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레이디 버드(Lady Bird): 모두가 겪는 가장 특별한 경험 [영화]

글 입력 2018.06.18 17: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고등학교가 배경인 여러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들이 가진 비슷한 문화를 반복해서 볼 수 있다. 프롬이라 불리는 학교 무도회에서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고 좋아하는 친구와 춤을 추고, 친구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술을 마시며 첫 경험을 하는 장면 등. 늘 반복적으로 나오는 장면들이다. 이런 장면들을 볼때마다 그들의 문화나 삶이 참 우리나라 고등학생들과는 다르다고 느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주인공들이 느끼는 찰나의 감정들은 우리 모두가 학창시절에 느꼈던 감정들과 비슷하다. '레이디 버드'라는 이 영화는 특히나 딸과 엄마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었고, 관객들 각자의 경험들이 합쳐져 더욱 풍부한 감정을 만들어낸 영화이다.


3.jpg
 
 

# 레이디 버드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크리스틴이 자신을 직접 '레이디 버드'라고 이름짓는데 이 영화의 핵심이 있다. 지루한 캘리포니아를 벗어나서 새처럼 날아다니고 싶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고, 사춘기 시절 강한 자아 표출이기도 하다. 그녀의 성격을 보면 부모님이 지어준 평범한 기독교 이름이 맘에 안들법도 하다. 여러 의미를 제쳐두고 어쨌든 그녀는 '특별'해지고 싶어한다. 이 포인트를 잡아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왜냐면 너무 공감됐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우리 안에 가장 큰 욕구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다.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 하나뿐인 내 인생이 멋있고 특별했으면 좋겠어서 하고싶은 것도, 갖고싶은 것도, 가고싶은 데도 참 많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부터 모든 가족들과의 불화가 쌓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니 불만만 쌓이고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가족들에게 상처주는 말들을 하고는 한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눈물 흘린 장면이 비슷할 거라 생각하는데, 가족들에게 아픈 말들을 했던 순간들을 후회하는 눈물이 아닐까?


g.jpg
 
 

# 깨달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짓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녀가 다시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원하는대로 가족 품을 떠나 혼자 살게된 레이디 버드는 그제서야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왜 신을 믿지 않지?"라는 대사가 너무 좋았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평생을 불리며 사는 동안 마치 신의 가호처럼 부모님의 사랑이 날 에워싸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결말을 보고 나니 중간 중간 등장하는 예배나 미사 장면들이 이러한 마지막 주제를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movie_image.jpg
 


# 성장

'크리스틴'으로 돌아간 그녀는 관객들이 기억하는 사랑스러운 '레이디 버드'처럼 통통 튀거나 당돌한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특별하지 못한 첫 섹스 후, 그녀에게 어차피 평생을 시시한 섹스를 할텐데 왜 그러냐며 달래는 카일의 말처럼 그녀의 앞으로의 삶은 생각보다 평범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 철들고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레이디 버드'로서의 그녀의 삶도 소중하지만 '크리스틴'으로의 성장 또한 똑같이 소중하게 그려진다. "이게 내 최선의 모습이면?"이라는 말에 엄마가 대답을 못하는 것처럼 '레이디 버드'가 열여덟살 그녀에겐 최고의 버전일지도 모른다. 어떤 게 최고의 모습인지는 그녀만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그녀의 Best Version이고 성장인 것이다. 결국 크리스틴이라는 버전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성장한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 레이디 버드 뿐만 아니라 그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성장' 또한 반복해서 다뤄지고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첫 남자친구 대니, 베스트 프렌드 쥴리 그리고 아빠와 오빠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한 발씩 내딛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엄마 또한 성장 중이다. 혼자 힘들게 생계를 이끌며 철 없는 행동을 하는 딸에게 답답한 마음에 모진말도 했을 것이다. 그랬는데 딸이 대학을 지원하는 걸 숨겼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에서 오는 슬픔과 미안함,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딱 든 생각이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다'라는 말이었다. 아마 편지를 쓰며 그녀는 자신이 딸에게 어떤 엄마인지 아프게 성찰했을 것이다. 결국 엄마와 딸 모두가 아프게 성장 중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l.jpg
 


# 나

나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도 레이디 버드와 비슷한(?) 유년시절을 겪고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 그러나 역시 모든건 지나고 나서 깨닫는다고 자취를 하며 가족들의 소중함과 사랑을 많이 깨달았던 것 같다. 학창시절 예민한 성격탓에 상처주는 말들을 엄마, 아빠에게 했던 걸 아프게 후회하기도 했고 지금도 후회중이다. 이 영화를 보며 더 후회되었다.

어쨌든 지금은 잠시 인천 집으로 돌아와 지내고 있는데 확실히 예전보다는 부모님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싸울때도 많다. 어쩔 수 없이 생각이 다른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고 가족이기 때문에 더 그러면 안되지만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땐 못된 말이 툭 나가버리는 것 같다. 그렇지만 확실히 사춘기 때처럼 막무가내이진 않다. 존경하고 감사한 마음이 훨씬 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더 효도해야겠다는 마음이 가장 크다. 이렇게 말하니 나도 참 철이 많이 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좋다. 철 없던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특별하고 소중했던 추억보단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모 나있고 뒤틀려 있었던 그때 나의 모습도 지금의 나를 만든 한 부분이라 소중하지만 좀 더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으려하고 나도 쉽게 상처받지 않는 지금의 내가 더 좋다. 현재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크다.


[김초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