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책을 좋아하나요?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문학]

그러니까 돈 이야기는 그만두고 오늘 읽은 책 이야기를 하자고.
글 입력 2018.06.16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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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에서는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넘어서, 책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다시 한 번 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소설은 쉽게 읽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내가 책을 정말로 좋아하는 걸까,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 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읽고 나서도 쉽게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다시 생각을 하고 싶어서 여러 번 책을 읽었다.



첫 번째 미궁: ‘책을 가두는 자’

낡은 고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중학생인 ‘나쓰키 린타로’는 할아버지 대신 서점을 운영한다. 어느날, 그의 앞에 비취색 눈의 얼룩고양이가 등장한다. 그 고양이는 나쓰키에게 책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책을 좋아하는 나쓰키는 고양이의 부탁을 듣고 책을 구하려 미궁으로 떠난다.

그 곳에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서재에서 끊임없이 책을 읽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책장에는 책들이 유리문에 굳게 ‘갇혀있었다.’ 그는 그저 책을 많이 읽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보지 않고 책장에 가두었다. 그는 읽은 책이 많을수록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건 좋은 일이야.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되는게 있어. 책에는 커다란 힘이 있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책의 힘이지 네 힘은 아니야.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넓어지는 건 아니란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채워도 네가 네 머리로 생각하고 네 발로 걷지 않으면 모든 건 공허한 가짜에 불과해. 책이 네 인생을 걸어가 주지는 않는단다. 네 발로 걷는 걸 잊어버리면 네 머릿속에 쌓인 지식은 낡은 지식으로 가득 찬 백과사전이나 마찬가지야."

 
결국 남자는 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책을 과시하기 위해서 많이 읽고, 전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책을 좋아한다는 기준이 그저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책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또한 그랬었다. 나도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무작정 책만 읽어댔다.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는 말만 생각했던 것이다. 책의 내용보다는 책 권수에 집착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에 생각도 하지 않고, 책을 읽고 바로 다음 책을 읽고, 그러다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남는 건 몇 권 읽었는지 적어놓은 메모뿐이었다. 그때 깨닫게 되었다. 주마간산(走馬看山), 겉핥기식으로 책을 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두 번째 미궁 : ‘책을 자르는 자’

두 번째 미궁에서는 책을 자르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1분안에 볼수 있도록 책을 자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어려운 부분, 쓸모없는 부분, 줄거리와 관련 없는 부분을 모조리 잘랐다. 그러고는 읽기의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속독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않는 현대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그는 줄거리와 속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고 꼭 기분이 좋아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아. 때로는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면서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거나 머리를 껴안으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도 하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시야가 탁 펴지는 거란다. 기나긴 등산길을 다 올라가면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이야."


린타로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하셨던 말을 기억했다. 그러고는 주변의 라디오 카세트에서 나오는 베토벤 9악장을 빨리 감기로 돌려버렸고, 음악은 엉망이 되었다. 그는 절망했다. 9악장에는 9악장만의 속도가 있고, 그 속도대로 감상해야 그 곡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책을 재미있어서 읽는다고는 하지만, 사실 나도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으면 지루하기도 한다. 그래도 끝까지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결국은 맨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덮게 된다. 그 과정이 지루할지라도 책을 읽고 나면 괜히 뿌듯하기도 하고, 남는 게 한 가지는 있었다. 이 책에 나온 책 읽는 것과 등산하는 것이 닮았다는 것에 공감한다.
 
 

세 번째 미궁: ‘팔아치우는 자’

세 번째 미궁에서는 세계제일출판사의 사장이 등장했다. 그곳에서는 매일 산더미처럼 책을 만들고 그 책을 팔아치우고 있었다. 이익을 가지고 또 다른 책을 만들어 이익을 얻는 전형적인 출판사의 시스템이다. 그는 ‘팔릴’ 책들만 만든다는 원칙을 가지고 책을 만든다. 사람들이 원하는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책을 만드는, 그저 책을 소모품 취급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출판사는 뭔가를 전하기 위해 책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세상이 원하는 책’을 만들고 있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후세에 전해야 할 철학, 잔혹한 진실이나 난해한 진리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세상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아요. 출판사에 필요한 건 ‘세상에 무엇을 전하느냐’가 아닙니다.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죠."


사실, 이 부분은 출판사 사장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읽었다. ‘출판사가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기업인데, ‘팔릴’ 상품(이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을 파는 게 잘못된 게 있나?‘ 라는 생각을 했다. 린타로의 말이 다소 이상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출판사가 계속 유지돼야 계속해서 책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팔릴 책들만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후세에 전해야 할 철학, 잔혹한 진실이나 난해한 진리 같은‘ 책들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자기개발서나, 주식투자, 부동산 등 사람들이 원하는 책들만 만드니 사람들은 책에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사람들은 책을 정보만 묶인 묶음 이라고 생각하게 되겠지. 또한 이런 문제는 출판사에만 있지 않고 서점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서점에 가보면 잘 보이는 앞쪽에는 잘 팔리는 책들, 유명한 책들, 베스트셀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기 없고 재미없는 책들은 서점 뒤편으로 밀려나고, 어떤 책들은 서점에서 사라진다. 나쓰키 서점은 지금 이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고서들을 진열해 놓은 서점. 그 서점을 운영하면서 할아버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할아버지께서 종종 말씀하셨어요. 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100만 엔이 있으면 200만 엔을 원하게 되고, 1억이 있으면 2억을 원하게 된다고. 그러니까 돈 이야기는 그만두고 오늘 읽은 책 이야기를 하자고. 저도 서점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돈을 버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네 번째 미궁 : 책과의 만남

네 번째 미궁에서는 2000년 전의 책과 만난다. 이미 책의 마음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책은 린타로에게 앞서 만난 세 명의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첫 번째 미궁에서 만난 남자는 예전처럼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습관을 그만두고 책을 여러 번 읽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읽는 책은 줄었고, 사람들의 관심을 잃게 되었다. 두 번째 미궁에서 만난 남자는 한 권을 읽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고, 그의 연구들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다. 그는 이제 천재에서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미궁에서 만난 출판사 사장은 책이 팔리지 않아도 즉시 절판하지 않고, 이미 사라졌던 귀한 책은 전부 복간시켰다. 그래서 경영 상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고, 퇴진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끔찍하게 변했다. 책을 좋아하게 된다면 이렇게 변한다는 것인가? 책은 린타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는 책에 마음이 있는 게 당연한 일이었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 그런 사실을 알면서 서로 마음을 나누었어. 그 무렵에는 책을 가질 수 있었던 사람이 많이 않았지만, 한 번 만난 사람들은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나를 지탱해주고, 나도 그들을 지탱해주었지. 너무나도 그리운 시대. 그와 동시에 너무도 빛나는 시대였어."


책을 좋아하면서도 한 번도 책의 입장에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했고, 책의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않았다. 이해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책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네 번째 미궁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번 미궁에서도 책을 잘못 대하는 사람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책이 나와서 인간들에게 냉소적으로 대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나는 정말로 책을 좋아했던 걸까?’ 라고. 책은 계속해서 인간들에게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믿는 건 네게 곤란한 일일지도 몰라. 지금은 마음을 가진 책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 뿐만 아니라 책이 마음을 가졌다는 걸 아는 사람도 없어져버렸지. 책이라고 하면 단지 활자를 늘어놓은 종이다발을 가리키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됐어. 이건 세상에서 읽고 버리는 책들에게만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야.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전 세계 사람들이 읽은 나조차도 정말로 진지하게 마주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졌거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찬사를 받으면서, 실제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있어. 갇히고, 잘리고, 마구 팔리고 있지. 네가 봤던 일들이 내게도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린타로는 당황한다. 그리고 아무 말도 못한다. 책을 진정 좋아하는 린타로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린타로가 책을 해방한 게 모두 허사가 돼버린 것 같은 절망감과 자신과 만난 자들은 결국 몰락했다는 죄책감. 린타로는 책에게 소리친다.
 

"파괴하려고 해도 간단히 파괴되지 않아요.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책과 이어져 있어요.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당신이 지금 여기 있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증거가 아닐까요?"


그런 린타로에게 세 명의 남자들이 다가와 용기를 준다.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기도, 책을 소중히 대하게 되는 오히려 그들은 전보다는 행복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은 몰락했지만, 그들 내면은 성장하게 된 것이다. 책은 결국 린타로의 말에 마음이 녹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기대하게 된다. 인간과 책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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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으려다가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처음 책을 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출판인도 읽으면 다시 한 번 책을 좋아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신비로운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 여운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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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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