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모두 조금씩 아프다 - [드라마] 나의 아저씨

우리가 놓친 것들에 대하여 - 뒤늦게 정주행한 나를 반성하며,
글 입력 2018.06.1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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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하다 했다. 삶이 우울한데, 드라마까지 우울한 걸 볼 필요 있냐고 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1회. 2회 보다가, 보는 것을 그만두고 말았다. 이 드라마를 뒤늦게 끝까지 보고 나서 어쩌면, 나에게 이 드라마가 '우울한' 드라마라고 말했던 사람은 지안(이지은)의 무표정한 장면만 본 것이 아닐까. 혹은 동훈(이선균)의 쓴 술잔만 본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는 따뜻했다. 그리고 위로였다. 온통 회색빛으로 물든 공간의 한 줄기의 하얀 빛이였다.

 이 드라마의 대사들은 우리의 심장에 저마다 다른 의미로 박힌다. 서로 다르게 생긴,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내가 놓쳤던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의 인연에 대하여, 따뜻한 사람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별로인 나는, 어쩌면 별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일 거라고 일깨워준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 남자와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끝도 없이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자. 이 둘이 만나 어떻게 이런 메세지 전달이 가능했을까?



01, 도청, 귀를 통한 뻔하지 않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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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에서는 평범한 부장 ‘아저씨’ 동훈을 숨김없이 보여줄 수 있는 장치를 걸었다. 바로 도청이다. 평범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도청은 지안이 동훈을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하며, 그를 향한 연민, 동정, 그리고 좋아하는 감정까지 생기게 만든다.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동훈은 평범한 아저씨지만, 속은 썩을 대로 썩은 인물이다. 아내가 자신의 후배와 바람이 나고, 그걸 견딘다. 직장에서는 수많은 부조리를 겪고 후배들에게 험담도 견딘다. 소위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하는 인물이다. 아니, 그렇게 버티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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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훈이의 목소리, 발자국 소리, 숨소리, 기차소리. 도청을 통해 그의 삶의 전부를 들여다보는 지안. 처음엔 도준영(동훈의 후배이자 천적)과 손잡고 동훈을 회사에서 잘리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녀는 점점 동훈의 인간다운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다. 그리고 그가 정말 좋은 어른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어른의 의미는 제목인 <나의 아저씨>와 대응을 이룬다. 아저씨라는 단어가 정말 좋지 않게 쓰이는 요즘, 어쩌면 그 단어는 정말 좋은 ‘어른’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지도 않을까.



02. 산다.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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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는 서로 덕분에 처음으로 ‘살아’본다. 숨 쉬는 것이 꼭 사는 것이 아니듯, 그들에게 산다는 의미는 조금은 다른 것이다. 걔가 나를 알아, 내가 걔를 알아. 그들에게 드리워진 회색 그림자는 그들만의 공통점이다. 동훈은 대기업의 부장, 그리고 상무. 가족들에게는 자랑, 동료들에는 일 잘하는 선배. 항상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동훈은 상대적인 ‘누군가’로 존재해왔지만 지안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본 모습을 들켜버린, 인간 박동훈이다. 지안이의 대사 “화이팅”이 동훈의 지친 마음에 큰 위로가 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이다.

 지안이는 어떨까? 강한 아이, 질긴 아이, 무서운 아이. 초반의 지안이는 굉장히 날 선 아이로 등장한다. 하지만 동훈은 그 모습이 지안의 본 모습이 아님을 알아챈다.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 들을 말해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래서 네 번이상 잘해주고, 걱정해준다.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아이를 제대로 바라봐 줄 수 있었던 건 자신도 어쩌면 '경직된 아이'였음은 아닐까. 삼 형제 중 기훈과 상훈에 비해 감정 표출이 적고, 속으로 앓는 사람임을 보면 틀린 추측은 아닐 것 같다.



03.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럼 아무 일도 아냐.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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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책감, 혹은 끔찍함.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괴롭히는 과거의 기억들. 지안이 광일에게 빚이 있고, 맞고 있다는 것을 알자 동훈은 광일을 찾아간다. 그렇게 맞고도, "빚이 얼만지 아직 말 안 했어. 말해"라는 대사에서 지안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광일은 결국 지안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나쁜 년이라고 말해버리고, 동훈은 지안의 몰랐던 과거를 알게 된다.

"나 같아도 그래"

 동훈의 한 마디였다. 그리고, 지안은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을 떠나버렸는데, 동훈은 그렇지 않자 눈물을 흘린다. 그 후, 동훈은 지안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생각하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해. 모든 일이 그래. 옛날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지안도 그 옛날 일에 대해 조금은 편안해진다.

 아무것도 아닌 일. 이 말은 후에 동훈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된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몰아닥칠 때, 조금은 많이 아플 때. 그거 네가 심각하게 생각한 거지, 사실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지나가는 거야. 정말 그 위로가 필요할 때, 서로에게 같은 말로 위로받는 그들을 보면서 내 과거까지 함께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과거로 아직까지 자책하고 있는 나에게.


 
04. 이제 진짜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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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으로 귀결되는 대사들. 행복이라는 감정은 지나쳐버리거나, 애써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갈 뿐이었다. 하지만, 힘든 일을 겪고 나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된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나를 짓누르는 무게만큼, 딱 그만큼 나에게 돌아오는 무언가가 없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동훈이 지안에게 맥줏집에서 하는 “이제 진짜 행복하자”라는 대사도, 그저 뻔하게 와닿지 않았다. 지안이 마지막 즈음에 도청에 걸리고, 동훈을 피하다가 결국 만나는 장면에서도 “아저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대사가 나온다. 서로서로 너무 잘 알기에, 서로의 행복을 바라는 모습은 진심이었다.
 
 할머니의 장례식 날. 할머니가 정말 쓸쓸히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픈 자신에게 지낼 곳을 마련해준 정희 언니, 늘 신경써주는 후계 축구동호회 사람들, 자신을 변호해준 동훈의 아내 윤희, 휑한 장례식장을 따뜻하게 채워준 동훈의 삼형제 기훈, 상훈. 동훈으로 이어진 인연의 끈이 감사해지는 순간에, 할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참,좋은 인연이다. 귀한 인연이고. 가만히 보면, 모든 인연이 다 신기하고 귀해. 갚아야 돼. 행복하게 살아. 그게 갚는거야,”




05,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니?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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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안함. 이 대사가 참 좋았다. 편안하니?라는 말도 아니고 편안함에 '이르렀니?'라니.

 이 드라마를 보고, 우리도 조금은 편안함에 이르르길. 우린 모두 조금은 아파도, 조금은 모가 나도 괜찮은 사람들이니까. 어디선가, 힘들고 지쳐버린 40대 박동훈'들'과 위로받지 못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20대 이지안'들'에게.


[김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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