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돌의 ‘차트 점령’, 불편하신가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6.1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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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되면, 음원 사이트 차트에 생소한 아이돌 가수의 음악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 순위는 내내 상위권을 유지하다가 아침이 밝아오면 다시 다른 곡들에 밀려 내려간다. 새벽에 사이트 이용자 수가 적은 것을 이용하여 그 사이 아이돌 가수의 음원 순위를 올리려는, 팬덤의 조직적 스트리밍 전략 때문이다.
 
상업성을 추구하는 아이돌 문화가 주류 문화가 되고 팬덤의 조직화가 매체를 통해 신속하게 이루어지게 되면서 이러한 광경은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혹자는 이러한 아이돌의 ‘차트 점령’이 음원 생태계를 위협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음원의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횟수로 산출되는 차트 순위는 음원의 대중적 인기와 음악적 가치를 가늠하게 하는데, 그러한 척도로서의 순수한 기능이 팬덤의 인위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에 의해 훼손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조직적 활동에 대하여 ‘어긋난 팬심’이라고 하며 비판을 가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여론에 대한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집단적 스트리밍 전략으로 차트 순위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함으로써 음원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체가 정말 ‘팬덤’인가?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정말 음원 생태계를 위협하기는 하는 것인가? 필자는 두 가지의 의문에 모두 부정의 대답을 함으로써 한국 사회와 아이돌 문화가 당면한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보려고 한다.

 

Q1. ‘팬덤’은 음원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체인가


한국에서 특화된 아이돌 문화로부터 비롯한 팬덤의 결속은 예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있었다. 팬덤의 상징색이나 응원 도구는 그 집단을 대표하는 것으로 팬덤 결속의 목적을 가지며, 여러 가수가 모여 합동 공연을 하는 날에는 그 응원 도구를 들고 최대한 많은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아이돌 가수의 인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 결속의 형태가 더욱 체계화 및 상업화되었는데, 예를 들어 음반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팬덤이 조직적으로 공동 구매를 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음반 발매 첫 주의 판매량을 이르는 ‘초동’ 순위를 내기 위해 수십 장, 많게는 수백 장의 음반을 구매한다. 음원 스트리밍도 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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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 다수인이 모인 ‘팬덤’의 결속력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가. 그것은 순수하게 가수를 응원하는 마음과 소비자의 심리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성’에 가까워 보이는 집단적 행위를 설명할 수는 없다.
 
상업성을 목적으로 하는 아이돌 가수는 기업에서 내놓은 상품이다. 그들의 음악이 무리 없이 향유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잘 팔려야’ 한다. 지속적인 향유를 원하는 소비자로서 팬덤은 구매의 방식으로 그들의 상품가치를 올려야 하는 굴레에 묶이게 된다. 가치를 높이는 과정에서 경쟁의 과정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수를 응원하는 마음과 더불어 소비자라는 위치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심리를 기업은 정확히 파악해내어, 이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음원 스트리밍은 ‘부추겨진다’. 음원 사이트 ‘멜론’은 한 시간에 한 번씩 순위가 갱신되는 일반 실시간 차트와 달리 ‘5분 차트’를 도입하여 5분에 한 번씩 순위 그래프를 갱신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음악의 상품 가치를 계속적으로 명시하며 팬덤의 경쟁심을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자체는 치솟는 이용 가격과 만족스럽지 않은 음질 제공으로 비판을 받고 있으나, 팬들은 순위를 높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단적 스트리밍이 음원 차트에 혼동을 가져온다면, 우리는 그 책임을 과연 팬덤에 지울 수 있을까?

 

Q2. 스트리밍 전략이 음원 생태계를 위협하는가?


스트리밍 전략에 대한 불만의 골자는 이러하다. 팬덤과 자본으로 점철된 아이돌의 상업성에 밀려 음악적 다양성이 손실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예술의 자본화를 향한 일리 있는 비판이다. 자본주의는 소수를 소외시키고 자본을 가치 중립적 가치로 내세우며 그 폐단을 필요악으로 치부한다. 예술의 자본화는 언제나 문제가 되어왔다.
 
그러나 스트리밍 전략이 음원 생태계의 혼동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아이돌의 음악이 차트에 많이 오르게 될 뿐 음악의 다양성 자체가 흐려지지는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차트 순위를 음악의 핵심적 가치로 바라보는 인식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스트리밍은 부추겨지는 면이 있기는 하나 어찌 됐건 자의적으로 치러지는 행위이고 그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 차트는 하나의 척도에 불과할 뿐이고 그것으로 음악성을 전면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차트가 기준의 전부가 되면 음악은 획일화되고 단순 상품으로 전락한다. 아이돌 팬덤이 아닌, 순위로 작품을 평가하는 협소한 시야가 음원 생태계에 칼을 들이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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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차트 역주행’이 하나의 선전이 되고,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하지 못하면 성공을 인정받기 어렵다. 등급과 순위를 이름처럼 부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잔인함이 재미로 소비된다. 가요계는 1위를 숭배한다. 한국 사회와 그 병폐를 가장 단편적으로 설명해주는 ‘서열화’의 개념은 문화계로까지 이어진다. 만약 1위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였다면, 집단 스트리밍 문화는 태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Opinion


단순히 ‘어긋난 팬심’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라,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으로써 관찰해야 한다. 아이돌 가수가 아무리 상품 가치를 갖는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에 불과할 뿐이지, 그들을 슈퍼에 진열된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대중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값어치를 매기고 자본화하며 줄을 세운다. 아이돌 문화에 국한될 수 없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이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원칙이 그 사회를 폭넓게 지배하는 하위문화에 적용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위협’으로 느낀다면 분명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실재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어린 아이돌 가수와 팬덤에게 지우는 것은 무책임하게 본질을 흐리는 일에 불과하다. 가요계 및 문화예술계에 담긴 사회의 부조리한 인식,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인간의 얼굴들과 마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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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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