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거 알아요? 사전도 사람이 쓴다고요!

도서 <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 리뷰
글 입력 2018.06.1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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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의 권위는 상당히 애매한 편이다. 무조건적으로 신뢰되면서 한편으로는 격렬하게 부정된다. 사전을 신뢰해도 괜찮을 것 같은 순간은 대게 생판 처음 보는 단어와 마주했을 때이다. 머릿속에 별다른 데이터가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사전이 하는 말을 믿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종류의 기억이 있다면 몇 년 전 어느 논문에서인가 ‘위시한(위시하다)’이라는 단어와 처음 대면했을 때인데, 그 단어는 이전까지 ‘나의’ 사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단어들을 보면 약간의 당혹감과 함께 인터넷 사전에서 찾아낸 정의를 내 머릿속 사전에 입력해둔다.

그러나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가 아니고서야 우리의 머릿속 사전은 실제 사전만큼이나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고, 그래서 때때로 내 머릿속 사전이 실제 사전을 비웃는 일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전혀 사랑스럽지 않고, '열정'의 사전적 정의는 전혀 열정적이지 않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때는 먼저 어떤 것의 사전적 정의를 제시한 뒤, 그 정의가 왜 틀렸는지를 반박하며 내 생각을 풀어나가는 방식의 글을 즐겨 쓰기도 했다. 실제 사전보다 내 머릿속 사전이 더 호소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생각될 때 느껴지는 묘한 승리감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승리감은 사전이야말로 가장 보편타당한 권위를 인정받는 책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잠깐만, 사전이 책이라고? 뭐 종이사전은 책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니 책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전이 다른 책과 구별되는 중요한 차이는 바로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책은, 아니 모든 글은 유령이나 로봇이 쓰지 않은 이상 그것을 쓴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전만은 예외로 치부된다. 사전은 언제나 익명성과, 그에 어울리는 절대적인 객관성을 요구받는다. 마치 하늘이 내린 계시처럼, 아니면 만인이 합의해서 체결한 이상적인 사회 계약처럼, 사전은 그 안에 조금의 사적인 것도 허용하지 않았으리라는 희한한 신성을 부여받는다. 물론 쓰는 일이야 사람이 하겠지만, 그 배후에 언어의 신 같은 게 있어서 사람은 신의 계시를 받아 적기만 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초현실적인 생각에 일침을 놓는 책이 있으니, 바로 코리 스탬퍼의 <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다. 저자 코리 스탬퍼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인 메리엄 웹스터에서 20년 넘게 일해 온 사전 편집자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관련 업계 종사자가 아니고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사전 제작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가끔은 다소 전문적이고 업무적인 이야기도 나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 특유의 재치 넘치는 말투와 유쾌한 스토리텔링 덕에 무겁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처음 언어와 사랑에 빠진 순간, 메리엄 웹스터사에 입사해 신입 직원 교육을 받던 이야기, 사전에 추가하거나 뺄 단어를 찾고, 정의를 수정하고 예문을 찾아서 개정판 하나를 내는 데에만 2-3년씩 걸린 이야기 등 그의 좌충우돌 사전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외침으로 수렴하는 듯하다. 사전도 사람이 씁니다.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대지만, 그럼에도 오류가 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쓰는 거라고요!


입체 표지.jpg
 

현대 사전 편찬업은 정의 집필자를
익명이자 무형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언어는 깊숙이 개인적이며
사전 편찬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 본문 中, p249


사전은 우리와 똑같이 자기만의 머릿속 사전을 갖고 있는 사람들, 물론 우리보다는 그 머릿속의 사전이 좀 더 나은 사람들이 모여 하루종일 일년 내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신의 계시나 만인의 합의 같은 손쉬운 길은 없다. 사전 편집자들은 크고 작은 단어들에 매달려 느리지만 치열하게 사전을 완성해간다. ‘as’나 ‘run’, 심지어는 ‘a’까지 정말 너무 하찮아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을 파고든다. 게다가 이런 하찮은 단어들이 가장 많은 논쟁과 의견 차이를 낳아서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 작은 주제에 골칫거리만 된다고 손에서 놓는 순간 큰일이 난다는 것을 아는 그들은 오늘도 언어의 뼈대를 유지하기 위해 느릿한 전투를 벌인다.


시도는 해봐야지, 어쩌겠는가?
What can they do but try?


이 문장에서 but의 품사는 무엇인가? 스탬퍼 자신이 겪었던 ‘but’ 분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그는 but이 접속사라고 확신한다. 물론 단번에 얻은 확신은 아니다. 커피 두 잔과 문장에 대한 깊은 고찰, 30분간의 1,779쪽짜리 문법책 독파와 작은 욕설이 함께 해서 얻은 확신이다. 그렇게 얻은 확신으로 동료에게 but이 접속사라고 말하면, 동료는 그와 같은 크기의 확신으로 같은 길이의 이유를 대며 답한다. but은 전치사라고.

더한 고난은 take에 있었다. ‘She was taken aback(그녀는 깜짝 놀랐다)’, ‘take a shit(똥을 누다)’, ‘take a back seat(뒤로 물러나다)’, ‘This will only take about a week(이건 일주일 정도면 된다)’에서 쓰인 각 take들은 의미가 모두 다르다. 스탬퍼는 동사 take의 인용문들을 분류하는 데에만 꼬박 2주를 바친 뒤 이제 자신이 영어를 쓰는지도 모르겠다는 언어적 혼수상태에 빠져버린다. 그러나 아직도 명사 take의 인용문 분류와 take의 정의 집필 작업이 착실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take의 모든 작업이 끝나기까지는 한 달, 그러나 그는 한 달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른 사전 편찬자를 통해 깨닫는다. “저는 run을 수정했지요. 아홉 달이 걸렸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직업처럼 사전 편찬업에도 그 종사자의 딱하고 하찮은 존재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 기준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얼마나 ‘작은’ 단어를 다룰 수 있는지다.

- 본문 中, p204


이쯤 되면 존경심이 든다. 언어를 향한 끝없는 열정과 탁월한 언어감각과 남다른 편집증을 가진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존경스러운 점은 애정이다. 웬만한 애정이 아니고서야 이 일을 이토록 성실하게 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의 언어 사랑도 책 여기저기서 잘 드러난다. 의대를 진학했으나 유기화학 대신 중세 아이슬란드 계도 소설이라는 ‘괴상한’ 수업을 듣고, 소설 주인공 이름인 ‘Hrafnkell’이라는 괴상한 단어의 발음에 ‘무성 치조 설측 마찰음’이라는 더욱 괴상한 이름이 붙는다는 것을 알자마자 언어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 학생들만큼이나 영어 원어민 화자도 많이 틀린다는 its와 it’s의 구분이 몇 세기 전만 해도 유효하지 않았다는 뒷통수 치는 역사라든가, regardless(무관한)의 부정형이지만 똑같은 뜻으로 쓰이는 irregradless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긴 논쟁사, 혹은 여성을 비하하는 비속어 bitch에 얽힌 젠더와 인권운동의 역사 등 그가 직접 겪고 공부한 언어 이야기를 들으면 저자가 얼마나 언어에 몸을 깊숙이 담그고 있었는지가 보인다. 그냥 품사를 분류하고 정의를 내린다고 사전이 되는 게 아니다. 사전이야말로 언어에 대한 사랑으로 한 땀 한 땀 빚어낸 장인정신의 산물이다.


우리는 영어를 방어해야 할
요새로 생각하지만
더 나은 유추는
영어를 아이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양육하지만,
종합적 운동 기능이 발달하자마자
우리가 제발 가지 않았으면 했던
바로 그곳으로 향하는 아이.
결코 우리는 영어의 지배자가 될 수는 없다.
그게 영어가 번창하는 이유다.

- 본문 中, p81


사전은 생동한다. 살아있는 언어를 살아있는 사람이 기록한 숨 쉬는 책이다. 그것도 하루에 8시간씩 사무실에 앉아서, 조용하고 격렬하게 머릿속의 단어들과 싸움을 벌이며 문법책을 뒤지고 인용문카드를 분류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담긴 책이다. 앞으로 사전을 찾아보면 사전적 정의 너머에서 살아 숨 쉬는 사전 편집자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릴 것 같다. 그들의 손끝에서 나온 정의를 여전히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기도, 격렬하게 부정하기도 하겠지만, 더 이상 그 정의를 언어의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쉽게 무시되는 사실. 사전에도 저자가 있습니다. 우리랑 똑같은 사람 맞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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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

이 책의 한국어버전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 영어사전 얘기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아마 한국어 사전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 내가 한국어 원어민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로 한국어는 영어보다도 복잡다단하고 섬세한 의미계열과 역동적인 역사를 지닌 언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한국어 버전 <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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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트]

주차장에선 이따금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고, 건물 뒤편 유리에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매사추세츠 주의 변화 중인 동네. 벽돌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면, 사람들은 있지만 소리가 없는 기묘한 사무실이 나온다. 그 안에는 하루에 8시간 이상 칸막이 책상에 앉아 종이 판지 맛이 나는 커피를 들이부으며 오직 단어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전의 작가이자 편집자인 그들은 침묵 속에서 세상의 모든 언어를 신중히 채집해 체에 거르고, 분류하며, 정의 내린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출판사 메리엄 웹스터에서 20년째 사전을 써온 사람, 코리 스탬퍼도 그중 한 명이다.

'읽기'가 생활이고 '쓰기'가 직업인 그녀의 삶은 가장 느릴 듯 보이나 스펙터클하고 역동적이다. 종잡을 수 없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제멋대로인 언어를 한 권의 책으로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은 사전에 오른 단어 수만큼이나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다.

이 책은 "근사하고 음탕한 언어를 다루는 회사에서 일하는 건 끝내주는 경험"이라고 말하는 사전 편집자의 모험기로, 시종일관 유쾌하고 지적이며 경이롭기까지 하다. 선천적 유머 본능의 소유자인 그녀가 안내하는 현장으로 가보자. 작가, 기자, 편집자, 카피라이터를 포함해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씨름하며 매일을 보내는 세상의 모든 언어 노동자들이라면 그녀의 통찰과 필력에 곧바로 반해버릴 것이다.


[차례]

서문
1장. Hranfkell – 언어와 사랑에 빠지는 것에 관하여
2장. But – 문법에 관하여 
3장. It's – ‘문법’에 관하여 
4장. Irregardless – 틀린 단어에 관하여 
5장. Corpus – 뼈대를 수집하는 일에 관하여
6장. Surfboard – 정의에 관하여
7장. Pragmatic – 예문에 관하여
8장. Take – 작은 단어에 관하여 
9장. Bitch – 나쁜 단어에 관하여
10장. Posh – 어원과 언어적 기원주의에 관하여
11장. American Dream – 연도에 관하여
12장. Nuclear – 발음에 관하여
13장. Nude – 독자 편지에 관하여
14장. Marriage – 권위와 사전에 관하여
Epilogue – 끝내주는 일 
감사의 말


[저역자 소개]

지은이 코리 스탬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제작사 메리엄 웹스터에서 20여 년 넘게 일해온 사전의 작가이자 편집자다. 문자 중독 사춘기를 보내고 스미스 칼리지 의대에 입학했으나 자신의 길은 인문학에 있음을 깨닫고 중세 아이슬란드 계도 소설 강의를 들으며 라틴어, 그리스어, 고대 노르웨이어, 중세 영어 등을 공부했다. 메리엄 웹스터 유튜브 채널 [Ask the Editor]에서 논쟁적 단어들과 그 용법을 정확히 풀어내며 인기를 모았고, 「워싱턴 포스트」, 「가디언」, 「뉴욕 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등에 언어와 사전의 역할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한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전적으로 언어에 헌신하면서 서서히 눈이 멀어가는 단어광이자 언어 애호가이며 어휘 수집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정의 내려야 한다는 직업적 강박에 사로잡힌 채, 오늘도 좀 더 적확한 표현을 찾아 머릿속을 헤집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운영하는 블로그 주소는 korystamper.wordpress.com/, 번역하면 ‘무해한 노역’.

옮긴이 박다솜
사전 속 발음기호에 매료되어 수집하듯 여러 외국어를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진학해서 문장을 도해하고 단어의 품사를 정확히 판정하는 기술을 배웠다. 번역을 시작한 이래 매일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스릴을 즐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관찰의 인문학』, 『죽은 숙녀들의 사회』, 『여자다운 게 어딨어』, 『원더우먼 허스토리』, 『독립 수업』,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암호클럽』 시리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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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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