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65일 24시간 그녀의 단어인생_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글 입력 2018.06.1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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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작가가 되고 나니 직업병(?)이 생겼다. 바로 어떤 상황이든, 사물이든, 혹은 사람이든 글 주제를 고민하고, 남의 글 혹은 문구를 보며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내가 이러한데 편집자는 어떠할까? 더더욱 언어의 정의를 내리는 사전 편집자라면.


여기, 사전 편집자가 있다. ‘읽기’가 생활이고 ‘쓰기’가 직업인 그녀의 삶 곁에는 언어가 있었다. 백과사전이 사랑 받던 시절, 사전의 편집은 매일매일의 바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발달로 인해 사전의 역할이 뒤바뀌며 사전 편집자였던 그녀의 삶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 깊은 사전 제작사 메리엄 웹스터에서 사전 편집자인 코리 스탬퍼는 20년째 언어와 연애 중이다. 매일 언어를 달래고 만들며 살아가는 언어 노동자로 살았던 그녀의 인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프리뷰에서 남겼던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는 365일 24시간 언어와 고군분투하는, 애정하고 애증하는 언어로 세상을 살던 20년지기 베테랑 편집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언어와 사랑에 빠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사실 내 상상은 이 책을 읽기 전후로 크게 갈린다.

책을 읽기 전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장면은 바로 ‘모니터’ 앞에서 우아하게 ‘타이핑’을 하며 일하는 ‘커리우어먼’의 이미지였다. 원제 또한 ‘Word By Word’ 였으므로 ‘word’의 이미지는 공중에 흩어져 날아다니는 존재를 찾아 ‘너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줄게’ 였다고 할까? 하지만, 공중부양한 무형의 존재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건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님을 책을 읽고 나서 깨달았다.

총 14장으로 구성된 <매일, 단어를 읽고 있습니다>는 언어학이나 관련 분야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가 많다. 실제 우리는 인터넷에서 단어를 검색하면 끝나는 간편한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그 ‘사전’에 ‘의미’를 ‘정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나 했을까? 가급적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말이다.

나아가 시시각각 변하는 언어의 형태, 사라진 언어와 새로 탄생하는 언어, 그 사이에서 단어를 정의하는 일. 사전 편집자는 언어의 역사와 문화, 현대의 흐름과 트렌드 이 모든 것을 놓쳐서는 안 될 책상에 앉아 골똘히 머리와 눈을 굴리며 오늘도 언어와 ‘연애’ (엄밀히 말하면 헌팅게임 혹은 보물지도 찾기 단어가 더 어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중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소개해 본다.


나는 한참 뒤에야-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뒤에야-방언이 언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방언은 많은 어휘를 탄생시키고, 방언의 증식은 언어 성장의 증거다. 방언 없이는 언어도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방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는 방언을 존중하게 되었다. -98페이지


최근 제주어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에서 나도 방언의 중요성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모든 기준의 규범이 되어 주는 표준어처럼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방언’이 유지될 수 있는 맥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사라지는 언어를 살리는 일. 심폐소생술로 살릴 수 없는 언어의 들숨과 날숨을 계속해서 지켜주었으면 한다.


어떤 단어가 대부분의 일반 사전에 등재되려면 세 가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로 인쇄 매체에서 널리 사용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전 편찬자들이 그렇게 열심히 글을 읽는 이유다. (중략)
둘째, 유통기한이 길어야 한다. 단 유통기한의 길이는 편집되고 있는 사전, 단어와 관련해 찾은 증거들, 현대의 의사소통이 언어에 미친 영향에 좌우된다. (중략)
단어가 널리 사용되며 유통기한도 너무 짧지 않다고 판단되고 나면, 세 번째 조건은 이렇다. 단어가 ‘의미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단어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50~152페이지


두꺼운 사전보다는 인터넷 사전이 사랑 받는 시대에서 단어가 등재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저자 코리 스탬퍼 Kory Stamper는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단어만이 우리가 검색하는 그 ‘무엇’이 된다고 한다. 까다로운 서류 심사를 통과한 단어만이 그 ‘무엇’이 된다 하니, 우리는 최종합격한 단어를 만나는 우아한 독자들인 셈이다.


좋은 사전 편찬자라면 눈에 보이는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래도 따져보아야 한다. 여성이 대통령으로 출마하는 것이 상상도 못할 일인가? 지금고 대통령이 모두 남자였기 때문에 여기서 중성의 ‘he’를 사용해도 된다는 내 추정은 정의에 사견을 넣는 대죄에 해당했다. -162페이지


앞 페이지에는 저자가 정의 속 인물들에게 불필요하게 성별을 부여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당시 상황에서는 대통령은 모두 남성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본인의 실수를 크게 인정하고 책에 소개하였다. 더불어 사전 편찬자가 하지 말아야 할 don’t에 대해서. 어쩌면 부끄러웠을수도 일이었지만, 그녀는 직접 겪은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본인의 실수처럼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조곤조곤 알려준다.


사전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단어가 뜻하는 바와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릴과 로맨스를 기대하며 사전을 펼치지 않는다. -189페이지

사람들이 어원을 사용하는 이유는 어원이 한 단더가 언어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가 때로는 단어가 만들어지던 시기의 문화나 시대에 대해 무언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어원은 문자 그대로 단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256페이지

사람들은 단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단어를 쓰는 책임을 지기 위해. 단어의 비밀을 알기 위해. 우리는 특정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 처음 썼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언어는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옮겨지므로. -280페이지


책의 끝자락에는 ‘marriage’에 대한 정의를 사전에 수록한 후 일어난 에피소드 (독자들의 이메일 공세와 언론의 비판 등)이 나오는데 사전 편찬자들의 영향이 얼마나 파급력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문단이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저자의 문장을 이 책을 집약하는 문장으로 소개해 본다.


“이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이게 제가 세상에 나름대로 사소하게 기여하는 방법이지요.” 영어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우리 노역자들은 계속 영어의 꽁무니를 따라다닐 것이다. 험한 지형을 만나면 조금 뒤쳐질지 몰라도, 우리는 언제나 존경을 담아 눈을 크게 뜬 채, 고요히 추적을 계속할 것이다. - 383페이지, 끝내주는 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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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말.

1. 이 책의 부록 ‘감사의 말’은 알파벳 순으로 감사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A Agent에서 W Wonder까지. 사전 편찬자다운 발상에 책을 덮을 때까지 미소를 지었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그를 도운 집현전 학자들을 떠올렸다. 나의 모국어. 대한민국 언어 한글을 만들어 준 위대한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해례본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바로 ‘어제 서문’으로 우리가 학창 시절 외웠던,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배이셔도”라는 구절이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아름다운 우리글을 만나다 중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문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자기 뜻을 펼 수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에서 세종의 이러한 사고 과정을 엿볼 수 있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말의 수수께끼 중

우리의 ‘단어’를 더 알고 싶다면,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 한글박물관' 여행을 추천한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언어 한글을 제대로 사용하는 일부터가 애국심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오윤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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