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읽은 『광장』, 한국엔 정말 밀실이 있나요 [도서]

글 입력 2018.06.22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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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처음 접하는 것은 고등학교 즈음일 것이다. 대입을 준비하기 위한 필독서 0순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출판사에서 국어 교과서에 광장을 싣고 있고, 꽤나 옛날이지만 모의고사에서 출제된 적도 있다. 책 전체를 다 읽진 않았더라도 최소한 가장 유명한 하이라이트 부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주인공 명준이 타고르호에 오르기 전, 인민군 천막에서 회유와 협박을 견고하게 견뎌내는 장면이다.

"중립국."

이 유명한 대사는 인터넷상에서도 몇 번이나 패러디되어 짤로 돌아다녔다. 중립국 패러디가 공감을 얻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국민들에게 광장이 익숙한 소설이라는 뜻일 것이다.

나도 광장을 꽤 여러 번 읽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몇 년간 국어 과외를 하며 최소한 일 년에 두세 번씩은 광장을 가르쳤다. 많은 수험생들이 다른 현대소설을 읽을 때보다 광장을 읽을 때 힘들어한다. 서술의 상당 부분이 사건 묘사가 아닌 명준의 심리, 사고 묘사이고, 그 생각 대부분이 이념과 역사, 철학에 관한 관념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만일 입시를 위해 간략하게 핵심만 잡고 넘어가야 한다면, 수업에서 다뤄야 할 것은 역시 '광장'과 '밀실'의 상징이다.

많은 참고서에서는 광장과 밀실의 상징을 매우 간단히 정리한다. 광장은 사회 구성원들이 모여 소통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공적인 공간. 밀실은 사회 구성원들 각각의 개인적 공간, 닫혀있는 공간이다. 개인의 삶이 모여 담론을 만들고 변화를 일으키는, 즉 밀실과 광장이 조화된 사회가 명준이 보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다.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청년기를 보낸 명준은 남한은 광장이 없고 밀실만 존재하는 사회, 북한은 밀실이 없고 광장만이 존재하는 사회임을 확인한다. 이념의 허망함을 느낀 명준은 포로 송환 과정에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행을 선택한다. 하지만 진정한 광장과 밀실이 존재할지, 이념 싸움에서 자유로운 중립국이 존재할지에 깊은 회의감을 느낀 명준은 인도의 상선 타고르 호에서 자살한다.

사실 책에서는 서술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명준이 남한을 광장과 밀실이 기형적으로 공존하는 공간으로 정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간은 그 자신의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그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 정치는 인간의 광장 가운데서도 제일 거친 곳이 아닌가요? .. 도시로 치면 서양의 정치 사회는 하수도 시설이 잘돼 있단 말이에요.  ... 한국 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더미로 쌓였어요. 모두의 것이어야 할 꽃을 꺾어다 저희 집 꽃병에 꽂구, 분수 꼭지를 뽑아다 저희 집 변소에 차려놓구, 페이브먼트를 파 날라다가는 저희 집 부엌을 깔구. 한국의 정치가들이 정치의 광장에 나올 땐 자루와 도끼와 삽을 들고, 눈에는 마스크를 가리고 도둑질하러 나오는 것이지요.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 아닙니까? 선량한 시민은 오히려 문에 자물쇠를 잠그고 창을 닫고 있어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 시장으로 가는 때만 할 수 없이 그는 자기 방문을 엽니다. ... 시장, 그건 경제의 광장입니다. 경제의 광자에는 도둑 물건이 넘치고 있습니다. ... 바늘 끝만 한 양심을 지키면서 탐욕과 조절을 꾀하자는 자본주의의 교활한 윤리조차도 없습니다. 한국 경제의 광장에는 사기의 안개 속에 협박의 꽃불이 터지고 허영의 애드벌룬이 떠돕니다. 문화의 광장 말입니까? 헛소리의 꽃이 만발합니다.


이후에도 몇 문단에 걸쳐 남한 사회에 대한 성찰이 이어진다. 최종적으로 명준은 결론 내린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최근 광장 수업을 또 한 번 하게 되면서 이 소설을 다시 한번 훑었다. 1960년에 책이 출판된 후 6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남한은 죽은 광장과 탐욕스럽게 가꾼 밀실만이 존재하는 공간인가. 인간은 광장에서 훔친 물건으로 사적인 밀실을 치장하는 데만 집중하는가.

사실 요즘의 한국 사회를 보면, 최인훈이 말했던 밀실이라는 공간은 점점 협소해져 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의 가치, 보편적인 가치가 개인의 내면을 장악해, 내밀하고 섬세한 정신세계는 기댈 자리가 좁아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은 으레 취직한 선배 얘길 하곤 한다. oo선배는 대기업에 들어가더니 연봉이 평균 초봉 세네 배 수준이래. xx선배는 고시 준비만 7년 하더니 지금은 알바 자리를 전전한다던데.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내 인생도 값이 매겨져 후배들 안주거리가 될 것이다. 좋은 직업의 기준이 뭔지 고민할 틈도 없었지만, 여하튼 좋은 직업을 갖는다고 해서 숨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집을 갖고, 행복한 가저을 꾸리는 것. 돈의 가치로 모든 것이 환산되고 끊임없이 남의눈을 의식하며 사는 것.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과잉 긍정의 시대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개인은 쉽게 피로해진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SNS 이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만인에 대한 정보와 모든 것에 대한 만인의 평가는 훨씬 더 신속하고 즉각적으로 개인에게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전에 연락 끊긴 동창이 어제 뭘 먹었는지까지 알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미세먼지가 폐를 채우고 폐포를 통해 혈액을 타고 몸속을 도는 것과 같다. 세상을 거부하거나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상은 방 안 노트북에도 있고, 손 안 핸드폰에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삶은 너무나 즉각적으로 개인의 삶에 들어오고, 동시에 개인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전시한다.

최인훈은 '북한은 남한과 달리 광장만 있고 밀실이 죽은 사회'라고 했다. 이제 와 보니 남한에도, 온전한 밀실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침범당하고 마구 헤집어진 내밀한 공간만이 있을 뿐이다. 나만의 공간에 오롯이 존재하는 나는 없어졌다. 일상적 자아, 세속적 자아가 나의 전부가 된다. 가장 예민하고 독창적인 감성은 중이병이니, 진지충이니 하는 싸구려 웃음으로 팔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긍정하는 가치를 투명하고 내재화한다.

오늘날의 광장에는 끝도 없이 싸구려 감성과 정보를 찍어내는 공장이 들어선 것 같다.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 물건을 집어서는 자신의 밀실을 정성스럽게 꾸민다. 광장에서 들인 물건들로 밀실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너도 나도 비슷한 집안을 찍어 광장에 자랑스레 내보인다. 누군가 내놓은 이미지는 다시 한번 즉각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밀실에 반영된다. 서로가 서로를 끝없이 닮아가는 것이다.


[이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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