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백에 대한 단상 : 김수영 '죄와 벌' 그리고 사이먼 도미닉 '정진철' [문화 전반]

김수영 '죄와 벌' 그리고 사이먼 도미닉 '정진철'에 담긴 고백에 대하여.
글 입력 2018.06.1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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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참 어렵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은 슬픔과 상처에 대한 고백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꺼내어 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필자는 시인을 좋아한다. 그들에겐 내가, 그리고 누군가가 갖지 못한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에 자신의 가장 못난 부분까지 담아내어 비로소 시를 곧 그들 자신으로 만든다. 이 과정을 거친 시인의 고백이 때로는 너무나도 무거워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고백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시인이 고백을 마주하고 이를 성찰하는 과정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이 잘 드러나는 시가 바로 김수영의 <죄와 벌>이다.



01. 김수영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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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김수영 <죄와 벌> 전문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필자는 시인의 비윤리적인 행위가 주는 불쾌함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시를 통해 시인의 저열함을 합리화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산으로 아내를 때려눕힌 후에 혹시 자신이 아는 사람이 이 현장을 보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걱정, 그 전에 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것이 아까웠음을 고백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담담해서 화가 날 정도였다. 한동안 이 시는 필자에게 아주 찝찝하고 불쾌한 감정으로 남아 있었다.

최근에 학교에서 열린 어느 시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강연 중에 “모자란 부분 자체가 인간의 본질이며 나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시다. 그 못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래서 시를 읽는 독자가 많지 않은지도 모르겠다”라는 말을 전했는데, 이 말을 듣고 필자는 김수영의 <죄와 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김수영의 <죄와 벌>은 윤리적 관점에서 읽으면 문제가 될만한 지점이 매우 많은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그는 한 마디로 ‘쓰레기’라 불리기 충분하다. 그러나 시인이 자신의 폭력성과 추악함을 마주하고, 그것을 시 속에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세상에 폭로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이 시는 단순한 변명이 아닌, 한 편의 풍자극이 된다.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덮어두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고백함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시 속의 시인은 여전히 나쁘다. 그러나 그의 고백만큼은 필자의 마음에 무거운 울림으로 남는다.



02. 사이먼 도미닉 <정진철>


시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자기 성찰을 통한 고백을 찾아볼 수 있는데, 최근 발매된 사이먼 도미닉의 <정진철>이라는 노래가 그렇다.


정기석.jpg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의 앨범명 ‘다크룸(DARKROOM: roommates only)’은 그의 가족이 운영했던 사진관의 암실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그는 암실이라는 공간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이번 앨범을 통해 그는 자신이 무서워했던 공간인 암실 속으로 들어가 암실처럼 어두운 기억을 사람들에게 고백한다.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곡이 바로 <정진철>이다.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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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명절 때마다 조카들에게 선물해주던 비싼 옷
8살, 6살짜리 옷장엔 대부분 시장 꺼
일 년에 한두 번 누리는 사치스러운 행복이자 멋
그가 오는 날엔 구서 사진관 홀은 런웨이가 돼
1층에 의상실 고모는 우릴 보고 아동복 모델 같대
스튜디오에 딸린 방 두 개가 네 식구가 먹고 자는 곳 그리고 암실
연탄실 옆 변소에 밤이 되면 초를 키고 나왔지
우리 집에 비해 삼촌 집은 오션뷰의 좋은 빌라
영화 한 편 보러 간 적 있었지 아마 인디아나 존스 1탄
돌싱이었던 그의 집엔, 떠난 숙모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그런 어지러운 상황에도, 우릴 데리고 하루 종일 여기저기에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은, 패션 디자이너

그는 오로지 여자 옷만 그리고 살았대 스케치북에
남포동 일대에 잘 나가던 업소 누나들이 주 고객
엄마가 선물로 받았던 퍼플 모피 코트
찝찝해선지 화려해서 그랬는지 한 번도 못 입고
부산에서 정진철 하면 좀 먹어주던 그 시기에
서울 진출까지 해버린 어느 날은 TV에
그 해의 패션 동향을 묻는 프로에도 나갔던 모습
자주 못 봐도 좋은 게 생기면 우리 집에 다 갖다 줬어
근데, 행복한 건 진짜 얼마 안 가데
할머니가 쓰러진 소식은 얼마나 절망 같았게
가족 모두가 신경을 써도 모자랄 판에
삼촌이 전활 안 받네 어디론가 도망을 갔대
흠, 할머니께서는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동시에 치매까지
퇴원 후 우리 방은 병실이 됐고
날마다 똥오줌 치우기 싫어 집에 가기 싫어했지
길바닥에 앉아 힘들게 미나리 팔아 모은 돈
1500 정도, 삼촌이 사업 땜에 다 말아먹은 게
너무도 미안해서 자기 엄마 볼 낯이 없다고
행여나 돌아가시더라도 절대로
안타까운 건 아빠가 형제를 잃었다는 사실과
내가 슬펐던 건 앞으로 메이커 옷을 못 입을 거라는 상실감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은, 패션 디자이너
나의 삼촌은, 패션 디자이너

딱 한번 본 적 있거든, 드라마에 나올 법한 기적을
할머니께서 잃었던 정신이 돌아오신 모습
치매를 극복하시고는 우리와 함께 10년을 가까이
임종 직전에 마지막으로 실종 신고를
진철이, 진철이 이름을 끝까지 부르셨지만
경찰이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땐 완전히 불 꺼진 다음
자취를 감춘 듯해 주소는 등본에 그대로인데
그가 먼저 우리를 찾아줄 거라는 기댄 없네
혹시나 TV 속에 나를 봤다면 기억이나 했을까 궁금해
죄책감 따위 느낄까 과연 뭐가 중요해 지금 그게
감감무소식인 삼촌이 고맙긴 해 이렇게라도 인생에 도움을 주네
사실 찾으면 좋고, 못 찾아도 그만이네 뭐가 중요해 지금 그게

이 노래로 덕 볼 사람은 누구게
이 노래로 덕 볼 사람은 누구게
이 노래로 덕 볼 사람은 누구게
이 노래로 덕 볼 사람은 누구게
이 노래로 덕 볼 사람은 누구게
이 노래로 덕 볼 사람은 누구게
이 노래로 덕 볼 사람은 누구게
이 노래로 덕 볼 사람은 누구게

사이먼 도미닉 <정진철> 가사 전문


이 노래는 발매 직후 ‘나의 삼촌 이름은 정진철, 직업은 패션디자이너’라는 독특하고 중독성 있는 후렴구로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다. 하지만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후렴구가 포장하듯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SNS 라이브 방송에서 밝힌 바 있듯이 <정진철>은 사이먼 도미닉의 삼촌에 대한 실화를 담은 곡이다. 노래 가사에 따르면 그의 삼촌인 ‘정진철’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남포동 일대의 유흥업소 종사자들을 상대로 옷을 디자인하던 그의 삼촌은 수입이 꽤 좋았고, 형편이 어려웠던 사이먼 도미닉에게 메이커 옷을 선물해주는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 어느 날, 그의 할머니가 쓰려져 치매에 걸리자 할머니가 모은 돈 1500만 원을 사업으로 말아먹은 삼촌은 행방을 감춘다.

노래가 진행될수록 그의 고백은 더욱 솔직해지고 어두워진다. 삼촌이 실종된 후 ‘메이커 옷을 못 입을 거라는 상실감’에 슬퍼하던 철 없던 자신의 모습, 삼촌이 떠난 후 할머니의 병수발에 지쳐가던 가족, 그리고 가족을 버린 뒤 끝까지 찾아오지 않은 삼촌에 대한 원망 등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세상에 고백함으로써 그는 암실처럼 어두운 내면과 비로소 마주선다.

이 장대한 서사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구절 또한 처음 구절만큼이나 독특하다. ‘이 노래로 덕 볼 사람은 누구게’라는 질문이 어쩌면 무의미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음원 수익을 가져가니까, 혹은 노래를 통해 삼촌에 대한 복수에 성공했으므로 사이먼 도미닉이 덕을 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반응이 많은 것을 보니.

하지만 이 노래로써 그가 얻는 무언가가 과연 상처를 마주하는 고통보다 클 것인가를 생각해봤을 때, 결국 이 노래는 '덕'을 보자고 만든 노래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해석을 도출할 수 있다. 이 노래의 목적이 대체 무엇이냐는 사람들을 향해, 목적을 찾는 대신 그가 암실 속에서 내뱉는 고백  그 자체를 봐달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김수영의 <죄와 벌>을 읽으면, 그리고 사이먼 도미닉의 <정진철>을 들으면 자신의 밑바닥을 세상에 고백한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하고 무거운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필자는 이를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이들의 고백이 더욱 대단하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죄와 벌>과 <정진철>이 담고 있는 내용이 상당히 파격적이어서 이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가 분분하다. 하지만 그 고백의 무게만큼은 모두가 온전히 느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사이먼 도미닉의 목소리를 빌려 마무리를 짓는다.


그래서, 덕 볼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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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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