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만 미워해, 널 『미움받을 용기』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6.2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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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을지 모르겠다.

가장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가장 선명한 기억.

그때로 돌아가 써보자면, 난 갓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을 사귀었다. 같이 놀던 무리에 여자들은 나까지 포함해 딱 세 명이었다. 세 명이라는 말을 듣고 벌써 으흠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 잘 어울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빠졌을 때 둘끼리 만난 시간이 많았을 거라고, 모두가 다 날 좋아할 순 없는 거라며 다독여보아도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나 스스로 그들의 무리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몇 년 뒤 비슷한 일이 또 나에게 일어났다. 인물만 달라졌지 똑같은 일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고, 그와 같은 경험이 일어날까 지레 무서워 또다시 무리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나의 상처이고 트라우마야. 또 상처받기 싫으니까 애초에 마음을 주지 말자.’


책 <미움받을 용기>는 바로 이 작았던 마음의 씨앗에서 시작한다.


먼저 이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의 내용은 “아들러의 심리학”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들러를 먼저 알고 갈 필요가 있겠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로, ‘개인심리학’을 제창했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세계적인 3대 거장으로 언급된다.

* 개인심리학 : 아들러가 직접 붙인 명칭으로, 아들러는 인간을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전제’로 보고 각각의 개인은 독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의 내용은 한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로 구성된다. 밤에 이들의 토론은 열렬히 이루어진다. 마치 보는 독자가 청년이 되어 철학자에게 날카롭게 질문하고, 철학자는 그런 우리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그럼으로써 철학자는 우리가 정립해놓은 가치관을 뒤흔든다.



첫 번째, 트라우마를 부정한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목적론’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이론을 오히려 부정하는 것이 ‘목적론’이다.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 -즉 트라우마-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한마디로, 만약 내가 “나는 성격이 좋지 못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내 마음속에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아’라는 목적. 친구를 사귀지 않으려 불안과 공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불안과 공포는 나에 대한 미움일 것이다.



두 번째, 단점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나 자신을 좋아하지 말자’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도대체 나 자신을 좋아하지 말자는 소리를 할까. 흥분했다면 진정하라.

아들러는 이것을 일종의 선이라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남에게 미움을 사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상황에 휘말리느니 처음부터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그들의 목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간단하다. 자신의 단점을 찾아내서 스스로를 미워하면 된다. 이것이 트라우마라는 장막 속에 가려져 있던 목적론이며, 우리가 우리를 싫어하는 이유다.

실제로 그 무리에서 도망친 후 내가 한 일은 나를 탓하는 거였다. 나를 한없이 미워했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관계를 유지해나가는데 나는 이게 뭐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쯤 되니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이상한거야. 내 성격은 이상해.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지 못해. 그래, 그러니까 나한테 친구가 없지. 생각하며 합리화했다. 끝없는 땅굴을 파고 파고 들어가 웅크렸다. 그리고 슬퍼했다.



세 번째, ‘지금 의 나’를 받아들이고,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게 하는 것. 이러한 접근 방식을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용기 부여’라고 한다.

 
그러다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이래서이래서 그 무리에서 나왔다. 근데 그 아이는 잘못이 없는 걸 안다. 내가 많이 예민해서인 것 같다. 정작 그 아이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내가 의미부여를 크게 하는 것 같다. 내 성격이 나도 싫다. 이런 내 말을 들은 그 친구의 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왜 너를 미워해? 왜 너는 너를 그렇게 싫어해?”

“너 말대로 네가 그렇게 느꼈을 수 있지. 아닐 수도 있고.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런데 넌 왜 너 혼자 네가 나쁘다 단정 짓고 널 싫어하는 거야? 내가 봤을 때 넌 충분히 좋은 사람인데”

그리고 얘기했다. 결국 네가 그렇게 단정 짓고 무리에서 도망치면 손해 보는 건 너 아니냐고. 그 친구가 불편하단 이유로 다른 사람들까지 못 보는 거 아니냐고. 정작 그 사람들은 잠깐 서운하다 자기들끼리 다시 잘 지낼 텐데 말이다.



네 번째,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다.

트라우마란 없다. 난 나의 두려움을 트라우마라 정의하고 막에 쌓여 앞을 보지 않고 있었다. 못 본 게 아니라 안 보고 있었다. 난 그걸 깨지 못하고 그 안에 살고 있었다. “그래 트라우마란 그런 거잖아? 건들면 터지는 게 맞잖아. 그러니까 건들지 않는 게 맞지. 도망치는 게 맞지.” 하지만 철학자는 말한다.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뒤로 미뤄서는 안 돼. 가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 상황, ‘이대로’에 멈춰 서 있는 것이라네”


*

결론적으로 나도 용기를 내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이전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무리 안에서 잘 지내고 있다. 지금도 다 깨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쯤 난 트라우마라는 것에 발목 잡혀 있었을지 모른다. 한 발자국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 됐다.

이 글을 읽고 완전히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해, 이 책에 대해 이해를 못 했을 수 있다. 이들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주고받은 여러 사례를 백 퍼센트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많은 궁금증은 여러분들이 책을 통해 해결하길 바란다.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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