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문학 전공을 하고 있거나, 혹은 관심있는 자들에게

글 입력 2018.06.1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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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교 4학년이다. 처음 영어영문을 전공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딱히 없었고, 그저 남들이 다 그렇듯 수능 성적에 맞추어 지원한 학교들 중에서 공교롭게도 가장 전망이 좋아보였던 학과가 '영어영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는 단지 이 과에 들어가면 영어를 배우고 영어로 된 책을 읽으며 말하기 연습, 쓰기 연습, 듣기 연습을 하는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입학후, 전공 과목들을 배우게 되면서 영어영문이라는 학문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어려운 고대 영어와 영어의 뿌리와 근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도 같았던 '영어학', 그리고 거의 서기 500년대까지 거슬러올라가, 그 시절의 문학부터 사조를 따라 찬찬히 올라가는 '영문학'. 두가지의 학문은 기본적 영어지식이 부족했던 나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그나마 둘 중에 고르자면, 문학쪽 감수성이 풍부했던 나는 '영어영문'전공인 주제에 '나는 영미문학만 배울래-'라는 거만한 마음으로 영'어'에 대한 과목과는 모두 이별을 해버렸다.

그렇게 2학년 때는 도저히 영어와 친하게 지낼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 사회과학계열로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조금더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학문을 배우며 '역시 과거의 것을 배울바에는 현재와 미래의것에 집중하는게 더 좋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딜가서 영어를 써야 할 일이 생기거나 누군가 나의 주전공을 물어보는 때가 되면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자꾸만 다른 곳으로 숨고싶어졌다. 그렇다 영어는 피할 수 없는 나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때마침 4학년이 되고, 주전공 중에서 남은 한 과목을 이수하기 위해 이번 학기에 우리과의 전공과목을 듣게되면서 느낀 것은, '정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맞구나.'였다. 기왕 영어를 배우게 된거, 영어영문학과에 들어오게 된거, 영어와 친해져보자!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점점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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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처음부터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단지 사전을 편찬하는 이야기인줄 알았더니만, 작가의 대학시절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고, 그 안에는 의예과에 입학한 주인공이 그 과목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중세 아이슬란드 계도 소설 세미나' 수업에 들어가 '무성 치조 설측 마찰음'과 같은 너무나도 익숙하면서 거부감이 드는 것들을 배우는 주제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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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대목에서부터 나는 이 책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와 글쓴이는 똑같은 의문을 가졌지만 그것을 해결해나가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방향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저 사람은 외국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어- 영어가 익숙하잖아.'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나의 자존심이 나의 포기를 허락치 않았다.

'저 사람도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왜?'

라는 생각이 총알처럼 뇌의 한 부분을 관통하는듯 했다. 순간 아찔했다. 나의 대학 4년이 어떻게 흘러간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4년어치의 아쉬움을 갑자기 짐짝으로 몰아서 받은 느낌이었다. 어깨가 뻐근했고, 머리가 아팠다. 그러나,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책을 계속 읽어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작가의 대학시절 이야기는 빠르게 막을 내리고, 그녀가 메리엄 웹스터의 사전 편찬 보조 직무를 위해 면접을 보러갔으며, 남다른 열정으로 합격을 했다는 이야기로 이어져나갔다. '열정'으로 뽑힐 수 있을 정도로 '영어 단어'에 관심이 많다니. 역시 미국에서도 흔한 케이스가 아닐테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져 나왔다. 한숨? 도대체 왜? 아마도 나의 한숨은 내가 그렇게 못난 대학생은 아니었다는 것을 단지 그녀가 영어에 특출난 재능과 관심이 있다는 것으로 무마시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책은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 사전 편찬자의 자격조건이 영어 전공자가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그들은 단지 단어에 더 나은 정의를 내리는 '일반 정의자'일 뿐이라는 것 까지. 점점 더 거부감을 풀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자신이 영어 원어민이라서 큰 위안이 된다는 그녀의 작은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 살짝 다시 주눅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그녀의 말에 의하면 사전 편찬자들은 평생 영어의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고 한다. 나는 그 바다 속에서 질식하여 죽지않고, 제각각 다른 모양이지만 자기의 힘으로 헤엄쳐나가는 그들이 참 멋있다고 느꼈다.

2,3장에서는 But과 It's의 문법에 관하여 이야기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사실 살짝 머리가 아픈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정말 영어학을 전공하고 싶거나,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꼭 2,3장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전공 수업 프리뷰라 해도 좋을 정도의 내용이니 말이다. 4장에서 대두되는 irregardless라는 단어를 두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후후'하며 작은웃음을 터져나오게 했고, 위에서 말했던 영어의 바다라는 말을 정말 절실하게 실감토록 만들어주었다. 언어를 갖고 노는 사람들이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0장에서 다루는 영어의 어원이야기에서는 '스시'이야기가 나와 조금 반갑기도 했지만, 영어 원어민이기에 영어로 된 훌륭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말에서 그들의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11장의 American Dream이야기에서는 이번 학기에 수업에서 다룬 내용이 겹쳐져서 굉장히 흥미로웠고,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의미가 미국에서 잘못 쓰이는 예들을 보면서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열변을 토하면서 의미의 잘못된 사용을 설명하시던 것이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12장 발음에 대해서 읽을 때에는 진심을 다해서 과학적인 언어인 '한글'과 이를 만드신 '세종대왕'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기도 했다.

이처럼 책을 읽는 내내 완전몰입하여 나 또한 사전 편찬자가 된 기분이었다. 사전을 볼 때마다 그냥 아무 의식 없이 지나쳤지만, 역시 사전을 만드는 일은 마냥 쉬운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여러가지 이해관계와 변해가는 사상들, 그리고 법 사이에서 여러모로 나름의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일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매일같이 피곤하고 힘들고, 하루 8시간 이상을 의자에 앉아 단어와 싸워야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들의 직업을 사랑했고, 영어를 애정했다.

성서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드라마 속 드림팀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있기에 나같은 영어영문학도가 그들의 언어를 좀 더 깊고 풍부하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어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녀석이기는 해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 있는 사랑스러운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후로 말이다.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 어학사전을 위하여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그대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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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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