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ube Gallery] 01. ‘색깔 없음’의 잠재력, 쩌는 흑백 영상 모음

글 입력 2018.06.15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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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Gallery]
01. '색깔 없음'의 잠재력, 쩌는 흑백 영상 모음


 


  고백하자면, 언제나 흑백보다는 컬러였다. 영상이든 사진이든 작품을 볼 때 나의 선호가 그렇다는 말이다. 적확한 색상이 사용되어야만 분위기와 표현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뻔뻔하게 주장해보자면) ‘컬러’와 ‘흑백’은 비교할 수 있는 대상군이 아니었다. 정말 다른 호흡과 맥락을 가진 연출들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흑백’ 이미지들이 굉장히 전형적이라고 생각했다. 차분한 톤, 그리고 회상적인 분위기. 누구든 싫어하기 힘든 분위기라 굉장히 쉽고 안일한 연출이라는 인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흑백’이라는 잠재력을 어떻게 인정하게 됐느냐 하면 한 영화 때문이다. 별 기대 없이 본 영화가 나를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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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더스트럭>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일단 영화 추천 좀 하겠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원더스트럭>. 1927년 뉴욕과 1977년 뉴욕을 각각 살고 있는 소년소녀가 자연사박물관에서 만나게 된다는 환상적인 설정을 갖고 있다. 20년대의 배경은 흑백 무성 영상으로 펼쳐지고 70년대는 색감이 선명한 필름 사진 느낌으로 연출되는데, 50년이라는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두 시대가 굉장히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면서 교차된다. 특별한 시간여행물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명의 아역배우 모두 청각장애인으로 묘사되는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사운드’ 이 외의 영화적 감각들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내기 때문이다. 별 감흥 없이 극장 좌석에 앉아 있는 나를 영화는 초반부부터 장악했다. 눈을 번쩍 뜨고 볼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래서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극장을 나왔을 때, 일반 영화를 감상한 것이 아닌 상당히 이색적인 체험을 한 것 같은 여운을 느낀다. 서사의 상상력도 풍부하지만 사실 감독이 더 욕심을 부린 쪽은 서사 외 연출, 즉 영화적 언어였다. 애니메이션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다채롭고 모험적이다. 특히, 20년대 뉴욕을 거니는 소녀의 이야기는 ‘흑백 판타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아름답고 놀라운 장면들의 연속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흑백’ 이미지에 대한 편견은 영화 <원더스트럭>을 감상한 날을 기점으로 많이 뒤엎어졌다. 배우들의 감정 실린 목소리 혹은 눈을 사로잡는 색채들의 향연이 없었음에도 그들의 눈빛과 몸짓들이 선명하게 기억난다는 게 나는 제일 신기했다. 심지어 어떤 장면에서는 고전 영화처럼 과장된 표정들과 어색한 화면 전환이 가득했는데도 그랬다. 들리지도 않는 말소리나 웃음소리가 생생히 느껴졌다. 처음으로 큰 스케일의 우주 영화를 본 것처럼 얼떨떨한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 몰랐던 감각이 ‘나 여기 있어’ 하고 뼈 소리를 우두둑 내며 나타나는 경험이었다. (감각적이고 서정적이지만 동시에 실험적인 영상물을 공부하고 싶다면 꼭 이 영화를 보시길!)





  우선 여러분들에게 영상 3편을 소개해드리고 싶다. 종종 괜찮은 흑백 영상들을 찾을 때마다 나만 알고 싶은 기분도 들지만 꼭 공유해야겠다. <원더스트럭>처럼 ‘긴 호흡’으로 느낄 수는 없겠지만 이 유튜브 영상들 속에도 다양한 흑백 감각이 펼쳐진다.


1. MONDAY (short film)


흑백 단편 영화다. 영상을 보고 나면 절대 월욜을 미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어떤 대화나 독백도 등장하지 않지만 무기력과 짜증이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컬러 연출이 아닌 밋밋한 톤의 흑백이기 때문에 더더욱 일상에 대한 환멸감이 잘 표출된 것 같다. 우리는 모두 같은 악몽을 꾸는 사람들인가 보다.



2. 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Entropy)



연주곡이다. 대단한 합주를 해내는 이들이 등장하는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연주자 개개인이 주목되기보다는 점층적으로 사운드가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화음에 감탄하게 된다. 어쩌면 그게 이 뮤직비디오의 목표가 아니었을까 싶다. 담백하다. 어떠한 색도 우리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파트너들을 살피는 연주자들의 눈빛들이 흑백 화면을 뚫고 떠오를 뿐이다. 무슨 맥락으로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으나 작곡가 Max Richter의 뮤직비디오 대부분이 흑백영상인 것을 보면 꽤나 중요한 함의가 있어 보인다.



3. James Vincent McMorrow - Get Low



구슬픈 청춘들. 여리고 예민하기 때문에 모든 감정을 강렬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 쪽팔릴 정도로 불쾌하고 순수한 시절을 이토록 절제하여 보여줄 수 있다니. 내용적인 측면은 둘째 치고 그냥 보이는 것만 봐도 굉장히 ‘트렌디’한 영상이다. 암울하고 어설픈 풋사랑엔 역시나 흑백이 제격이었나 보다.






  이제는 어렴풋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흑백’만이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분위기와 감정들이 있다고. 흑백은 빛 중에서 가장 필요한 ‘최소한의 빛’만을 표현하기 때문에 굉장히 순수하다. 즉, 최소한의 인상인 것이다. 최소한의 인상 외 나머지 빈자리는 우리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많은 흑백 영화나 사진들이 실제 현실을 담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연극적이고 의도된 연출처럼 느껴지는 게 아닐까. 일단 일차적으로 화려한 색채를 제거함으로써 현실 맥락에서 조금 붕 뜬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 상상적인 비밀스러움이 흑백의 매력인 동시에 ‘내가 모르는 시간 혹은 모르는 시대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예감 역시 안겨주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 모든 것들을 퉁쳐 ‘아날로그 감수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의도된 흑백 연출은 단순히 그리운 아날로그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아날로그’가 끌어오는 낯선 감정, 즉 낯선 시공간에 대한 이물감이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올해의 컬러’라고 하여 유행을 주도하는 색깔들이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컬러들은 패션계와 메이크업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각종 트렌디한 매체들은 역시 올해의 컬러가 적용된 상품들을 소개하기에 바쁘다. 머리 색깔부터 가방, 속옷까지 통통 튀는 컬러들이 장악해 나가고 있다. 물론 개성 넘치고 확실한 색채들도 좋다. 우리는 그런 세계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색깔 없음’의 잠재력을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사는 것 같아 아쉽다. 블랙과 화이트, 빛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판타지. 모든 것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을 꿈꿀 수 있는 판타지.
  
  영화 <원더스트럭>처럼 작정하고 만든 작품들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나 같은 사람은 엄청나게 호들갑을 떨며 감상할 자신이 있으니까. (현재는 1940년도 흑백고전 영화 ‘레베카’를 보는 중이다. 캡쳐하고 싶은 장면들이 너무 많아 이야기에 집중은 못하고 있지만 그만큼 충분히 매료되었다.)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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