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일기] 독백1

글 입력 2018.06.10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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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박주현]


윤지는, 내 사진에 우울함이 느껴진다 했다. 그래서 좋다 했다.
혼자 가만히 서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보다 순간 작고 곧은 직선의 이명이 들려오는 듯한.
그런 단조롭고 딱딱한 것에서 느껴지는, 직접 알 수 없는 사실에 더욱 우울감이 느껴진 건가.

- 그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 년 전이 생각나
그땐 정말 슬퍼했다. 나의 무엇에 우울감이 느껴진다 하면, 분명 시작은 그곳이라 다시 떠올리곤 한다.
사 년 전엔 이야기를 만들었다. 깊게 생각할 틈도 없이 눈에 띄고 극적인 이야기를 써야 했다. 윤지는 그것을 봤고 들었고 도와줬다. 어쩌면 윤지는 그 기억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우울한 내가 생각해내던 이야기를. 기쁜 이야기는 쓸 수 없었다. 이유는 우울해서. 시험을 보러 갔을 땐 충동적으로 주인공을 죽였다. 역시 우울해서. 그러자 심사위원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끝이 나고 엉엉 울었다. 주인공을 죽인 것에 대한 후회였다. 죽이지 말걸, 죽이지 말걸, 죽이지 말걸. 마치 살인자가 된 것처럼 머릿속엔 주인공을 죽인 것에 대한 후회뿐이었다. 우울했던 게 충동으로 내 글에, 이야기에 담아졌다. 분명 시작은 그곳이다.

- 근데 오해할까 봐.
혼자 듣는 수업에선 실수하는 것이 두려워 늘 항상 무표정이다. 근데 혹여 오해할까 봐 나를 소개하는 시작은 ‘저는 생각보다 활발합니다.’라는 문장이었다. 그냥 그것에 대한 우울함이 세어 나왔을 뿐 굳은 표정보다, 우울한 사진과 글보다, 무미건조한 긴 문장보다 활발하다. 아주 많이

- 근데 고맙지. 
첫 월급으로 산 디지털카메라를 버리고 필름 카메라를 든 것은 남들이 찍은 사진에서 보이는 필름 카메라의 색감이 좋아서였다. 나는 그 색감이 좋았다.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나는 남들의 색을 담아내지 못했다. 이상한 색감의 후지, 이상한 색감의 코닥, 이상한 색감의 아그파. 물감을 쫘둔 팔레트에서 유독 닳지 않은 물감의 색들로만 이루어진 그런 색감의 사진들. 조금씩 지쳐갈 때쯤 윤지가 내 사진엔 우울함이 느껴진다 했다. 그래서 좋다 했다. 그게 무엇이라 해도.

그냥 다시 필름을 끼운다. 또다시 그걸 담으면 되지.




[박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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