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사회의 허무주의에 대하여 [도서]

책 < 모든 것은 빛난다 >
글 입력 2018.06.1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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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내가 다니는 학교의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책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것이 교수님 수업의 과제 중 하나였다. 서평은 아주 길게 썼었지만, 후에 다른 수업에서 악용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 여기에서는 그 서평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지 않겠다. 그러나 굳이 오피니언에 2013년에 번역된 이 책을 들고 온 이유는 이 책이 요즘의 문화적 시각과는 남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우리가 꼭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만 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교양 필독서로 지목된 바 있는 책이지만, 사실 직접 읽어본 결과 비전공자가 읽기에 조금 벅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이 책이 우리에게 어떤 관점을 시사해줄 수 있는지를 위주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예술 작품이 중요한 이유


 예술 작품이 대단한 이유는 그 작품이 쓰일 당시의 시대상 내지는 문화상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개인에 의해 창작된 작품임에도 그 때의 그 곳의 사람들이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있었고, 행위에 대해 어떤 판단 기준들을 갖고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의하면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더 나아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있어 시선을 둘 곳과 행동의 방향을 제시한다. 예술 작품은 그 자체로 '재현'의 기능이 아닌, '작동'하는 것으로써 시대의 진리를 구현하는 패러다임의 역할을 한다.

 이 책은 각 시대의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진리와 가치기준도 변하기에 어떤 패러다임이 더 세련되고 윤리적인지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자들은 각 시대를 빛내주었던 작품들의 세계에서 본받을만한 정신을 추려내 우리 세대의 개개인에게 어떤 긍정적인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예술작품과 실제 사례들을 비교분석하는 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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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서사부터, 단테의 신곡,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의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 모비딕 등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두루 다뤄진다. 이들의 삶과 작품 속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번역본인 이 책은 시대별로 사례와 문학작품을 나열한 원서와는 다르게 1장을 현대 영웅의 일화로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지하철 노선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해낸 실존인물인 오트리이다. 그는 자신이 그저 '너무나도 당연한 무언가에 이끌리듯' 사람을 구해냈다고 한다. 저자들은 이 사례를 시작으로 오늘날과 같이 개인주의와 허무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영웅적인 행위가 가능한지를 찾아내고자 한다. 바로 2장부터 6장까지가 과거의 문학작품과 실제 사례를 통해 각 시대의 정신과 문화가 소개되는 과정이며, 마지막 7장은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저자들이 내린 결론이다. 그 과정에서 책은 줄곧 우리 시대의 허무주의를 극복할 방안을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한다.



현대 사회의 능동적 허무주의


 이 책의 관점이 요즘 시대의 흐름과 뭔가 다르다고 여긴 지점은 많은 사람들이 지향하는 실존주의적 견해로부터 비롯된 능동적 허무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방안으로 인간의 수동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말이 너무 어렵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요즘 우리들은 대체적으로 무의미함이나 허무감 속에서 살고 있다. 쓸데없는 걱정에 괴로워하고, 이전보다 삶의 질이 나아졌음에도 끊임없이 미래를 걱정하며, 큰 도전에 망설인다. 우린 매사에 의미 없는 결정을 내리고, 하루에도 수차례 "죽고 싶다", "자살 각이다"라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이런 현상들은 근대 이전처럼 종교나 국가, 가정과 같은 기성의 가치가 더이상 우리의 삶을 뒷받침해주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삶을 의탁할 어떤 목적의식을 추구하는데, 이는 '생존해서 대를 이어 우리 가문을 지키겠다'거나, '죄를 짓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품으로 가겠다'거나 '우리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겠다' 등의 신념과 같은 것을 말한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안정되고 개인의 자유와 안전이 어느정도 보장되는 현대 시대에는 더 이상 위와 같은 것들이 개인의 중요한 목적의식으로 자리매김 되기 어렵고, 삶의 목표를 의탁할 곳 없는 개인은 무기력감에 빠진다. 꿈과 행복, 삶의 의미 같은 가치들을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그 무거운 책임감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 무엇도 제시된 것이 없기에 어디에서도 확신을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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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사실 '능동적 허무주의'라는 것은 니체의 개념이고, 니체 자신은 이 허무주의가 인간의 정신이 깨어나는 과도기적인 현상으로써 인간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긍정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책의 저자들은 오늘날 파편화 되고 무기력해진 현대사회가 이 능동적 허무주의의 결과라고 본다. 이를 보면 인간은 어느 정도의 수동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능동성, 말은 좋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더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돈이니 명예이니 하는 가치들을 개인이 능동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실은 사회가 그 가치를 결정하고 같은 가치 기준을 개인에게 요구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아들러 심리학도 인간의 감정은 타자가 아닌 스스로가 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많은 강연에서도 '나의 삶의 주인은 나'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유행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일종의 실존주의적 관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 피로사회 >의 저자 한병철도 지적했듯 우리는 오히려 무한한 긍정성의 사회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피로해졌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무엇도 제시된 것이 없는 망망대해와도 같아진 이 세상에서 인간은 스스로 행복과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을 등에 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우리가 많은 대중매체에서 부여받는 동기와는 상반되는 관점을 제시한다.



공부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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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들은 우리가 결국 아무것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텅 빈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써만 우리를 이해하기에는 인간은 너무도 나약하다. 우리는 무언가에 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이다. 그것이 종교가 됐든, 사랑이 됐든, 하다 못해 넋을 빼앗아버리는 게임이나 유튜브가 됐든, 어쨌든 인간은 무엇인가에 기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분위기에, 사람들에, 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이미지'에 취해있던 마법으로부터 잠시 풀려있는 시간이 실은 가장 자신과 직면하기 좋은 시간이련만 우리는 그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핸드폰으로, 컴퓨터로, 인터넷 세상 속 어딘가로 도피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성장하여 의미있는 삶을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관조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의미있게 취하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적어도 그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견해이다. 인간으로서 그것은 적어도 1차원적인 욕구가 아닌, 내 삶을 돌이켰을 때 그것에 헌신했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것이어야 하겠다. 공부라는 것은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 역사순으로 제시된 사례들과 문학 작품들의 일화들 역시 우리가 어떤 가치에 기대 살아야 할지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선례이자 샘플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공부는, 그리고 자신이 취해있을 것, 헌신해야 할 것에 대한 선택은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이 선택을 회피하게 된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명확한 기준 없이 평생 타인에게 자신의 말과 행동을 확인 받고자 하며 살게 될 것이고, 어느 선동에라도 휘둘리게 될 것이다. 능동성의 짐에 억눌려 더이상 도피하지 않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관점이 새롭다. 책에서 직접적으로 '공부가 필요하다'라고 언급한 건 아니지만, 책에서 '직접 부딪혀보는' 인류의 경험을 강조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많은 경험을 해봐야하고, 많은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이 시대에 인문학 열풍이 부는 이유도 기댈 의미를 찾아야 함을 직감한 사람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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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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