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속으로 [음악]

어둠 속에서 음악을 빛 삼아 따라가는, Ryuichi Sakamoto: LIFE, L I F E 전시
글 입력 2018.06.2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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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주는 요즈음의 취미다. 예전에는 건반을 그냥 별 생각없이, 또는 난 큰소리가 좋아!! 내 에너지를 쏟아붓겠어!!! 하며 쾅쾅 누질렀는데 (누지르다=누르다의 경상도 사투리^^) 요즘엔 도서관에서 '나는 오늘부터 피아노를 치기로 했다'란 책을 빌려 읽으면서 아름답고 영롱한 소리를 위한 타건에도 나름 신경을 쓰고있다.

류이치 사카모토 전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학생때쯤이었나, 뉴에이지란 장르에 홀린듯 지내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좋아하던 피아노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떠올라서 오랜만에 다시 들어봤다. 한동안 잊고지냈네.




비가 촉촉이 내리는 밤에 혼자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있으니 음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새로 산 블루투스 스피커는 작은 제 몸을 울려 다섯 평 남짓되는 내 방을 음으로 메운다. 피아노 소리는 아름다웠다. 없던 감정도 생기게 만들고 가벼운 전율까지 느끼게 하는 음악의 힘에 경외감을, 그리고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하며 곧바로 전시회 예매를 하게되었다.
 
전시 장소는 회현역 부근의 piknic이라는 이름의 공간이었는데, 유월의 수국과 또 이름모를 아기자기한 꽃들이 입구까지 안내를 해준다. 지하에서부터 한층씩 계단을 오르며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 들어가보니 캄캄하다. 잠시 당황하나 음악소리가 들려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어떤 분위기의 공간에서 어떤 마음상태에서 듣는가에 따라 그 곡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새로운 곡도 알게 됐다. 음악 검색을 해서 그 이름이 영화 레버넌트 OST중 Arriving At Fort Kiowa 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렇게 뜻밖으로 마음에 드는 음악을 만나는 수확은 세상살이의 큰 즐거움이다. 슬픈 점은 1분 20초정도의 짧은 곡이라는 사실이다. 넉넉하게 10분정도로 만들어주면 좀 좋은가 하는 욕심이 그새 생긴다.


 

계단을 오른다. 사진이 걸려있다. 작곡가의 젊은 시절이 있다. 잘생긴 외모가 왠지 그가 스타가 되는데 한몫 단단히 했을거란 지레짐작을 한다.
 
어느 전시실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다소 기이해보이기도 한다. 예술가라면 마땅히 그래야하는건지도 모르지. 새로운 시도는 낯설게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새로움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떤 영감을 준다. 나도 그들중 한명이다. 작곡가가 자연의 다양한 소리를 수집하기위해 숲을 걷고 거기서 만나는 별별 것들을 다 건드려보며 소리를 만들기도 하고, 비오는 날 물동이를 뒤집어쓰고 그안에서 빗소리를 듣는 모습 같은걸 보니까 나도 그 비슷한걸 해보고 싶었다.

내 사랑하는 작은 집에 나를 설레게하는 크고작은 살림살이들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궁금해져서 괜히 나무젓가락 하나를 들고 할일없이 책들, 화분들, 수건 등등 다 두드리며 들어봤다. 소리가 모두 다른데 여기에 집중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집은 그저 나에게 조용한 공간이었으니까. 어찌 생각해보면 서로 다른 사물이 부딪히면서 내는 파동이 귀를 거쳐 어떤 그만의 특이한 색을 입으며 의식에 자리하는 것이다.

작곡가는 의외로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여태껏 일본인은 정치에 무심하고 자기주장을 뚜렷이 하지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그는 원전 설립을 반대하는 시위에 연사로 참여해서 소신껏 당당히 또 담담히 이야기한다. 원전 사고지역을 방문하고 또 지진 피해지역 아동을 돕기위한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고, 숲을 조성하기위해 노력하는 것. 모두 의미있는 일이다. 그가 가진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멋지다 생각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무작위의 움직임을 보고있으면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그런 선을 그리며 춤을 추고싶어진다. 그래서 멍하니 보고있게된다.

*

어두운 전시실을 나오면 이제는 옥상. 탁 트인 공간으로, 그리 높진 않지만 도시의 일상이 내려다보인다.

이런 글도 볼 수 있다. "진정한 문명은 산을 없애지 않고, 마을을 부수지 않고, 강을 거스르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19세기를 살았던 다나카 쇼조라는 일본사람이 한 말인데 나도 동의한다.

그렇게 옥상을 조금 걸어다니다,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기는 조금 아쉬워 다시 지하로 내려간다. 그리고 바닥에 자리잡고 앉아서 처음처럼 연주를 감상하며 마무리를 짓는다.


[하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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