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형태

사회 속 소수자들을 위한 기이한 동화
글 입력 2018.06.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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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주류’에서 벗어난, 사회 속 이방인들에 대한 무시와 차별은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시작했고, 자신들에 대한 차별에 맞서 연대하고, 대항하였다. 그 결과 ‘없는 사람’이었던 그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비록 아직까지는 그들이 사회 주류에 편입되었다고 당당히 말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껏 무시되기만 하였던 ‘사회 속 이방인’의 삶이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미디어에서도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자신을 향한 차별과 혐오에 항의의 목소리를 내며 인권을 부르짖고 있다. 이 영화 또한 그러한 목소리의 연장선이다. 차별이 당연시 되던 시절, 목소리 없던 한 여인의 이야기로써 말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간략히 축약을 하자면, 벙어리, 흑인, 동성애자, 사람모습의 괴물이 사회 주류인 정부 요원에 맞서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무척 노골적이다. 주인공 일라이자는 정부 소속에서 일하는 벙어리 청소부이다. 그녀의 이웃 자일스는 실직한 동성애자이며, 일라이자의 직장 동료 젤다는 흑인이다. 그리고 물고기인간은, 사람모습의 괴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회 주류’에서 벗어난 ‘사회 속 이방인’들이란 점이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이들의 공간은 잿빛이며, 녹이 낀 물처럼 녹색 빛이 감돈다. 반면 정부 요원 스트릭랜드를 둘러싼 환경은 완벽하게 사회 주류를 형상화한 듯하다. 백인, 두 아들과 아내, 성공을 보장하는 듯한 청록색 캐딜락. 그의 집은 이 영화에서 보기 힘든 화사한 분홍빛으로 가득하다. 뻔하다 싶을 정도의 갈등구조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전하려는 것 또한 뻔한 주류-비쥬류 간의 갈등일까? 그렇진 않다. ‘헬보이’, ‘판의 미로’ 등으로 자신만의 기괴한 판타지를 확고히 보여줬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 작품에서도 그 개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자칫 뻔해질 뻔한 갈등 구조에 입혀진 그의 색은 한 편의 환상과도 같은 로맨스를 탄생 시켰다. 괴물과 벙어리의 사랑과 이해에 관한 이야기를 말이다.

주인공 일라이자는 극장 옥상에 세 들어 사는 벙어리 청소부다. 그녀는 다른 이들의 말을 들을 수 있지만 그녀의 말은 손짓이기에 젤다와 자일스 외에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회 주류’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녀는 물고기인간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다른 무엇이다. 그녀에 대한 스트릭랜드의 태도가 이를 여실히 나타낸다. 그는 물고기 인간을 ‘소통 대상’이 아닌 ‘연구 대상’으로서 대한다. 이는 ‘벙어리도 소리를 낼 수 있냐’는 질문을 하며 일라이자를 ‘소통 대상’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 대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설령 그녀가 영화를 보며 노래를 즐기고, 기쁠 때 탭댄스를 추고, 자위를 하는 등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여성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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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자가 처음 물고기인간을 보았을 때, 그는 수조에 갇혀 스트릭랜드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회 속 물고기인간과 수조 속 물고기인간, 그들이 서로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수조 너머로 보았던 것은 괴물이 아닌 한 사람이었고, 마치 거울 속 자신을 보는 것처럼 서로를 바라본다. 정부 연구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물고기인간의 ‘소통’을 이끌어 낸 것은 일라이자의 자그마한 동정, 혹은 공감이었다.


  

일라이자와 물고기인간, 벙어리와 괴물의 연대에 힘을 보태준 것 또한 그들과 같은 사회 속 이방인들이었다. 동성애자 자일스와 흑인 청소부 젤다, 그리고 연구진 중 유일하게 물고기인간의 가치를 이해하던 러시아 스파이 드미트리. 연대를 가능케 한 것은 그들이 서로의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고 서로의 내면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자들이었던 서로 간에 대한 이해는 완전한 이형(異形)인 물고기인간에게까지 확장된다.
 
  


이방인들의 연대는 ‘사회 주류’로서 승승장구하던 스트릭랜드의 성공가도를 붕괴시킨다. 그의 성공을 의미하던 청록색 캐딜락은 물고기인간의 탈출작전에서 앞 범퍼가 부서지고, 접합 수술을 받은, 작중 초반 절단되었었던 손가락은 완전히 곪아 썩었다. 믿고 있던 상사의 신임조차 잃어린 그에게 남은 것은 없다. 주류로서의 사회지위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그가 멸시하던 ‘사회 속 이방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행동하기 시작한다. 범퍼가 부서진 차를 그대로 타고 다니고, 이상적이던 가정에서조차 신경질적으로 행동하며, 곪은 손가락을 아예 떼어버림으로써 신체결손자가 돼 버린 것이다. 아니, 그는 애초에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배경에 의해 타인에게 대접받던 괴물이 그 내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뿐이니까. 사회 주류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점점 극단화되던 그의 행동은 결국 그토록 혐오하고 무시하던 물고기인간에게 ‘너는 신이구나’라는 패배선언을 함으로써 종결 맺고 만다.

한국에서 개봉한 The Shape of Water의 부제는 ‘사랑의 형태’다. 셰이프 오브 워터, 직역하자면 물의 형태를 뜻한다. 물의 형태는 무엇인가? 다들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이다. 물은 담기는 용기(容器)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한다. 바꿔 말해 어디에 담기든 물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장애인의 몸이든, 동성애자의 몸이든, 흑인의 몸이든, 혹은 설령 물고기인간의 몸이든 말이다. 국내 유통사는 이 형태를 일라이자와 괴물 간의 형태를 초월한 사랑으로써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영화 속에 나타나는 물의 형태는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이해다. 바로 이해다. 형태를 초월한 이해의 이야기. 겉을 감싸는 용기(容器)에서 벗어나 서로의 내면을 통한 이해야 말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도구이며, 목소리 없던 여인 일라이자가 한 생명을 구하고, 자신도 구원 받을 수 있던 계기이다.

다만 그럼에도 결말은 약간의 씁쓸함을 남긴다. 가장 큰 차별을 받던 일라이자와 물고기인간은 완전히 사회를 떠나 물속으로 떠나버렸고, 남은 자일스와 젤다는 소수자로서 다시 사회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껏 사회에 남아있는 차별과 구분의 시선에 대한 감독의 냉소적 시선일까.


[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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