했지만 사람들이 곧 이겨낼 것이라는, 완전히 복구되지는 못하더라도 천천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마지막에 던져주는 듯했다. 아, 샤갈은 정말 전쟁 속에서도 희망을 보았구나.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알게 된 기분이었다.



샤갈의 시와 사랑

이번 전시에서 처음 알았던 사실이지만 샤갈은 시를 썼던 화가였다.

 
8]시인 아폴리네르 Apollinaire.jpg
Apollinaire (1976)
colored lithography, Private Collec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친했던 사이였다. 마리 로랑생 전시 때 봤던 아폴리네르를 다시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샤갈은 파리에서 날개를 펼친 듯했는데 이는 그가 그곳에서 문학가들과 친해지고 그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파란색이라는 따뜻한 차가움을 품은 파란색으로 펼친 작품 속에는 그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뜻하는 에펠탑이 자주 등장했으며 새로운 사랑인 바바와 파리에서 행복하게 사는 듯한 작품도 여럿 있었다. 여전히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파리에서 그는 시에 대한 열정을 펼쳤고 그 결과 ‘문학적 예술가’라는 별명과 함께 수많은 시와 이와 관련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얼핏 보면 매우 추상적인 그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하나하나 보면서 혼자 그 의미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9]시 도판 12.jpg
Poèmes, Gravure Xll (1968)
colored xylography, Private Collec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샤갈은 시뿐만 아니라 사랑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벨라와 바바가 바로 그 증거이다. 중력을 거스른 사랑처럼 그는 나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곁에 있는 사람을 열렬히 사랑했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그 사랑을 표현해냈다. 그중에서도 ‘와인잔을 든 이중 초상화’가 가장 인상 깊게 남는다. 이 작품은 벨라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 그린 것인데 신부가 신랑을 목마 태우고 있으며 임신을 암시하는 천사가 그 위를 날아가고 있다. 따뜻한 노란색에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의 표정, 날아갈 듯이 기쁜 샤갈이 신부 위에 올라탄 모습이 ‘사랑’ 그 자체로 느껴졌다.


2]와인잔을 든 이중 초상화 Double Portrait with a Glass of Wine.jpg
Étude pour le double portrait au verre de vin  (1976)
colored lithography, Private Collec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7]바바의 초상화 Portrait of Vava.jpg
Portrait de Vava (1953-56)
oil on cardboard, Private Collec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바바의 초상화)


- 이 그림을 보고 '와' 라고 외치며 감탄했다. 바바가 너무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붉은색 배경에 하얗고 백옥 같은 피부를 갖고 있는 바바를 샤갈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


“Art Seems to me to be a state of Soul more than anything else.”
그 무엇보다 내 영혼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건 예술이다.


샤갈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전시. 그의 동판화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인생을 훑어본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더 특별했다. 자신의 영혼의 세계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건 예술이라고 말하는 샤갈을 이제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샤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사람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에게도 뜻깊은 전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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