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 실격, 찌질함에 대하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6.2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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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가 ‘이미테이션 게임’이다. 그리고 6월 2일에 서울시립미술관에 ‘씨실과 날실로’ 전시회를 보러갔었는데 미술관 가는 길 외부공간에 전시된 배형경의 ‘생각하다’를 작품 중에서 제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인간실격은 ‘효리네 민박’ tv프로그램에 평소에 좋아하던 가수 아이유가 한창 멤버로 나올 때 아이유가 인간실격을 읽는 모습을 보고 무슨 내용인지 너무 궁금했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주인공이 찌질하다는 평을 보고 호기심을 가져 읽게 된 책이다. 주인공이 너무 한심하고 답답하니 암 걸릴 사람들만 읽으라고 하는 댓글들이 많았다. 인간실격 속 주인공은 늘 자기 자신에 대해 회의감을 가진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인간이 맞는지 늘 고민한다. 정체성이 없는 것이다. 누구나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자기 주체적인 행동을 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을 찾고는 하는데 주인공은 그런 게 없어서 늘 회의감에 휩싸이고 인간이 맞는지 고민한다. 나는 왜 사람들이 주인공을 찌질하다고 말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정체성이 없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찌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심리일수도 있다. ‘인간실격’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내 정체성의 상실의 원인은 내가 대한민국의 90년대에 태어난 사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수성가, 노력하면 성공했고 교사, 은행원이 최고였던 부모님 세대의 한 세대 자손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만 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부모님인데 부모님은 이상하게 자기처럼 살면 안된다고 가끔씩 말씀하시곤 했다. 실제로 우리엄마는 은행원이 될 기회가 있었는데, 학교 선생님의 추천채용 전화가 왔던 날 대구에 놀러가 있어서 그 기회를 놓치고 평생 가정주부로 사시며 후회하고 계신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어서 집전화밖에 소통할 기회가 없었는데 집을 떠나있는 바람에 아무런 연락이 닿지 못한 것이다. 엄마는 그래서 자식들이 늘 성공하기를 바라셨다. 학원을 보낼 가정형편이 되지 않아서 엄마가 직접 자식 셋을 가르쳤고, 나는 수학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전기콘센트나 파리채로 머리를 맞고는 했다. 그럴때면 눈물이 핑 돌았고, 지금 생각하면 자존심이 너무 상할 일이지만 반항하지 못했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육열이 심한 엄마 밑에서 자라 교육감 경시대회 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영재로 이름을 날렸지만 중학교가서는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고등학교때부터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3때 갑자기 미술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미술학원비는 꼬박꼬박내면서 그 시간에 학원에 간 척하고 pc방에 출석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도 미술입시로 갔지만 결국은 1년 만에 중퇴를 하고 지금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재택근무로 일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나친 교육에 대학생활도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언니는 그렇게 자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했고, 엄마에게 미술을 하고싶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자기가 뭔가 하고싶은 게 있었다. 동생도 초등학교 때는 8과목에서 올백을 받고 시험공부를 그닥 많이 하지 않아도 곧잘 잘 해내고는 했지만 자라더니 엄마에게 반항을 시작했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늘 공부하고 있던 내 곁에 와서 쟤들은 뭐가 될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신세한탄을 하셨다. 나는 그럴수록 이제 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더 공부에 집착했고, 체육대회 날도 영어수첩을 꺼내서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중학교 때 친구가 내 체육복 바지에 손을 넣었는데 영어단어 10개를 적은 길다란 종이가 나와서 정말 놀랐다고 아직까지 말하곤 한다.

그게 다는 아니다. 놀랍게도 나는 친구들에게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그냥 말수가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소극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내 삶이 없다는 것이다. 그 날 입을 옷을 다 엄마가 정해주고(속옷에서부터 교복외투까지) 신발도 엄마가 신으라는 것을 신고, 용돈도 없으니 사고싶은 것도 없고 사고싶은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이기도 했었다. 그 날 먹을 것도 엄마가 다 챙겨주고 간식도 이미 집에 있는 것 중에서 늘 먹던 도라야끼같은 걸 챙겨먹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내 비정상적인 음식에 대한 집착도 시작된 것 같다. 학교 매점에 매운빵과 초코롤빵이 그렇게 맛있었고, 학교앞 분식점 떡볶이를 너무 좋아했는데도 친구들이 사줘야만 먹을 수 있었으니 최대한 음식을 빨리 흡입하고 늘 체하고 소화불량인 상태였다. 친구들과 놀러나갈수도 없었다. 놀러가겠다는 약속을 잡고 엄마에게 말하는 게 두려웠다. 그거 놀아서 뭐할려고 한다는 비난을 하기 일쑤거나, 아니면 엄마는 기분나빠져서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화를 내기 일쑤여서 늘 약속전날에 급하게 친구들에게 취소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엄마에게 여러번 약속이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그냥 포기하면 편하다고 생각해서 약속은 잡아두고, 엄마에겐 아무말도 하지 않고 전날 엄마가 안된대서 못간다고 말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내 삶은 내 것이 아닌 엄마의 것으로 채워졌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부터는 대학입시를 결정해야해서 진학할 과도 생각해야 했는데 나는 놀랍게도 하고싶은 게 없었다. 그냥 친구들은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학교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고 시험을 잘 봤을때만 엄마에게 칭찬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할머니가 아파서 돌보느라 바쁘신 엄마가 내가 시험 잘 봐서 전교1등했다고, 선서를 하면서 고등학교에 입학을 한다고 하니까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환하게 웃으셔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거의 울뻔했었다. 그저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한 삶에서 나는 앞으로를 생각할 수 없었다. 진로동아리를 만들어서 꿈이 없는 사람들을 30명쯤 모아 꿈을 찾자! 라고 했지만 일도 실수투성이. 진로초청 강연선생님과 약속을 잡아놓고 까먹어버리기 일쑤.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아 거의 자습동아리가 된 진로동아리였지만 나는 공부말고는 정말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공부 외에는 자가성찰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일지에 대해 늘 고민하고, 내가 하고싶은 게 뭘까 고민했지만, 거기에는 늘 내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누구였을까.

신기하게도 대학과 과에 대해서는 엄마가 선택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선택했다. 엄마는 고졸이라 그 이상의 것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마냥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고, 새로운 땅에서 다시 시작해보고싶다는 마음에 서울로 대학을 왔고 전혀 새로운 분야인 ‘건축’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엄마와 떨어져 혼자 살면서 비로소 나의 생활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엄마도 사사건건 다 간섭했지만 1학년의 자유 앞에 놓인 나는 망나니였고, 새벽까지 놀고 다음날 기어들어가 저녁에 다시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엄마가 점점 나를 놓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분리불안, 우울증, 외로움 등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을 겪기도 했고, 남들은 쉽게 상상하지 못할 나쁜 일들도 많이 겪기는 했지만 그러면서 점점 나를 찾게 되었고 정체성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찾고 싶어하는 게 정체성을 아는 방법인 게 아니라, 정체성은 만들어나가는 거라는 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하고싶은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 성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 성격은 이렇구나, 알게 되는 것도 아니며 이런 사람 저런 사람 흉내내가며 자기 진짜 성격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렇게 따라하다보면 진짜 편한 역할같은 게 있는데 억지로 흉내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것이 진짜 자신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자기 감정을 알게 되는 둔한 사람도 실제로 있다. 나처럼.

그래서 그런가 인간실격을 읽으면서 나는 주인공이 찌질하다는 생각보다는 너무 공감이 되었다. 스스로를 정말 알고싶어하고 찾고싶어하는데 모르기 때문에 답답한 그 마음을 공감했다. 왜 이게 찌질한 걸까. 그저 스스로의 문제를 극복해내지 못하는 모습을 찌질하다고 표현하는 걸까?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러면 나는 찌질한 인간인 것인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도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의 부족을 주제로 다룬다는 점에서 가장 끌렸던 것 같다. 주인공이 너무 뇌가 뛰어나서 자신이 기계인지 사람인지 정말 감정이 있는 것인지 늘 헷갈려한다. 현실을 살면서도 그 현실 속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느낌. 내가 지난 인생의 대부분동안 느껴온 감정이라서 이런 주제를 다룬 예술 작품들에 끌리는 것 같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 볼수록 그때 늘 붕떠있는 존재였던 내가 생각이 난다.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나, 다른 사람들 10명과 웃고 떠들고 술을 마시거나, 소풍을 가거나 여행을 떠나도 늘 혼자였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 씁쓸한 미소를 띄게 된다. 여럿이 있어도 혼자였고, 혼자있어도 혼자였기에 나는 늘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고 약속도 다른 사람이 먼저 잡지 않으면 절대 먼저 잡지 않았다. 정말 내가 없었기에 철저하게 혼자였던 삶이었다. 혼자이면서도 아무도 없는 것이기도 했다.


6월 2일에 그냥 서울을 돌아다니고 싶어 전시회를 찾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씨실로 날실로”의 전시가 하루 남았기에 보자 싶어서 관람을 했다. 여성들의 노동의 대상이었던 것이 지금은 오브제가 되어 그저 관람의 목적이 되는 그 주제가 신기하기도 했고, 여성들이 자신의 초상화를 실로 엮어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가장 내 마음을 잡아끌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외부공간에 전시된 배형경 작가의 ‘생각하다(Thinking)’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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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청동 인간들이 앉아서 흙으로 뭔가를 새롭게 주물주물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다 큰 성인이라기엔 하는 행동이 너무 아이같고 기이하다. 애인에게 차인 사람이 할 만한 행동이기도 하고 절대 정상적으로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는 아니다. 이 작품들은 ‘현실 속의 특정인이 아닌 관념적 인간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확실히 누가봐도 인간같지 않은 형태를 갖고 있었다. ‘조형적으로 인간의 몸 형태를 빌려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한다. 그저 몸은 외형적으로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이고 그것으로 어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담은 것이라고. 나는 이것을 보면서 과거의 나와, ‘인간실격’의 주인공과,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 우리 셋이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 세 명과 배형경 씨의 작품 속 세 사람은 정반대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정신은 없는 상태로 몸이 존재할 뿐이며, 그들은 정신을 담기 위한 몸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6명 모두 빈껍데기의 몸을 가지긴 매한가지지만, 그 몸의 목적은 전혀 다른 것이다.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인간이 왜 살아가는지도 모르고. 다만 이제는 내가 왜 살아가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찌질한 것일까? 남들이 보기엔 어떤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기준'과 '내 삶'에서는 전혀 찌질한 것이 아니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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