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에도 법은 없다

공연 < 인터내셔널 마스터즈 시리즈 : 데니스 코츠킨 Piano >을 보고
글 입력 2018.06.2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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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금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데니스 코츠킨의 독주회가 열렸다. 평소 시간 내서 클래식 공연을 들으러 다니지는 않는 터라,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이 공연이 기대되는 만큼 걱정도 되었다. 클래식 전공자도 애호가도 아닌 말 그대로 ‘일반인’인 내가(클래식을 얘기할 때의 일반인은 클래식에서 멀리 있는 사람을 뜻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이 공연을 제대로 음미하고 올 수 있을까? 잘은 모르지만, 어떤 연주자의 독주회라 하면 일단 프로그램의 곡들에 대한 충분한 숙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또 그 곡들을 다른 연주자가 연주한 버전도 몇 개 들어봐야 해당 공연을 하는 연주자만의 색을 잘 파악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럴 만한 시간보다도 그럴 만한 마음이 부족했다.

클래식은 어렵다. 혹자는 이걸 편견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클래식을 대중음악 듣는 것처럼 듣지는 않으니 마냥 편견만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둘째치고 일단 나에게 자문부터 해 보았다. 나는 왜 클래식을 어려워하는가? 사실 돌아보면 내가 클래식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아니,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있다면 그건 마치 인디, 힙합, 혹은 케이팝처럼 그 안에도 너무나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하는 장르이기에 클래식 자체를 싫어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렵다. 비록 어렸을 때이지만 오케스트라도 하고 클래식 공연도 접해보며 나름 ‘애호하는’ 곡도 몇 곡 있고 들을 때마다 감탄할 만큼 좋아하는 곡도 있으니, 클래식 자체를 싫어한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클래식 콘서트와 인디 콘서트를 두고 같은 조건 하에서 – 예를 들면 둘 다 잘 모르는 아티스트거나 둘 다 익히 아는 곡이 연주된다거나 – 그 중 하나를 고르라 하면 나는 후자를 고를 것 같다.

그 이유는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나온다. 무언가가 어려운 이유는 잘 몰라서이고, 잘 모르는 이유는 다른 것들에 비해 앎에 이르는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일단 물리적인 측면부터 말하자면, 클래식 음악은 다른 음악에 비해 대체로 길이가 길다. 끝까지 듣는 것만 해도 짧게는 10분 내외 길게는 한 시간도 더 걸린다. 그걸 반복해서 여러 번 듣는다는 건 따로 시간을 투자할 만큼의 여유가 있지 않은 한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에 비해 길이가 짧고 여러 번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대중음악은 그 음악의 색과 매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낯설고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대중음악도 그 음악 자체를 아는 데에는 큰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 이런 시간과 에너지의 경제성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으로 기운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클래식은 다른 음악에 비해 갖고 있는 역사가 월등히 길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그 긴 역사동안 클래식 내에서 정말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때는 클래식도 지금의 대중음악과 같이 빠르게 파악 가능한 곡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그러한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이 생기고, 그 새로운 틀은 더 새로운 시도에 의해 쇄신되면서 지금의 클래식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그 무수히 많은 시도와 음악적 영감의 역사가 클래식의 단점이자 장점이 된다. 한 번 듣기는 어렵지만, 한두 번 들어서는 잘 모르겠지만, 듣다보면 서서히 그 깊은 매력에 젖어드는 음악. 그리고 신기하게도 들으면 들을수록 질리기는커녕 매번 새로운 매력이 솟아나는 음악. 그 깊이가 곧 클래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해는 마시길. 지금 나는 클래식이 공부해야 되는 음악, 지식과 앎이 없이는 즐길 수 없는 음악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필자는 이번 공연을 마치 덧셈뺄셈도 모르는 학생이 미적분 수업 듣듯이 듣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필자는 말하자면 사칙연산은 알고 그걸로 몇 문제는 풀 수 있는데, 분수나 인수분해는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최상급 수업을 듣게 되어 급하게 미적분 교과서만 휘리릭 훑어보고 간 학생이었다. 프로그램의 곡들을 미리 들어본다고 다짐은 했으나 대부분 초반 3분을 넘기지 못했고, 그 와중에 거슈윈의 곡은 아는 곡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한 곡 한 곡 집중해서 끝까지 들어보고 싶었으나 슬그머니 과제가, 어느 새 시험이,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원래의 다짐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했다. 그렇게 날림으로 예습하고 간 수학 초보 학생이, 그런데 미적분 수업에서 수학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왔다면 믿어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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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GRAM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 제1권
제7번 g단조, HWV432
Georg Friedrich Händel
Suite for Keyboard, Vol.1
No.7 in g minor, HWV432


요하네스 브람스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인터메조, Op.117
Johannes Brahms
3 Intermezzi for Piano, Op.117


벨러 버르토크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야외에서, Sz.81, BB89
Béla Bartók
Out of Doors(Szabadban)
Suite for Piano, Sz.81, BB89


INTERMISSION


클로드 드뷔시
피아노를 위한 12개의 전주곡, 제1권, L.117
Claude Debussy
12 Préludes for Piano, Book I, L.117


조지 거슈인
랩소디 인 블루
(피아노 독주를 위한 편곡)
George Gershwin
Rhapsody in Blue(arranged for Solo Piano)


소리가 색으로 들리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공연의 문을 열었던 헨델의 모음곡은 짙은 원색의 향연이었다. 다음으로 나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던 브람스의 인터메조는 연청빛 물색의 몽환적인 수채화였다. 물을 가득 머금은 붓이 부드럽게 도화지를 어루만지는 편안함이 있었다. 이어지는 바르톡의 모음곡은 새로운 충격을 가진 음악인 동시에, 무언가를 계속해서 상상하게 만드는 짙은 묘사성을 가진 곡이었다.

인터미션 이후 이어진 드뷔시의 전주곡, 공연 전에 몇 번 더 들어보고 갔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가장 많이 남은 곡이었다. 깊은 밤하늘의 보랏빛으로 시작해 다양한 색으로 채워지는 곡이다. 기존에 알던 드뷔시의 다른 곡들과 비슷하면서도 대비되는 면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끝으로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는 관현악 버전으로는 익히 들어봤으나 피아노 편곡은 처음 들어보는지라 이질적이면서도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관현악만이 낼 수 있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소리는 없었지만 대신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랩소디 인 블루의 극대치를 들은 기분이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색으로 이 공연을 표현하는 건 곧 나의 한계이다. 조금 더 ‘알았더라면’, 이 연주자만의 개성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각 곡에 대해서도 단순히 색깔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몰라도 알았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클래식은 모르지만 주관적인 클래식은 안다고 하면 기만일까. 그래도 분명히 나는 이 공연에서 나만의 감흥과 나만의 미감을 느꼈다. 그랬기에 공연이 끝난 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공연에서 들은 곡을 다시 찾아 듣고 다시 한 번, 그러나 매번 새롭게 그 매력에 젖어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클래식은 어렵지 않다. 이 역시 음악이고 예술인 이상, 본질적으로 법은 없다. 더욱이 남들이 말하는 법, 지식이든 수준이든 그런 건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 근본적으로는 나에게 느껴지는 대로를 느끼는 것, 그뿐이다. 물론 클래식의 벽이 높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다녀오며 그 벽에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바쁜 일상이지만, 그래서 맨날 지하철에서 이어폰 끼고 듣는 짧고 자극적인 노래가 내 음악의 전부였지만, 이제 가끔은 십 분 정도 시간 내어 조용한 곳을 찾아가 낯선 클래식 피아노 곡 하나에 정신을 기울여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볼 것이다. 익숙한 3-4분 길이의 음악에서는 느끼기 힘든, 일상을 벗어나는 새롭고 멋진 경험을 선사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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