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읽는 수능 국어지문 유리창1_정지용 [문학]

글 입력 2018.06.09 00: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IMG_5985[1].jpg
 

유리창1 / 정지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갔구나!





나와 정지용 시인은 동향이다. 시인의 대표작 <향수>의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는 곳은 나의 고향이자 시인의 기억 속 고향, 충청북도 옥천일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옥천에는 ‘지용제’가 열렸고, 지용제가 열리는 5월이 되면 정지용 백일장에 시를 써 제출하고는 했다. 또한 체험학습 시간만 되면 시인의 생가에 가곤 했으므로 선생님께서 오늘은 정지용 생가에 가겠노라 선언하면 다들 지겹다는 듯 느릿느릿 가서 마루에 앉았다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남들보다 정지용이라고 하는 시인과 (상대적으로)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막상 정지용이라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시험을 위해 습득한 지식들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이 기회로 시인의 대표작인 <유리창1>을 음미함으로써,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시인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서고자 한다.

우리는 고민을 하거나 어떠한 감정을 반추할 때면 열없이 기댄 자세로 무언가를 응시하곤 한다. 시의 화자 또한 밤에 홀로 창가에 서서 유리창을 바라보고 있다. 유리창에 기대어 더운 숨을 쉰다. 창에는 입김이 서리고 걷히기를 반복한다. 이는 작은 새가 날개를 파닥이는 것을 연상시킨다.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 '고운 페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입김은 자꾸만 사라져버리는데, 이토록 위태롭고 연약한 존재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유리창1>이 정지용의 아들이 폐병으로 죽은 사건을 배경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통해 ‘폐혈관이 찢어진’ 산새가 화자의 아들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화자는 유리창을 닦는 행위를 통해 외로운 황홀한 심사를 느끼는데, 이는 금방 사라지는 입김이라는 속성이 연약한 화자의 아들의 속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 행위를 통해 죽은 아들을 떠올리지만 동시에 외롭다. 결과적으로 아들이 수증기처럼 사라지는 것 또한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입김으로 아들의 잔상을 음미하며 느끼는 역설은 유리창의 역설과 닮아있다. 유리창 투명하여 창 건너편을 엿볼 수 있게 해주지만 결과적으로는 건너편과의 소통을 단절하는 역할을 한다. 유리창은 아들을 떠올리는 것만 허락하고 아들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이렇게 불완전한 매개체인 유리창에 일시적인 입김으로라도 아들을 그려보고자 하는 화자의 모습은 그 절절한 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중략)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어린 시절 창문에 글씨를 끼적일 때, 혹은 버스에 탔을 때 창밖을 바라본 사람이라면 모두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창에 맺힌 수증기가 찬 기운을 받아 엉기고, 그것이 작은 물방울로 맺혀있는 것을 말이다. 아들을 보려는 화자의 계속된 시도에도 자꾸만 새까만 밤이 밀려온다. 화자의 시도는 창문에 수증기로만 맺히고 그 물방울은 보석처럼 박힌, 물먹은 별처럼 보인다. 혹은 이 ‘물먹은 별’이 죽은 아들을 떠올리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고 그 시선이 밤하늘에 박힌 것으로 표현된 것일 수도 있다. 전자와 후자 모두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의미한다.

이전에 배웠을 때는 왜 입김이 아들을 의미하는지, 창문을 닦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의 문제처럼 외웠다. 아무리 시인의 근처에 있어도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법이다. 작품 또한 그렇다. 이 기회를 통해 내가 내 주위 작가에게, 작품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김새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