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었군요!

사전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었다.
글 입력 2018.06.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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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었군요!




사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가요?


 사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 것 같아? 사전 편찬자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여러 대답이 나왔다. ‘그들은 무슨 기준으로 사전의 정의를 완성하는지 궁금하다’, ‘거의 창조 수준이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본 적 없다’. 등등. 한 친구는 편찬자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다며, ‘사전은 시간이 지나며 차곡차곡 쌓여서 스스로 만들어졌을 것 같다’고도 했다. 과연, 사전 편찬자를 본 적이 없으니 그렇게 상상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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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그 어느 책과 스토리에서도 사전 편찬자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책에서 저자가 밝힌 것처럼) 우리 세대에는 책 사전보다는 전자사전이 우세했으니 더 그러했다.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숨겨왔던 사전 편찬자의 이야기. 무려 20년째 언어와 연애중이라는 코리 스탬퍼가 그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사전은 이렇게 만들어지는군요!



우리는 좋은 것만 사전에 넣지 않는다. 나쁘고 추한 것도 넣는다. 우리는 단순히 관찰자들이고 우리 목표는 가급적 정확하게 언어의 최대한 많은 부분을 기술하는 것이다. -p.59

내가 『메리엄 웹스터 대학 사전』 11판을 위해 ‘take’를 손보는 데 한 달 가량이 걸렸다고 말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학자 한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피터 길리버가 입을 열었다. “저는 ‘run’을 수정했지요.” 그는 조용히 말하고, 미소 지었다. “아홉 달이 걸렸습니다.” 테이블 곳곳에서 “세상에!”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p.220


 만반의 준비를 한 듯, 저자는 사전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기술해냈다. 그가 언어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던 ‘중세 아이슬란드 계도 소설’부터 문법, 단어, 정의, 예문, 어원, 발음 등 사전의 모든 것까지.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 순간 짠! 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던 사전은, 약 3-5년의 과정을 들여 사람의 뇌와 손에서 탄생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편찬자들의 ‘실체’와 ‘특징’이었다. 이따금 글에서는 사전 편집자들의 회사 생활을 그린다. 그들은 사교적이지 않고,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 일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직접 찾아와서 얘기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주로 카드에 용무를 쓰고 전달하는 시스템을 사용한다고. 가장 자주 나오는 카드는 ‘핑크’였는데, 잡다한 예문과 의문, 질문, 수다 등을 적는 카드다. 정말 독특하고 신비롭다. 그들의 얇은 카드 하나하나로부터 시작되어 결국 이 두꺼운 사전이 완성된다니. 사전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었다.



언어란, 알 수 없어요.



우리는 영어를 방어해야 할 요새로 생각하지만 더 나은 유추는 영어를 아이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양육하지만, 종합적 운동 기능이 발달하자마자 우리가 제발 가지 않았으면 했던 바로 그 곳으로 향하는 아이.-p.81

단어는 개인적일뿐더러, 형체가 있다. 사전 편찬자들은 비방하는 단어를 정의하다가 비방에 무뎌질지언정 세상을 살아온 경험 덕택에 단어에 실체가 있다는 걸 안다. 우리는 손으로 단어를 쓰고, 입으로 단어를 말하고, 단어들이 우리의 몸에 남긴 상처를 지니고 산다.-p.250

사전 회사에 이메일 공세를 벌이는 사람들은 보통 사전 정의의 변화가 실제로 이뤄내는 바에 대하여 크게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사전의 정의를 바꾸는 것이 언어를 바꾸는 것이고, 언어를 바꾸는 것이 언어를 둘러싼 문화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믿음이 가장 통렬하게 느껴지는 건 사전에서 다양한 종류의 비속어를 없애달라는 요청이다.-p.355


 언어란 무엇이고, 단어란 무엇일까. 아주 가까이에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더구나 이 언어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바뀌는 것이며, 내가 그 실체를 잡고 싶다고 해서 혹은 그 흐름을 없애고 싶다 해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흐르는 강물을 그저 바라봐야하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저 깊이도 저 흐름의 속도도 알 수 없는 채로는 뛰어들기가 영 무서운. 그렇다고 해서 수심이나 흐름을 잴 수 있냐고 하면, 그 것도 아닌. 과거의 나는 어학 수업을 들으며, 언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엉망진창인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 것은 굉장한 깨달음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도 수놓아진 언어의 심지가 다르니. 이보다 지저분한 게 또 있을까.

 저자는 나와 달리 언어에 보다 해박하지만, 이런 심정을 어쩌면 누구보다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인 듯하다. 그의 글에는 언어에 대한 무수한 이해와, 그 이해에 대한 싸움이 담겨 있다. 누군가가 규제한다고 해서 규제될 리 없는 언어인데, 사전 편집자는 결국 이를 정리해내야 하니.



근데 좀 괴로웠어요.


 사전에 대해서도 알았고,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일상과 수고에 대해서도 알았다. 아주 좁은 영역의 이해겠지만 언어라는 놈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더 알게 된 듯하다. 그렇지만 솔직히 나는 몇 번씩 이 책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의 무지를 알게 될 때마다 부끄러워서 그런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해의 어려움에 있었다. 분명 재밌고 유쾌하게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을 결코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이 날 갉아먹었다. 비유하자면, 엄청나게 유능한 교수님의 강의에서 혼자 알아듣지 못했지만 억지로 따라 웃는 느낌. 그걸 버티기가 힘들어 뛰쳐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유익하고 즐거운 강의라고 해도 학습자가 흥미가 없으니 괴로울 수밖에.

 분명히 말하자면, 이건 지은이의 잘못도 옮긴이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난 그런 독자일 뿐. “내가 원한 건 이렇게 깊고 자세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에요”하고 되돌아가는 독자. 지은이가 유달리 꾸짖었던 “언어에 관심이 있으나 사실 잘 모르는” 사람 중의 한 명인 나는, 더구나 ‘언어’라기보다는 ‘영어’에 대해 열심히 토해내는 지은이의 농담을 이해하기가 영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을 대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몰랐던 이야기,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무지했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려운 만큼 새롭고 신선하다. 물론 저자의 이야기 모두에 박수를 치고 놀랄 만큼 웃기고, 공감가고… 그렇진 않았다고 이미 위에서 밝혔다. 다만 왜 많은 언론들이 그의 글에 찬사를 보냈는지 알 수 있을 만큼의 신선함이었다. 내가 영어 원어민이었다면(사전 편집자를 뽑는 기준처럼), 혹은 의대를 뛰쳐나와 어학을 배울 만큼 언어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었다면 더 재밌었을 테지만, 지금 이대로도 훌륭히 새로웠던 이야기였다.



저역자 소개

지은이 코리 스탬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 메리엄 웹스터에서 20여 년 넘게 일해온 사전의 작가이자 편집자다. 문자 중독 사춘기를 보내고 스미스 칼리지 의대에 입학했으나 자신의 길은 인문학에 있음을 깨닫고 중세 아이슬란드 계도 소설 강의를 들으며 라틴어, 그리스어, 고대 노르웨이어, 중세 영어 등을 공부했다. 메리엄 웹스터 유튜브 채널 [Ask the Editor]에서 논쟁적 단어들과 그 용법을 정확히 풀어내며 인기를 모았고, 「워싱턴 포스트」, 「가디언」, 「뉴욕 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등에 언어와 사전의 역할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한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전적으로 언어에 헌신하면서 서서히 눈이 멀어가는 단어광이자 언어 애호가이며 어휘 수집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정의 내려야 한다는 직업적 강박에 사로잡힌 채, 오늘도 좀 더 적확한 표현을 찾아 머릿속을 헤집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운영하는 블로그 주소는korystamper.wordpress.com/, 번역하면 ‘무해한 노역’.

옮긴이 박다솜

사전 속 발음기호에 매료되어 수집하듯 여러 외국어를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진학해서 문장을 도해하고 단어의 품사를 정확히 판정하는 기술을 배웠다. 번역을 시작한 이래 매일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스릴을 즐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관찰의 인문학』, 『죽은 숙녀들의 사회』, 『여자다운 게 어딨어』, 『원더우먼 허스토리』, 『독립 수업』,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암호클럽』 시리즈 등이 있다.



차례

서문
1장. Hranfkell – 언어와 사랑에 빠지는 것에 관하여
2장. But – 문법에 관하여
3장. It's – ‘문법’에 관하여
4장. Irregardless – 틀린 단어에 관하여
5장. Corpus – 뼈대를 수집하는 일에 관하여
6장. Surfboard – 정의에 관하여
7장. Pragmatic – 예문에 관하여
8장. Take – 작은 단어에 관하여
9장. Bitch – 나쁜 단어에 관하여
10장. Posh – 어원과 언어적 기원주의에 관하여
11장. American Dream – 연도에 관하여
12장. Nuclear – 발음에 관하여
13장. Nude – 독자 편지에 관하여
14장. Marriage – 권위와 사전에 관하여
Epilogue – 끝내주는 일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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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 WORD BY WORD -


원제 : WORD BY WORD

지은이 : 코리 스탬퍼

옮긴이 : 박다솜

펴낸곳 : 도서출판 윌북

분야
에세이, 인문학, 책읽기/글쓰기

규격
142 * 211 * 21 mm

쪽 수 : 388쪽

발행일
2018년 5월 20일

정가 : 16,500원

ISBN
979-11-5581-153-5

문의
도서출판 윌북
031-955-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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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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