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그 안의 나를 보다

글 입력 2018.06.2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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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그 안의 나를 보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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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괜찮은 영화를 만났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 여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예쁜 색감의 메인 포스터. 포스터가 예뻐서,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새벽을 보낼 요량으로 영화를 재생했다. 멍하게 정신을 놓고 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바싹 집중한 상태로 영화를 봤다. 울컥하는 마음 때문에 입을 틀어막기도 하면서, 조용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우리들>에 몰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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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마치 과거를 보여주는 거울 앞에 (자발적으로) 끌려가 그걸 내내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주인공들이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초딩’들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아이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해서 마냥 가볍게 보아선 안 될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하니까.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한 사람의 세상은, 그를 둘러싼 세상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지 모른다. 상황 속에 던져진 우리들은 모든 게 다 처음이라 물속에 풍덩 버려진 사람처럼 어쩔 수 없어지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대고 만다.

살아남고, 버텨내고 난 후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 시절을 지금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지금이야 20대들에게 혼밥, 혼영 등 혼자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 10대 또래 집단 안에서도 그리할 수 있겠느냐 물으면,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또래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시기에, 우리는 ‘우리’라는 족쇄 아래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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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라는 말이 있다면 응당 상대어가 되는 ‘그들’도 있는 법이다. 어린 시절에 나는 항상 ‘우리들’에 속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 안에서 전전긍긍 했다. 순간 감정이 어긋나 나의 친구들에게 ‘그들’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친구들이 나를 ‘그들’, 혹은 ‘그 애’로 보는 일이 영영 없기를 바랐다.

<우리들> 속의 갈등 장면은 숨 막혔다. ‘우리’라는 어휘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내뿜는다. 그런 어휘에서 나는 서늘한 폭력을 느낀다. 우리에 속한 서로의 폭력에 휘둘린다. 우리의 관계는 자꾸 말장난처럼 돌고 또 돌고 나를 얽맨다. 가시가 잔뜩 박힌 울타리 같다. 우리를 우리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그 안에서 배를 곪고 추위에 떨어도 꼼짝 못하게 만든다. ‘그래도 여기 안에 있으면 안락해’ 라고 말하게 우리를 조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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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명대사를 뽑아 보자면 단언컨대 선이의 동생인 윤이의 말 한 마디라 하고 싶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어른들이 늘 말씀하시곤 했다. 멀리서 보았을 땐 간단한 공식 같은 말만 툭 던질 수 있지만, 정작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 외로 사건과 관계가 꽤 복잡하다.

선이의 동생 윤이가 친구와 다투고 난 후, 동생 윤이는 그 친구와 계속 논다. 동생 윤이에게 복잡한 마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선이는 화를 낸다. 그러자 윤이가 헤헤 웃으며 대답한다.


“맞았으면 또 때려야지!”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윤이의 대답을 들은 그 순간 나를 갑자기 얻어맞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폭소했다. 아주 똘망똘망하고 시원한 답변이었다. 어린 아이의 솔직담백하고 순수한 말에서, 나는 새삼 무언가를 배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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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일을 복잡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다. 일의 면면을 세심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도 세심한 관찰만큼이나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윤이의 답변에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뜬 것도 그동안 너무 복잡하게만 생각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순화 작업’을 우리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는 이유만으로 차치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때로는 단순하게 돌진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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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 경기장 라인에 어설프게 걸쳐 선 두 사람. 어색하게 멀찍이 선 선이와 지아가 보인다. 뻣뻣한 자세가 어딘가 애처롭기도, 기특하기도, 슬프기도, 귀엽기도, 짠하기도. 여러 감정이 스치는 가운데, 서로를 슬그머니 바라보는 두 아이들의 조용한 연대가 보인다. 4학년 3반의 새로운 우리들을 만들어 낸다. 나는 선이와 지아가 십 몇 년 전 내 모습, 우리의 모습 같았다. 그래서 애정 깊은 눈으로 한없이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우리들은 이렇게 커가는 거겠지? 괜찮아, 괜찮을 거야.


[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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