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 꿈과 애정, 삶이 담긴 에세이

글 입력 2018.06.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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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은이 : 코리 스탬퍼 / 옮긴이 : 박다솜
분야 : 에세이, 인문학, 책읽기, 글쓰기
발행일 : 2018년 5월 20일
펴낸곳 : 윌북 / 구매처


영어를 사랑했던 한 소녀.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 Merriam-Webster(메리엄-웹스터)에서 20년째 사전을 제작하고 있다. 그가 풀어놓는 사전 제작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주 디테일하고, 어쩌면 경이로운 이야기다. 사전 제작이라니? 이 책을 접하기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사전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사전이란 마치 단어의 본질과 정의를 품고 있는 것처럼 여겼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사전이야말로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 창조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문득 잊고 있던 기억이 고개를 슬며시 내민다. 어떤 단어의 뜻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사전에 있는 정의가 그 단어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지 못한다고 느꼈던 경험. 사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정의가 정답이라고 믿었고,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가 보다'하고 넘어갔는데, 사실은 더 적합한 정의가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글쎄, 그럼 사전 제작자들이 제대로 일을 안 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에 대한 이상한 동정심 같은 것이 생긴다. 하루 8시간 동안 한 단어를 붙잡고 있는 일. 이 단어의 품사는 무엇이고, 상황에 따라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며, 그래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다.

그냥 무슨 뜻인지만 알면 되지,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냐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전은 '언어'를 다루는 일이다. 언어에 정답이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고 내리는 말. 기존에 있는 단어라고 해도 시대에 따라 의미가 변할 수 있으며,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단어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1+2는 3인 것처럼, 명확하고 고정적인 답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다. 기민하게 사람들의 말을 읽고, 연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전이 출간되고 나면, 바로 다음 판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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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잘 쉬지도 못하고, 노력을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일에 그들은 왜 몰두하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을 내내 맴돌았던 생각이다. 아무리 좋은 정의를 내놓아도 그뿐이고, 하나의 실수나 오류에는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일. 책의 초반 부에서 코리 스탬퍼는 이런 말을 한다. "영어를 사랑해요. 정말, 정말 사랑해요." 결국 20년 동안 그가 단어에 매달리게 만든 것은 영어에 대한 애정이었던 것일까.

이러한 생각에 다다르자, 자연스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끈질기게 매달려본 적이 있던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나. 아니,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코리 스탬퍼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사전을 만들면서 그가 느꼈을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져와 머리가 아파오는데, 그럼에도 그 세세한 이야기들을 찬찬히 뜯어보게 되는 이유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혀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산과 같은 이야기.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코리 스탬퍼라는 사람의 꿈과 애정, 삶을 담고 있는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20년 후 이런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쓰고 싶다. 비록 그것이 하나의 꿈을 향한 것이 아닐지라도, 방황하는 과정일지라도. 온전히 '나'의 삶이 담긴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나를 향한 그 짧은 물음이 코리 스탬퍼가 내게 남겨준 작은 선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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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송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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