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쁘게 만든 단어를 세상에 뿌리는 누군가의 이야기

책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글 입력 2018.06.1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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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처럼, ‘사전’은 많은 이들에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사사로운 오타는 물론 단어가 가진 의미의 작은 부분도 왜곡해서는 안되며, 새롭게 태어난 낱말도 차별없이 기록해둬야 하는 것. 이것이 가진 오랜 역사와 묵직한 두께만큼, 사전이 독자들에게 받는 신뢰는 빈틈없이 빼곡하다. 그래서 그 ‘완벽해야 하는 것’을 만드는 이들의 일이 팍팍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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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필멸자들


20년동안 사전 편찬자로서 일해온 저자가 쓴 책을 읽으면서, 매일 같은 자리에서 글을 읽고 단어를 맛보는 그녀의 모습이 내내 아른거렸다. 하루에 8시간씩, 적막으로 둘러싸인 사무실에서, 사탕을 우물거리듯 단어의 맛을 느끼며 빼곡한 글자 안에서 조용히 눈이 멀어가는 한 사전 편찬자의 모습은, ‘언어’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 대한 상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왜, ‘글’을 쓰고 만드는 직업이라면 뭔가 다른 회사보다 으리으리하고 개방적일 것 같다는 막연한 환상이 있지 않나. (게다가 저자 코리 스탬퍼의 회사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다.)

하지만 그녀는 직장에서 다른 이에게 방해가 될까 ‘핑크’라고 불리는 메모를 통해 다소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동료와 대화하고, 혹시나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일까 감탄사도 쉽게 내뱉지 못한다. 흥미로운 어휘를 발견하면 길을 가다가도 기록해둬야 하고, 빠른 인터넷 사전으로 고용 불안을 안고 지내야 하며, 매일같이 쏟아지는 독자들의 항의 메일에도 자료를 찾아가며 친절하게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특히 사람들의 입에서 태어나 뜻을 가지게 되는 새로운 낱말의 의미와 그것의 범위, 그리고 그것이 가진 문법적인 문제는 사전 편찬자들을 밤낮없이 얽매이게 만든다. (책에서는 irregardless’, ‘mansplain’, ‘bored of-‘등을 예시로 설명했다.) 흔한 ‘as’, ‘like’같은 단어조차도 그들에게는 비문이다. ‘take’의 말뜻을 푸는 데 한 달이 걸렸다던 일화처럼, 말이 가진 깊이를 세어보고 범위를 짚어보는 긴 과정을 지나야만 비로소 그 심연을 정의할 수 있는 예쁜 문장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

책을 읽으면서는 사실 단어의 탄생과 소멸도 사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개인이 가진 고유한 특성과 개성을 바탕으로 본인만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삶처럼, 누군가의 입에서 태어난 단어도 누군가에 의해 불려지고 이용되며 살아지고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고. 특히 사람이건, 단어건 그들이 가진 역할은 가변적이면서 고무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생성과 소멸이라는 필연적인 단계를 돌이켜보면, 단어의 삶을 기록하는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 예민하고 신중해야만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전에 정의되는 그 단어는 그 세대를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그리고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의 작은 불씨가 되기 때문이다.

사전을 만드는 것은 막중한 책임감을 지닌 일이다.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은 이들을 ‘성실함에 대한 보답은 받지 못하되, 칭찬받을 가망 없이 비판에 노출되며, 착오에 의해 태만으로 인해 벌 받을 가능성이 높은 불행한 필멸자들’이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행한 필멸자’는 본인의 일을 사랑한다. 누군가 “살면서 들은 가장 재미없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직업이 그녀에게는 천국과 같은 것이다. 코리 스탬퍼는 이 일이 얼마나 고달픈 것인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지만, 솔직하고 유쾌한 문체는 결국 그녀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한번 일깨워준다.

놓고 싶어도 절대 그럴 수는 없는 것.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는 관계. 20년째 단어와 헤어질 수 없는 ‘연애’를 하고 있는 이유. 그리고 이는 처음 면접을 봤던 당시 그녀가 했던 말 한 마디로 축약이 가능할 것 같다. “영어를 사랑해요. 정말, 정말 사랑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사전을 만드는 일을 하는 저자가 쓴 이야기인 만큼, 이 책은 전반적으로 ‘영어’라는 언어를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솔직하게는 성장하고 번창하는 영어의 이야기를 내 안에 다 담아내기엔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느꼈던 것처럼 언어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고, 따라서 그 사회의 문화와 분위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여러 번 고민해봐야만 했던 구절들이 있었다. 그래서 솔직하게는, 영어에 끌려 다니던 나로서는 드문드문 흥미를 잃었다. (학창시절부터, 토익을 공부하던 최근까지 영어에 지배’만’ 당해오던 내 얕은 지식 때문인 걸까.)

본인의 고충을 거리낌없이 꺼내던 저자의 솔직함이 사랑스러웠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를 오롯하고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던 책. 그러나,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직업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맛본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든다. 글을 좋아하고,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있을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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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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