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당신은 이미 소중한 사람,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열려 있었네요. 닫혀 있을 줄 알았는데.
글 입력 2018.06.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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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당신은 이미 소중한 사람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지난 3년간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는 그들의 음악, 그리고 이야기. 도대체 어떤 뮤지컬이기에.



낭만파의 마지막 기수


 이 이야기는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뮤지컬 속 라흐마니노프와는 달리 실제 라흐마니노프는 키가 2m 달하는 거구였다고 한다. 키와 비례해, 그의 손은 매우 컸는데 무려 13도의 음정까지도 연주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그가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마지막 거장이라고 불리는 만큼, 그의 커다란 손에서는 수없이 아름다운 음악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실패는 있었다. 바로 교향곡 1번의 실패다. 그는 이 실패로 인하여 약 3년간 창작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그는 공백기를 ‘암시요법’으로 이겨내었다고 하는데, <라흐마니노프>는 바로 이때의 라흐마니노프와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이다.



음악가와 피아노


 실패 후, 라흐마니노프는 신경 쇠약을 앓는다. 동시에 본인의 음악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창작 압박에 몸부림친다. 그는 매일 창작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아무 것도 완성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버린다. 어느 날, 최면 요법을 사용한다는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이 라흐마니노프의 형에게 치료를 부탁받았다며 찾아온다.


02 (안재영, 김경수).jpg
 

“저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악수 안 해요.”


 말을 걸어오는 달 박사에게 라흐마니노프는 제발 좀 조용히 하고 나가라는 말만 남긴다. 그의 말은 비평가들과 관객들의 혹평에 큰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단박에 알려준다. 그가 닫은 것은 피아노 뚜껑만이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마음. 꼭 닫힌 마음에, 라흐마니노프는 달 박사의 악수마저도 거절한다. 악수를 하면 관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는 악수를 하지 않는다고.

 그는 아마 ‘피아노의 아픔’을 함께 겪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라흐마니노프가 말하길, 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피아노의 아픔’이 필요하다고 한다. 피아노는 누르는 건반에 맞춰 소리를 토해내는 단순한 악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소리 하나를 내기 위해 부딪히고 마찰하는 수많은 아픔이 존재한다. 공백기의 라흐마니노프는 아픔을 견디고 소리를 내기 위해 준비하는, 피아노 같았다. 아주 아름답고 서정적인, 위로를 주는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피아노.

 

정신의학자와 비올라


 ‘나가’라는 말로 시작한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의 치료는 예상대로 순탄치 못했다. 그러나 달 박사는 끈질긴 시도 끝에 라흐마니노프 측에서 먼저 ‘차라리 빨리 치료를 받고 당신을 내보내겠다’는 말을 나오게 한다. 그 시도 안에는 달박사의 비올라 연주도 포함되는데, 고작 석 달 배운 솜씨의 연주는 엉망진창이라 음악가인 라흐마니노프를 설득하기에 아주 적절했다. 어느 날,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비올라에 대해 설명하게 되는데, 그는 비올라를 ‘슬픈 표정의 철학가’라고 비유한다. 주도적으로 자신의 소리를 내지 않고 뒤에서 받쳐주는 게 꼭 자신의 직업과도 닮았다고도 덧붙인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형에게 부탁 받아서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비올라를 석 달 배웠다는 이야기 외에는 전혀 털어놓지 않고 있었다. 마치 본인은 라흐마니노프를 소리 내게 하기 위해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처럼. 하지만 라흐마니노프에게 필요했던 것은 비올라가 아닌 달 박사, 그 마음의 소리였던 모양이다.



마음의 소리


똑똑똑 똑 똑똑똑똑똑똑똑똑-
“열려 있었네요. 닫혀 있을 줄 알았는데.”
 똑똑똑
“여긴 닫혀 있네요.”
“오늘은 열려 있네요.”
“다시 닫혔네요.”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에게 마치 인사처럼 던지는 이 말들은, 라흐마니노프 방문도, 피아노 뚜껑도 아닌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을 겨냥하고 있다. 라흐마니노프가 사람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창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열려’ 있는지. 결국 달 박사는 암시 요법을 통해 라흐마니노프에게 창작 의욕을 불어넣지만, 왜인지 라흐마니노프의 증상은 더욱 심각해진다. 달 박사가 불어 넣은 말들, ‘나는 새로운 곡을 쓸 것이고 새로운 곡을 쓰게 되면 관객들이 나를 사랑해 줄 것입니다.’이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는 ‘왜’의 문제였다. 라흐마니노프는 왜 새로운 곡을 쓰는지, 또 달 박사는 왜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하려 하는지. 두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을 서로에게 숨기며 치료에 임해왔기 때문이다. 정작 달 박사부터가 마음을 꽁꽁 닫아둔 채, 라흐마니노프에게 펼쳐 놓지 못했으니. 역효과가 날 수 밖에.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왜 새로운 것을 쓰냐고, 자신에게 말해달라던 달 박사는, 왜 본인을 치료하냐는 질문에 도리어 뒷걸음질 친다. 그 것도 잠시, 달 박사는 드디어 본인의 마음을 연다. 라흐마니노프를 위해 숨죽이고 있는 비올라가 아닌, ‘니콜라이 달’로 거듭난다. 당신을 치료해서 유명해지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본인이 기억하던 가장 힘든 시기와 그 때 본인을 치료해준 것이 무엇이었는지까지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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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달 박사와 라흐마니노프는 놀랍게도 동등해진다. 억지로 치료하고 치료받는 사이가 아닌,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사이가 된다. 이것은 분명 ‘마음의 소리’ 덕분이었을 것이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던, 진심 어린 위로의 소리. 라흐마니노프는 ‘마음에도 소리가 있는지 몰랐다’고 했지만, 그는 분명 마음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 깊숙이 숨겨놨던 아픔까지 꺼내 보여줄 수 있었다.



당신은 이미 소중한 사람


 서로에게 ‘진정한 관계’가 되어주고 나서야 두 사람은 비로소 성장한다. 달 박사의 암시 문구는 ‘나는 새로운 곡을 쓸 것이고 새로운 곡을 쓰게 되면 관객들이 나를 사랑해 줄 것입니다.’가 아닌, 이미 라흐마니노프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 받고 있다는 다음의 문구로 바뀐다.


당신은 이미 사랑 받는 음악가입니다.
당신이 새로운 곡을 쓰건 쓰지 않건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사랑 받는 존재라는 의미. 그 말 한 마디만으로도 삶의 의지는 굳건해진다. 더 단단해진다. 행복해진다. 완벽하지 않아도, 어디에 닿지 않아도, 한계까지 달리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결국 라흐마니노프는 새로운 곡을 쓰게 되고, 그 곡은 크게 성공한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본인을 치료해준 달 박사에게 헌정한다. 무대 위, 그리고 객석 옆.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는 손을 흔들며 웃어 보인다. 그리고 결국, 라흐마니노프가 달 박사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이들의 치료는 끝이 난다. 관계는 그렇게 매듭인 듯 시작인 듯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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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리고 클래식, 조합은 굉장했다.


 스토리 자체도 관객을 울고 울리기에 충분했지만, 무대 위 한 명의 피아니스트와 현악 연주팀의 합주는 듣는 이들에게 더욱 깊이 있는 공연을 선사했다. 커튼콜이 끝나고,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가 각자 방에 앉아있는 채로 시작되는 연주는 큰 여운을 남겼다. 마치 떠나기 전, 마음에 도장을 쿵하고 찍는 느낌이었다고 하면 적절하려나. 연주가 있다는 얘기에 어쩌면 조금 루즈할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이 한심할 정도로, 연주는 공연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기에 아주 좋았다. 뮤지컬과 클래식, 적절하고도 굉장한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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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피아니스트 이범재 (우) 피아니스트 박지훈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상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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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공연장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

공연기간
2018.6.9(토)~7.8(일)

공연시간
90분

관람등급
만 7세이상

제작
HJ컬쳐

문의
02)588-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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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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