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Have to 생각, Want to 생각 : 도서 < 생각하기의 기술 >

글 입력 2018.06.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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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의 기술 표지1.jpeg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생각하고 싶지 않으면 어쩌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난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툴툴거리는 중이다. 누구도 나를 막을 순 없다. 머릿속에 써야할 것, 생각해봐야 할 것, 지금 해야 할 것, 배워야 할 것들이 가득 차 과부하 상태가 온다. 지금이 딱 그 짝이다. 해야 할 건 많은데 하고 싶지는 않고 생각해야 할 건 구만리인데 나는 아직 한 보도 떼지 못했다. 생각해야 하는데 정작 드는 생각은 생각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걸 생각이라고 해야할 지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공표한다면, 그저 무성영화 속 찰리 채플린으로 남겠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나사를 조이고 컨베이어 벨트의 흐름을 따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그런 삶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예술 언저리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감내할 태도는 분명 아니다. 그럼 빠릿빠릿하게 머리를 굴리며 많은 걸 흰 도화지에 담고자 이것저것을 응시해야 할 텐데, 이미 방전된 머리는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이보다 더 절망적인 순간이 또 어디 있겠나. 나만 할 수 있는 생각을 화려하게 펼쳐 보이고 싶은데 정작 누군가의 반짝 반짝거리는 생각만 눈에 들어차 질투심에 머리가 언다. 반응 없는 찌를 한참 바다에 던져 놓은 양, 절망스럽기도 하다. 차라리 머리를 비우고 일상생활을 안락하게 영위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보면 머리가 영영 굳어 멀리 돌아갈까 걱정스럽다. 인생이 고통이라면 팔할은 생각의 책임이겠구나, 뭐 그런 생각도 든다.
 
이 책이 눈에 들어왔던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생각에도 기술이 있다면, 무엇을 인코딩하면 깔끔하게 디코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하지만 저자가 밝히듯 이 책은 생각의 노다지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노다지 없음은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곳엔 함께 절망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있다. 백지로 시작하여 빈칸 하나하나를 그림으로 채워나간 저자처럼, 이 책엔 늘 새로운 생각을 희구하는 이들의 절망과 끈질긴 노력이 담겨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생각하기의 기술>은 무언가를 목표점으로 잡고 생각하느라 저 멀리 흘려버린 생각들을 상기시켜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p.78-79)이 그렇다. 무언가를 위하여 제쳐두었던 나 자신에 대한 생각들. 내가 무엇을,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도상을 좋아하며 어떤 날씨를 좋아하는지 같은 사소하지만 큼직한 생각들. 그림으로 소개한 저자의 취향은 나의 취향, 나 자신이 사랑하는 기호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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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p.78-79)
 

내가 좋아하는 것들. 서늘한 아침 공기. 김윤아의 음악. 다이어리. 앉아서 무언가를 보는 시간. 차가운 아메리카노. 두 번째 잔. 푸른빛이 감도는 나무들. 집 오는 길에 맞는 찬 바람. 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베레모를 쓴 노신사. 극장가는 길. 하릴없는 새벽 시간, 깔끔히 정리된 정원, 카페에 친구와 있는 시간, 길가에 핀 작은 꽃, 맨살에 닿은 봄바람. 내 생각으로 가득 찬 노트.
 
내 살결에 닿고 귓가에 닿고 눈가에 닿는 감각들은 어쩌면 내가 늘 생각하고 있어야할 것들인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기분 좋음을 느끼는 것. 나를 위해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너는 뭘 좋아해?’라고 물었을 때, 시시한 대답으로 나를 표찰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내일 뭘 해야 해, 현 시국에 대해선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해,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선 이런 생각을 해봐야겠지.’ 이 같은 Have to 식의 생각들 말고, Want to의 생각들이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 내겐.



잃어버린 조각

 
나의 Have to의 시원엔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을 텐데 생각의 무게와 피로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남는 건 ‘해야 한다’는 명령뿐이다. 그러다 보면 왜 그랬나? 하는 자문이 든다. 내가 왜 해야 하는 걸까, 왜 하고 싶었을까. 이 고통의 무덤에 스스로 몸을 던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잃어버린 조각’(p,44)은 그 시원을 짐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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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각’(p,44)
 

내가 똑같은 루틴 속에서 나를 소진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나의 빠진 조각을 채우고 싶어서. 처음부터 불완전한 채로 태어난 건지, 자라면서 잘려나간 건진 몰라도 내 속엔 채워지지 않는 조각들이 있다. 이것저것을 거기에 넣다보면 맞지 않는 조각에 아픔을 느끼기도 하고, 비교적 잘 맞는 조각에 결여를 채울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아직 딱 맞는 조각은 찾지 못했다.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통해 남을 이해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무대에 내 상처를 치유해가며, 나는 이 결여를 채울 수 있는 조각을 만들고 있다. 가끔 그 가위질 자체가 너무 버겁고 지리멸렬하고 힘겹지만, 불완전한 내가 나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그래서 글쓰기를 사랑한다.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수정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남과 다르고 싶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남과 같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한다. 이 길이 맞는지, 내가 진짜 원하는 건지, 아니면 환상에 사로잡혀 원한다고 믿는 건지를 생각한다. 맞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생각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이 순간에도 나는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어쩔 수 없나보다. 종이가 앞에 있는 한 난 영원히 생각하며 괴로워 할 테고, 생각하고 싶지 않는 생각에 좌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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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p.142-143)
 

어쩔 수 없는 거라면 머리를 비우고 새롭게 생각하는 게 최선이겠지. 삶에는 리셋 버튼이 없지만 머리엔 리셋 버튼이 있다고 믿는다. 쓸데없는 걸 지우고 마음에 안 드는 걸 지우고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걸 지우고. 혹시 지우지 못할 만큼 복잡하다면 비행기를 접어 날려버리고는 다시 흰 종이 앞에 앉아서 생각하기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어쩌겠나. 이런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아야지.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들을 생각한다. 그렇게 다시 흰 종이 앞에 앉았다.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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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의 기술
- 매일 아이디어와 씨름하는 사람들에게
(The Shape of Ideas)

글·그림: 그랜트 스나이더
옮긴이: 공경희
면수: 144쪽
판형: 148*220(양장)
정가: 13,800원
발행일: 2018년 5월 10일
펴낸곳: 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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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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