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샤갈 러브 앤 라이프展: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대진운을 타고난 '2018 샤갈 展 대첩'의 승자
글 입력 2018.06.0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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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림: 이 리뷰는 M컨템포러리의 「마르크 샤갈 특별전: 영혼의 정원 展(18.4.28~8.18)」과 비교를 중심으로 서술되었으므로, 해당 전시에 대한 필자의 선행 리뷰와 함께 읽으시기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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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세 개의 샤갈 展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이례적인 상황에서, 각 전시는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비교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은 매우 이상적인 대진운을 타고 났다고 볼 수 있다. 이 전시가 서울에서 유일한 샤갈 展이라면, 혹은 M컨템포러리의 「마르크 샤갈 특별전: 영혼의 정원 展」보다 일찍 개최했다면 호평을 듣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한가람미술관의 이번 샤갈 展은 M컨템포러리가 안겨준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전시는 한가람미술관 3층 전체를 사용하면서 아홉 구역으로 세분화되었다. 한가람미술관의 면적에 비하면 너무 자잘하게 구획해 놓은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주제별로 구분 기준이 명확한 편이고, 각 구획을 각기 다른 색으로 표기한 평면도가 그려진 브로셔를 제공하기 때문에 동선에 대한 혼란은 거의 없다. 온갖 미사여구로 점철되어 실용적 가치는 전무한 브로셔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 전시의 브로셔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친절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홉 개의 구획은 (1)초상화 그리고 자화상, (2)나의 인생, (3)연인들, (4)성서, (5)스테인드글라스, (6)죽은 영혼들, (7)라퐁텐의 우화, (8)멀티미디어, (9)벨라의 책 순서로 전개된다. ‘성서’와 ‘라퐁텐의 우화’는 먼저 열린 M컨템포러리의 샤갈 展에서도 등장했던 주제이지만 접근 방식은 전혀 달랐다. 작품 수는 더 적은 대신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각 연작들이 전반적으로 어떠한 미술사적 가치를 갖는지 알려주고 있으며, 오디오가이드가 없더라도 캡션을 통해 각 작품의 내용과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상세한 설명을 통해 관람객은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자신만의 해석과 비교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는 적극적인 개입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M컨템포러리 관계자는 ‘우리는 한가람미술관에 비하여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달 수 없었다’고 항변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렇다면 작품 수를 줄이는 것이 맞다.

다른 주제에서도 창의성과 정성이 엿보였다. 예루살렘의 하다샤 병원 스테인드글라스를 모사한 작품은 유대민족의 12지파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작품 속 여러 모티브가 각 지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또한 각 지파를 상징하는 모티브들과 샤갈이 지속적으로 추구한 상징들이 화면 속에서 유기적으로 결부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모사의 수준이 다소 키치적이긴 하나, 조도를 섬세하게 통제한 덕분에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벨라의 책’은 샤갈의 영원한 뮤즈인 벨라의 눈을 통해 바라 본 비테프스크를 다시 샤갈의 화풍으로 전개시킴으로써 부부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과 장소로의 더 강한 몰입을 유도하였다. 디아스포라를 겪은 유대 민족의 풍습과 전통, 그리고 소소한 생활 양식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샤갈 부부의 미적/지적 뿌리로 보다 깊숙히 들어간 듯한 기분을 심어주며, 작품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선사했다.

이번 샤갈 展도 M컨템포러리의 전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늘 기대하고 고대하는 채색화보다는 판화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관람 자체는 꽤나 유쾌했다. 이번 전시는 M컨템포러리의 샤갈 展과 무엇이 달랐을까? 일전에 M컨템포러리의 샤갈 展에 남긴 혹평에서, 나는 관람객의 기대와 달리 판화가 대부분인 전시라도 그것의 존재 목적을 ‘근거와 함께, 설득력을 갖추고, (무엇보다) 아름답게’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전시는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상술했듯 판화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 가치와 의미의 맥락이 충분히 제시되어 ‘근거’와 ‘설득력’이 갖추어졌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가장 중요한 ‘아름답게’라는 조건인데, 그것은 판화 작품과 (그래봤자 일반적인 프로젝션이지만) 미디어아트를 결합하려는 시도에서 충분히 달성되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삽화용 판화 작업인 <음악가(1923)>, <랍비(1922)>, <산책(1923)>은 다른 작품과 달리 옆에 충분한 여백을 두고 걸렸다. 프로젝터를 통해 작품에 빛을 쏘고, 그 빛이 연기와 같은 형상으로 여백에 점차 퍼져나간다. 피어난 연기 속에서 판화 작품에 등장했던 모티브가 화려한 색채로 다시 태어나 생동감 있게 움직인다. 판화 속 모티브를 디지털 신호로 색을 입혀 끄집어 내는 작업은 샤갈이 평소 동일한 모티브를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쨋든 관람객은 이러한 참신한 컨텐츠를 통해 음영으로 고정된 판화 속 무뚝뚝한 모티브가 액자 밖으로 탈주하여 생명력을 입고 넘실거리는 광경을 묵도하게 되었다. 이 컨텐츠는 미디어로 복제된 시뮬라크르를 그것의 원본과 한데 융합하는 독창적인 시도의 산물이고, 그 자체로 새로운 몰입의 경험을 선사하는 독자적인 작품으로서 입지를 지닌다. 단순한 배열의 반복 속에서 참신함을 추구하고 싶은 모든 기획자들이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이다.

세상은 모방과 경쟁, 질투와 변혁 속에서 성장해왔다. 직선거리로 3.3km 떨어진 두 미술관이 동시에 개최한 두 개의 샤갈 展은 조만간 순차적으로 막을 내리겠지만, 동일한 화가, 동일한 매체에 집중한 두 전시가 남긴 여러 의문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우리 주변을 맴돌 것이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철저하게 해체된 미술의 성지와 고전에서 어떻게 새로운 아름다움과 눈여겨 볼 만한 가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는 반드시 그 해답을 찾아내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는 반면, 누군가는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해답을 찾아내는 자가 더 많기를 바랄 뿐이다.


[김주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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